
극우로 치닫는 보수단체들, 과거로 돌아 갔나
보수세력 내부에서 조차 ‘극우’라는 단어 꺼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민주주의 사회의 힘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이끌어 가기에 역부족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시민단체다. 시민단체는 ‘민주주의 사회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시민들의 힘이 모여 조직된 시민단체는 정치·사회·경제 등 각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반대로 사회를 혼란 속으로 이끌 수도 있다. 진보와 보수 이념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좋은 시민단체는 시민은 물론 정당과 나라도 살릴 수 있다.
국내에는 많은 시민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YMCA의 경우는 1903년 국내에서 창설돼 지금까지 110년 이상을 활동하고 있다. 이후 1970년~1980년대에도 시민단체들은 있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다.
우리나라 시민단체의 특징 중 하나는 보수세력보다는 진보세력이 더 활성화돼 있다는 점이다. 오랜 민주화운동 등의 영향이 크겠지만 결과적으로 진보세력의 시민단체들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시민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세력의 시민단체들은 진보세력의 시민단체들에 비해 활동폭이 제한적인 데다 조직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구성원들도 중장년층 위주다 보니 시민단체로써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정책을 연구·제안하고 홍보하는 등의 활동보다는 사건사고의 중심에 나서 시위를 하는 정도가 이들의 역할이다. 한마디로 머리는 없고 몸통만 있다 보니 시위의 정당성도 체계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극우로 치닫는 단체들 보수세력에 도움 안 돼
최근 들어서는 보수단체가 극우로 치닫고 있다. 시민들 중 일부는 마치 1970년대로 돌아가 반공을 외치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분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이름이 오르내리는 시민단체가 있다. 바로 서북청년단 재건위다. 아직 준비단계이기 때문에 시민단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들은 보수성향을 띤 단체다.
이들이 주목을 받은 계기는 지난달 2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매달려 있는 세월호 추모 노란리본을 철거하려다 경찰과 충돌하면서부터다. 당시 단체 소속 5명이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철거하려다 경찰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들은 전날 ‘일베저장소’에 “28일 오후 2시 서울시청 앞에 설치된 노란리본을 훼손하겠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들의 행동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들이 단체명으로 사용하려는 서북청년단의 묻혀졌던 과거 행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북청년단은 북한 사회개혁 당시 월남한 이북 각 도별 청년단체가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 반공단체다.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정치적 기득권을 잃고 남하한 지주 집안 출신의 청년들이 주축이 돼 결성됐다.
서북청년단은 경찰의 좌익 색출 업무를 돕는 등 좌우익의 충돌이 있을 때마다 우익 진영의 선봉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다. 1947년 3·1절 기념식을 각각 가진 좌우익의 시가행진 중 남대문에서 충돌한 남대문 충돌사건, 공산주의를 찬양·고취하던 민족예술제를 저지시킨 부산극장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미군정은 제주도 4.3 항쟁에서 서북청년단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들을 파견했다. 미군정에 의해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이 된 서북청년단은 갈취, 약탈, 폭행을 비롯해 무자비한 살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간부 출신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북청년단 재건위 관계자도 서북청년단의 과거 행적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존 서북청년단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해방정국과 건국 초기에 역할을 했는데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조직원들의 극우성이 지나칠 정도로 강하다는 점이다. 정함철 대변인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상황은 테러만 없을 뿐 해방전후 좌우대립과 다를 바가 없다. 좌파들의 무법천지다. 그들이 쇠파이프를 들면 우리도 맞대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막가파식 시위에 시민들도 눈총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언론에 등장하기 전에는 엄마부대봉사단이 시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주목이라기보다는 눈총이라는 표현이 맞다. 엄마부대 봉사단은 회원이 40여 명 정도로 2013년 창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라이트의 간부를 지낸 바 있고, 탈북여성회·나라지킴이여성연합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는 주옥순(61)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엄마부대봉사단은 지난 7월 18일 ‘유가족들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의사자라니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네요’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단식 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하려다 경찰에 제지를 당했다.
당시 이들은 “사고 난 거 이 사람들 뿐만이 아닙니다. 한 학교에 많은 학생들이 같이 죽어서 그런 거지. 세상에 대구지하철 사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누가 이런 소리합니까... 이게 너무 오래 끌었으니까 민생을 살려달라는 겁니다” “세월호 희생은 안타깝다 하지만 (국가)유공자도 아닌데 의사자 지정이나 대학 특례는 안된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것도 아니고 수학여행 가다 난 사고를 이토록 온 나라를 들쑤셔놓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생계위협을 받게 하는 유가족들 이건 정말 정상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배 타고 놀러 가라 그랬어요?” “죽으라 그랬어요?” “대학특례 웃기시네, 죽은 애들이 의사자냐” 등의 막말로 유가족 단식농성의 배경에 정치적 목적이 있다면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반대’를 외쳤다. 이념 논쟁과 정치적 주장을 넘어 자식을 잃어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비수를 꽂았다.
“무비판적 관용 배풀어서는 안된다”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최근 극우로 치닫고 있는 일부 시민단체들에 대해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서북청년단 재건위의 세월호 추모 노란리본을 철거 사건에 대해 페이스북을 통해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이들의 극우적 행태는 건강하고 혁신적인 보수의 발전에 큰 해악을 끼친다. 이들 세력이 더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수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무비판적으로 관용을 베풀어선 안 된다. 문제점을 따끔히 지적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우단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많다보니 보수세력 내부에서는 ‘극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도 꺼리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처럼 이념논쟁이 치열한 상황에 시민단체들이 자신들의 든든한 서포터가 되기보다는 오리려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보수세력은 10년이라는 시간을 얻었다. 진보세력은 이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과연 이 10년 동안 보수진영은 건강한 보수단체 좋은 보수단체를 만들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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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