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물론 6년째 동거한 애인까지 속인 연쇄 강간범이 붙잡혀 충격을 주고 있다.
수원남부경찰서 강력수사팀은 지난 5일 혼자 사는 여성만을 노려 성폭행하고 8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강간 등)로 박모(24)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2005년부터 수원 곡반정동, 세류동, 매탄동 등 각지를 돌며 혼자 사는 원룸 여성을 골라 성폭행과 강도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박씨의 주변인들은 “평소 활달하고 성실했던 친구인데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다”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용의자 박씨는 경찰조사에서 “밤마다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려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2년간 근무한 직장 동료들은 물론이고 6년째 동거한 애인까지 속여 넘긴 ‘수원 발바리’의 기막힌 이중생활을 지금 공개한다.
지난 11월 5일 오후 1시 30분 경. 수원남부경찰서 강력 수사팀 요원들이 한 주택가를 급습했다. 자료 수집 석 달, 추적 한 달여에 걸친 지루한 싸움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빈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집 주인 박모(24)씨는 지역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수원 발바리’로 마침내 수갑을 찼다.
경찰과 함께 집 밖으로 연행되어 나오는 박씨를 보며 주변 이웃들은 경악했다. 평소 “얼굴도 선하게 생기고 인사성도 밝아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몹쓸 짓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며 이웃집 40대 주부는 혀를 찼다. 2년간 박씨와 함께 일했던 한 동료 역시 “꼬박꼬박 제시간에 출근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던 친구였다. 일이 힘들어 한 달 전쯤 회사를 그만뒀지만 싹싹하고 붙임성 있어 어디서든 잘할거라 생각했는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6년 동거한 애인도 몰라
박씨에게는 고등학생 시절이던 6년 전부터 동거해온 동갑내기 애인이 있었다.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애인과 카 오디오 제작 회사의 보조로 착실히 직장생활을 했던 박씨는 여자친구에게도 각별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남자친구의 검거 소식을 전해들은 애인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한참을 망연자실해 있었다고. 가족은 물론 한 이불을 덮고 잔 동거녀까지 속인 철저한 이중생활이 확인된 순간,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10건의 성폭행과 강도 행각을 저지른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하려 했던 여인의 꿈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평범했던 박씨의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11월. 늦은 밤 집근처를 산책하던 당시 스물 두 살의 박씨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귀가하는 여성을 보았다. 술 취한 여성은 한 원룸 빌라의 현관문 앞에서 열쇠를 꺼냈다. 자기도 모르게 여성의 뒤를 쫓던 박씨는 순간 이성을 잃고 막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 여성을 밀쳐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저항하는 여성을 덮쳐 성폭행한 박씨는 피해자의 현금과 핸드폰을 빼앗아 도망쳤다.
한 번의 사건 이후, 박씨는 밤마다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여자친구가 잠든 후 새벽거리를 배회하며 피해자를 물색한 박씨. 범행 수법도 대담해져 알루미늄으로 된 1층 방범창을 부수고 들어가 칼로 집주인을 위협해 성폭행하기도 했다.
지난달 18일 잠들어있던 조모(26)씨 집에 침입해 성폭행 하고 현금 5천원과 휴대전화를 빼앗은 것을 마지막으로 경찰에 붙잡힌 박씨. 그는 “밤마다 밖을 배회하는 내가 미친것 같아 정신과 상담을 받을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내 범죄행각을 고백 할 수밖에 없어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은 “본인은 스스로가 미쳤다고 말하지만 박씨는 지극히 정상”이라며 “충분히 자기 욕구를 억누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전했다.
범인은 있는데 피해자는 없다?
석 달 전부터 비슷한 유형의 사건 접수를 받고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2005년 12월에 입수한 조각 지문을 6명의 팀원이 2000여건의 일일이 대조해 한 달 만에 박씨의 존재를 알아냈다.
경찰이 확인한 박씨의 공식적인 범행 횟수는 최근까지 총 10회. 그러나 경찰은 또 한 가지 난관에 부딪쳤다. 체포된 박씨가 자신의 범행에 대해 비교적 성실히 자백하고 있는 것에 비해 피해자가 없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것.
경찰은 박씨를 상대로 알려진 10회의 범행 이외에 추가로 7회의 범죄 사실을 더 자백 받았다. 하지만 사실을 확인 하려는 경찰에게 피해자로 지목된 여성들은 하나같이 “그런 적 없다”며 피해 사실을 부인하고 나섰다. 그들 대부분은 사건 직후 이사를 갔거나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한 여성들이었다. 경찰은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음에도 성폭력 사건이라는 특성상 피해자의 진술이 나오지 않아 여죄를 추궁해도 인정받을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꼭꼭 숨어버린 피해자 탓에 더 이상의 여죄를 추궁하지 못한 경찰은 지난 9일 오전 용의자 박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결국 하룻밤 충동을 이기지 못한 ‘훈남’은 수많은 여성에게 상처만 남기고 감옥으로 향했다.
이수영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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