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거짓말탐지기 회피용 약물까지 먹어가며 국내에 잠입하려 했던 북한 보위부 여간첩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15일 국가보안법상 간첩 및 특수잠입·탈출 혐의로 기소된 북한 보위사령부 공작원 이모(39·여)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항소심까지 자백 진술을 유지했고, 핵심적인 자백 내용이 합리성을 잃었다고 볼 수 없다"며 "이씨의 이력이나 주변 상황들까지 다른 탈북자 참고인을 통해 뒷받침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씨의 자백진술은 신빙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이씨 측 변호인은 '거짓말탐지기 회피용 약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이 약물을 사용했다는 이씨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기록상 드러나는 판정결과의 다의성과 과학적 정확성 논란 등을 고려해도 이씨의 자백이 신빙성을 잃는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 보위부 공작원으로 활동하던 이씨는 2012년 7월 한 때 연인이었다가 탈북해 국내에서 반북 활동을 하고 있는 최모씨의 동향을 파악하라는 등의 지령을 받고 1년여 동안 치밀하게 사전 준비작업을 했다.
준비를 마치고 중국을 거쳐 태국으로 밀입국한 이씨는 곧바로 태국 경찰에 적발된 뒤 마치 생활이 곤란해 북한을 빠져나온 탈북자인 것처럼 행세했다.
결국 이씨는 지난해 2월 관계기관의 도움을 받아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국내로 입국,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게 됐다.
그는 미리 준비해 온 거짓말탐지기 회피용 약을 사용해 조사과정 중의 하나인 심리검사를 통과할 수 있었지만 일부 모순된 진술에 대한 집중 추궁이 이어지자 자신의 정체를 실토했다.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1·2심에서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며 "범행을 자백했고, 보위부 명령을 거절하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던 사정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1·2심은 자백진술을 근거로 이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거짓말탐지기 조사에 대비해 별도의 약물까지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이는 등 죄질이 좋지 않고 만약 이씨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면 추가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며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한편 이같은 판결이 내려진 직후 상고심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대법원의 최종판단이 내려진 마당에 판결의 당부를 지적하는 것은 조심스럽다"면서도 "의학계에서 존재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는 거짓말탐지기 회피용 약물을 사용했다는 자백을 믿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자백내용을 검증하는 것은 한계가 있겠지만 적어도 상식이 지켜져야 한다"며 "간첩 사건의 판결문은 영구보존되는 만큼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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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