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미술시장에서 큰돈 벌어 재투자 하지 않아”
[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미술시장에서 큰돈 벌어 재투자 하지 않아”
  • 정양모 교수
  • 입력 2014-10-13 15:19
  • 승인 2014.10.13 15:19
  • 호수 1067
  • 6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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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중국 도자기를 들여오는 세 가지 방법

사람이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재력과 신용이 있던 수장가들은 들어올 돈이 들어오지 않아 속이 탈 수 밖에 없다. 상인도 장사가 안 되는 어려운 시기에 믿고 어음을 받고 유물을 팔았으나 돈이 되지 않으면 큰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래저래 시장에 돈이 돌지 않아 고미술 시장은 어려워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 이런 일도 있다. 고미술을 운영하는 거상은 여러 군데가 있다. 그중에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운영하고 있는 업주가 있는가 하면 일을 너무 크게 벌려 감당하지 못하고 폐업하는 경우도 있다. 업주가 빚에 몰리면 그 폐해가 주변의 소상공인에 미칠 것은 뻔한 일이다.

미술시장에서 큰돈을 벌어 미술시장에 재투자하지 않고 부동산 등 다른 업종에 투자해서 큰 재산을 모은 사람도 있다. 재산을 증식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금 우리 고미술시장이 너무 어려운데 증식된 자산이 고미술시장에 재투자가 되면 조금이라도 활력이 되지 아니할까 생각한다.

중국 물건 유입 고미술 포장·보관상자 문제

7~8년 전부터 우리 고미술시장과는 별도로 주로 중국에서 기업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도자기를 대량 구입해서 우리나라로 들여오고 있다. 최소 100여 점에서 많으면 수백 점에서 천여 점에 달하기도 한다. 본인도 과거에 고위관료나 국회의원 지낸 분이 여러 번 찾아와 청탁을 받았다. 할 수 없이 몇 번 어느 중국 진출 기업가의 서울 사무실이라는 곳에서 그들이 중국의 국보급이라고 말한 도자기를 본 일이 있다. 중국도자기를 가져오는 방법에는 대개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한 가지는 모두 새로 만든 오동상자에 넣고 요새 하얀 포장지로 싸고 공기방울 비닐로 다시 싸서 상자에 담은 것이다. 내용물은 모두 다 청화백자로 커다란 항아리, 준, 병 등이었다.

또 한 부류는 상자에서 다 풀어 큰 사무실에 선반을 매고 올려놓고 또 다른 방에도 여기저기에 도자기가 널려있는 경우다. 청화백자, 흑유, 적갈유가 많고 연유 등 채자도 있었다. 담았던 상자를 보니까 요새 만든 것도 있고 조금 오래된 것도 있었다.

세 번째는 중국에서 대량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많으면 백여 점이 넘기도 하나- 대개 몇몇 점씩 중국에 진출하고 있는 우리상인이 유물을 구해서 여러 가지 방법과 경로다. 즉, 일본을 통하든지 중국인 중간상인을 거치든지 해 국내로 들여오는 방법이다. 아주 귀한 것을 어렵게 들여온 것처럼 해 은밀하게 큰 값을 받고 팔아넘기는 경우도 상당량 있다.

포장문제

우리나라와 일본은 모든 유물은 전부 오동상자에 담는다. 도자기의 경우 우리나라는 오동상자에 담기 전 어떻게 보관했었는지 잘 모르나 여러 번 겹겹이 싸서 다시 보자기에 싸서 상자에 넣어 다락이나 궤, 반다지에 보관 했을 것이다.

일제 침략시대부터 도자기 등을 오동상자에 담고 끈을 매었다. 이 방법은 일본 상인에게 배운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자기 이외의 초상화, 비녀 등 여러 가지 패물 등 귀종품은 모두 나무에 옷 칠을 한 좋은 함이나 궤나 상자에 담았다. 비녀상자, 패물함, 초상화함, 패물궤 등이 있었다.

근래에 고궁박물관에서 장황전을 할 때 보니까 궁중에서는 장지를 여러 겹으로 부해 나무보다 든든한 여러 가지 형태의 크고 작은 함과 상자, 궤를 만들어 그 속에 보관했다. 상자 등 겉에 예쁜 모양으로 디자인을 하고 그 모양대로 화사한 채색비단천을 발라 절도 있으면서 아주 화사한 상자를 만들었다. 장황전에서는 이러한 상자들을 볼 수 있었다. 중국에서도 이런 채상이 있었으나 보통은 모두 고미술품을 담는 상자와 궤, 함 등은 뚜껑을 위에서 여닫는 상자로 두꺼운 상자갑으로 만들고 푸른색 천으로 여러 겹 발라서 튼튼하게 만들었다.

대체로 상자 속은 그릇 모양대로 그릇에 꼭 맞게 속에 솜을 두어 절묘하게 만들어 내용물이 고정되도록 했다. 일본의 모든 오동상자는 상품, 중품, 하품 등이 있다. 상품은 아주 잘 짜서 상자 뚜껑과 밑짝이 빈틈없이 들어맞고 어느 방향으로 뚜껑을 덮어도 빈틈없이 꼭 맞는다. 오동도 속 오동으로 결이 치밀하고 일정한 것을 쓰고 짜 맞춘 기술이 매우 뛰어나다. 오동상자의 밑굽에 구멍을 뚫어 도톰한 광다회 끈을 십자로 꿰어 위에서 매는데 끈이 두껍고 단단하다. 또 짤 때 여러 가지 문양과 색을 넣어 짠 것도 있다. 도자기와 기타 유물 회화도 모두 오동상자에 담는다.


청화백자 운용문준
18세기 후반 호림박물관 소장


▲ <사진=한국미술발전연구소>
조선시대 백자 가운데는 대형에 속하는 준은 입부분은 높고 곧바로 서고 몸통의 윗부분은 완만하게 팽배했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당당함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입과 어깨부분에는 청화로 각각 당초문대와 여의두문대를 두르고, 주문양으로 몸통부분에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두 마리의 용을 그렸는데 그 움직임이 힘차고 위엄이 있다. 아울러 이 용은 5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이 준이 왕실에서 사용된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몸통의 아랫부분에는 길고 각진 연판문대를 둘렀다. 푸름을 머금은 맑은 백자유약이 입혀져 있다. 부분적으로 빙렬이 있고 광택이 은은하다. 굽은 밖으로 약간 벌어진 안다리굽으로 굽다리바닥에 모래를 받치고 구웠다. 이러한 대형의 항아리는 현재 여러 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기형이나 문양·유색 등에서 이 항아리는 최상급에 속한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정양모 교수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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