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이름은 비석에 새겨져서 남겨지는 방법도 있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 정도 되면 역사에 이름이 남겨지는 대통령이 되고 싶을 것이다. 물론 악행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선덕을 베푼 성군으로 이름이 남겨지는 것을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한결같을 것이다.
임시정부는 차치하더라도 1948년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는 모두 18대에 걸쳐 11명의 대통령이 재임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건국의 아버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첫 단추를 잘 못 꿴 독재자일 뿐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비록 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대통령이 되었지만, 군부독재의 변형에 불과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권이라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역사를 연 대통령이지만,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상대방의 유고로 인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기회를 놓친 불운한 대통령이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4번 도전 끝에 대통령이 되었지만,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면서 역사에 남을 대통령으로 가장 앞선 위치에 서있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을 두 번째로 성공시켰으며, 무엇보다도 극적인 인생을 마감함으로써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뒤를 이은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후미진 곳, 혹은 이름 모를 오솔길에 그 이름을 남길 가능성이 높으며, 오히려 대통령으로서보다는 청계천이 지속되는 한 서울시장으로서의 이름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박 대통령은 현재까지는 대통령으로서의 업적보다는 독재자의 딸, 혹은 부녀 대통령으로서의 인식이 강한 상태다.
그러나 이러한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도 100년 정도 지나면 과감하게 단순화할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크게 다른 분야에서 업적을 남기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면, 독재파와 남북정상회담파 정도가 향후 100년의 우리나라 대통령 계보의 두 파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주 아시안 게임이 끝났다. 끝나는 마지막 날 북한의 실세 3인방이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아시안 게임 내내 없었던 긴장감이 가장 고조된 시간이었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황제병으로 불리는 통풍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보도를 접하고 있던 차에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이라는 실세들이 함께 남쪽을 방문한 것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그들이 남쪽을 방문하게 된 경위야 어찌됐든 이번 깜짝 방문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은 너무도 다행한 일이다. 무엇보다 북쪽의 최고 실세들과 우리 남쪽의 대북라인 실세들이 얼굴을 맞대고 두 시간 가까이 오찬회동을 한 것 자체가 향후 남북관계의 숨통을 트게 하는 것이었다. 서로를 오해하고 상대방의 진심을 믿지 못하던 차에 남북의 실세라인들이 한꺼번에 마주 앉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인 것이다.
특히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인 황병서와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은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던 사람들이다. 김관진 안보실장은 합참의장 재직 시엔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 사진을, 국방장관 때는 인민무력부장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전투의지를 다졌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오랫동안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인민군대를 지도하고 통괄했던 인물로, 한 때 북한군에서는 군견을 훈련시킬 때 김관진 국방장관 사진을 목표물로 해서 물어뜯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북한 실세 3인방의 깜짝 방문으로 남북대화 재개의 물꼬는 트였다.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의 주도권은 북한이 쥐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였다. 올 봄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하고, 8.15 경축사에서 다양한 남북협력 사업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때로는 거부하고 때로는 침묵으로 답하였다.
결국 남북관계에 있어서의 유용한 수단을 모두 상실하고 있던 우리 정부는 결국 이번처럼 북한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장면에 출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 3인방에게 청와대 방문을 제안했는데도 이들은 응하지 않았다.
이들 3인방이 다녀간 뒤에 후폭풍이 거세다. 금방이라도 남북관계 개선이 이루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지난 2010년 천안함 사태를 이유로 발표된 대북제재 조치인 5.24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지배적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사실 이들이 다녀가기 전부터 5.24 조치 해제에 대한 새누리당 내의 여론형성이 있었다.
국회외교통일위원장인 유기준 의원은 “전 정부에서 만든 5.24 조치는 이제 철 지난 옷과 같다”며, “남북경협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더 나아가 백두산 관광까지 시작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호 최고위원 등도 5.24 조치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었다.
눈치를 보고 있던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도 이들 3인방이 다녀 간 뒤에는 너나 할 것 없이 5.24 조치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회 외통위 의원들을 중심으로 강하게 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정작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고위급이 왔어도 대북원칙은 유지 하겠다”며 대통령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다. 쇠도 달궈졌을 때 내리치라고 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도 아니다. 5.24 조치 해제는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이끌어가기 위한 전략적 판단의 결과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저것 주판알을 튕겨야 할 일이 많은가보다. 그러면 답이 나올 리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회가 갔는데 이러한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무능함을 입증하는 꼴이 될 것이다.
앞서 살펴봤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기기 위한 두 갈래의 길이 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독재자의 딸’로 독재대통령 계보에 이름 석 자를 올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는 남북정상회담파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말한 대로 이번 오솔길을 따라 더 큰 대통로로 나아가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다. 5.24 조치 해제 다음은 남북정상회담이다.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