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탈세조사 은폐 감사 청구’ 이후 유사한 일 벌어져 ‘분개’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남과 돈독한 관계를 가진다고 해도 혈통관계인 부모와 형제자매만큼은 못하다는 의미다. 그만큼 혈육의 정은 깊다. 하지만 재계에선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이 더 잘 통한다. 그동안 알려진 것만 해도 ‘두산 형제의 난’, ‘현대 시숙의 난’ 이번에 주목되는 ‘삼환기업 남매의 난’까지 가족 간 돈 때문에 벌인 촌극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삼환기업 오너 가족 간 고발사건이 불거졌다. 특히 고발장의 주 내용이 최용권 회장(사진)이 수천억 원대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건데, 검찰 특수부가 수사에 나서면서 단순한 재산 다툼 이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이목이 쏠린다.
삼환기업 남매의 고소전의 불똥이 국세청과 검찰 등으로 튈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앞서 삼환기업 노동조합은 지난 3월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지방국세청이 최용권 회장에 대한 탈세조사를 은폐·축소했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상태였다.
당시 노조 측은 지난해 9월 서울지방국세청이 최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도 제보자인 노조는 배제한 채 최 회장과 일부 측근의 진술만 청취하고 세무조사를 종결시켰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차명계좌 다수가 1996년 최용권 회장 취임 이후 만들어진 것인데 2012년 작고한 최종환 명예회장의 것이라는 거짓 주장을 국세청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관련 의혹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지자 당시 조사에 대한 신뢰성을 의심하고 있다.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최 회장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세무당국이 명백히 밝히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검찰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최 회장의 해외 비자금 형성은 과거 기업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20년 이상 아무런 업무도 없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사와 일본 동경 지사를 유지한 이유가 최 회장의 해외 비자금 관리 때문이라고 모든 임직원이 추측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 관계자는 “최 회장이 회사 보유의 다른 회사 주식을 불법적으로 매각해 수십억 원대의 차명계좌를 만든 증거가 포착돼 서울중앙지검에 추가로 고발한 상태”라며 “검찰이 진실을 외면하고 방임한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상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일반적으로 오너 비자금의 일부는 정관계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온 점을 고려하면 이번 수사도 진행 상황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또, 오너리스크
통상의 고소고발 사건은 조사부가 담당하지만 이번엔 기업비리와 부정부패 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 4부가 사건을 맡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검찰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여동생 최 모 씨가 오빠인 최 회장이 45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소장에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도피와 외국환거래법 위반, 조세 포탈 혐의 등이 적시됐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여동생 최 씨는 삼환기업 경영에 직접 관여한 적은 없지만, 2012년 선친인 최종환 전 회장이 숨진 이후 재산분배 과정에서 마찰을 빚은 뒤 오빠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최 씨가 주장하는 4500억 비자금 가운데는 80년 대 중동 건설 붐과 해외 사업 수주 과정에서 일부 자산이 빼돌려져 미국 법인 등으로 유입됐다는 의혹도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돈으로 하와이 별장 등 해외 부동산도 곳곳에 사들여 은닉재산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덕분에 노조가 최 회장의 차명계좌가 있다고 지목한 계열사인 신민저축은행도 또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신민저축은행은 최 회장과 삼환기업이 대주주다.
삼환기업은 지난해 1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조기 졸업했다. 2012년 7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가 법정관리로 방향을 선회한 후 6개월 만에 벗어났다. 하지만 또 다시 오너리스크로 인해 성장세가 주춤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경기 악화로 기업경영이 힘든 가운데 오너리스크는 직원들 사기저하로 이어진다”며 “삼환기업도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오너의 불협화음이 경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안타까움을 보였다.
삼환기업 측은 “해외 비자금 조성은 사실무근”이며 “유산 상속에 불만을 품은 여동생이 악의적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지난해 최 회장은 건설 현장별로 비자금을 끌어모아 수백억 원을 횡령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를 받았지만, 배임 혐의로만 기소돼 올해 초 집행유예 형을 받았다. 따라서 남매간 재산싸움으로 시작된 이번 고소 사건이 해외 비자금 수사로 확대될 경우 최 회장의 경영권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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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