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부모 후원으로 급여 받다 보니 회계과정 불투명
메달 색깔에 따라 청탁금 매기기도…금메달 4000만원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비리가 판치는 세상이다. 지난달 16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서울시태권도협회 임원의 조직적 ‘승부조작’ 사실이 확인됐다는 경찰 수사결과 발표에 따라 강도 높은 쇄신책을 마련해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개최된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과정과 역도협회 등에서 또다시 비리가 터졌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체육계 비리의 백태를 알아보자.
체육계 비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초중고등학생들이 참가하는 각종 대회는 물론 심지어 승급심사에까지 비리는 만연해 있다. 체육계 비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도자들의 열악한 처우다. 즉 급여가 적기 때문이다.
열악한 처우가 원인
최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선교 의원이 교육부와 대한체육회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체육지도자 전임코치 월 평균급여는 164만 4000원이다.
학교 운동부 코치 즉 전임코치와 일반코치로 고용된 체육 지도자 5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다. 이 가운데 시·도육청과 체육회 등에서 임용한 전임코치 4039명의 월 평균급여가 164만4000원이다.
2015년 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인 월 166만8329원에도 못 미쳤다. 지역별로는 대구가 가장 높았고, 충남과 세종시가 가장 낮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체육지도자를 각 학교에서 고용할 경우 급여가 더 낮아진다는 점이다.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단위 학교에서 자체 임용한 일반코치 340명의 경우 월 평균급여가 150만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일반코치는 축구·야구·농구 등 인기종목을 운영하는 학교에서 통상 1~2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체결하는 비정규직이다. 월급도 대부분을 학부모 후원으로 충당해 늘 급여에 대한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인데가 학부모 후원으로 급여를 받다보니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부모 지원금 등을 학교 회계에 편입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 돈을 착복하거나 유용하는 등 부조리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또 감독과 코치들이 특정 학부모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해 청탁 등 비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로 감독과 코치들이 학부모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학부모-감독-심판 비리사슬
태권도 승부조작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관계인 감독·코치진에 학부모들이 자녀의 스펙을 위해 각종 대회에 입상하게 해 달라는 청탁을 많이 하고 있다. 단순한 청탁을 넘어 돈이 오고가고 압박까지 받는다면 감독·코치진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감독코치진은 대회 심판에게 청탁을 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이 비리사슬로 고착화 돼 지금의 체육계 비리들이 하나둘 터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체육지도자들의 부조리를 끊기 위해서는 낮은 보수체계를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체육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금품 유혹없이 생활이 가능하도록 보수체계를 개선하고 신분을 보장해 주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문체부에서도 체육계 비리의 원인 중 하나가 지도자들의 적은 소득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 등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다행히 부정판정 등을 막기 위한 상임심판제도나 국가대표 지도의 경우는 각각 해당인력을 충원해 교육 중이고, 임금수준도 일정부분 올려주면서 처우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인 학생지도자들의 처우는 당장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경고 남발해 반칙패 받게 하기도
체육계 비리 사슬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최근에 발생한 서울시태권도협회 선수선발 승부조작사건이다.
지난달 15일 경찰청은 시합 전에 상대편 학부모의 청탁을 받고 승부를 조작한 서울시태권도협회 전무 김모씨(45) 등 7명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해 5월 28일 태권도 관장 전모씨(47)가 전국체전 고등부 서울시대표선수 선발전에 나간 아들이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졌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지자 협회의 승부 조작에 대해 수사를 벌여왔다.
김씨는 같은해 5월 7일께 충북의 한 대학교 태권도학과 교수이자 고교 핀급선수의 아버지인 최모씨(48)와 중학교 태권도 감독 송모씨(45)의 청탁을 받고 전국체전 대표선수 선발전에서 승부 조작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승부 조작은 기술심의의장 김모씨(62)와 심판위원장 노모씨(43), 심판부위원장 최모씨(49)의 부탁을 받은 주심 최모씨(47)가 경고 8개를 남발해 반칙패를 당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경찰에 따르면 주심 최 씨는 경기 당일 약 2시간 전 부위원장인 최 씨로부터 승부를 조작하라는 지시를 받고 3분 3회전으로 치러지는 시합이 시작된 지 14초 만에 자살한 전씨의 아들에게 경고를 내렸다.
그리고 3회전 종료 50초를 남겨놓고 경고 6번을 내렸고, 막판 승부에 대한 이의를 신청하는 깃발까지 올렸다. 이 깃발은 2회 사용시 경고 1번으로 인정하는데, 이미 전씨의 아들은 예선전 때 한 차례 깃발을 사용한 적이 있다. 결국 경고 8개로 반칙패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주심 최 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시 5번째와 7번째 경고는 주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고 자백했다.
이들은 학연에 의해 평소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승부를 조작해 준 대가로 학부모 최 씨와 중학교 태권도 감독 송 씨로부터 돈을 건네받은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사건 발생 당시 서울시태권도협회 진상조사위원회는 주심의 경기운영 미숙은 인정되나 고의성은 없었다고 판단해 주심 최 씨만 서울시상임심판 자격에서 제명하고, 나머지 임원들은 보직 사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었다.
관계자 눈 밖에 나면 심판 잘릴 수 있어
재미있는 점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중에 서울시태권도협회의 비리도 같이 드러났다. 협회장 임모씨(61) 등은 2009년 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허위로 활동보고서를 작성해 40명에게 약 11억 원을 부당 지급했던 것이다. 이 활동비는 비상근 임원들이 협회와 관련된 활동을 해야만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 협회 사무차장 진모씨(43)도 모 고교 태권도코치의 취업대가로 500만원을 건네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심판위원장이 심판 배정에 대한 권한을 전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에 심판이 주된 수입원인 경우 부정한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운 여건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피의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태권도에 전자호구제가 도입된 후에는 심판이 특정선수에게 경고를 주어 도와주고 있다"고 실토했다.
또 “서울시 태권도협회 뿐만 아니라 지방태권도협회에도 승부조작건은 비일비재하고 학연이나 지연을 통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피의자들은 “일당 6만〜8만원 정도 받는 심판이 협회의 눈 밖에 나면 (심판으로) 불러주지도 않고 어느 순간에 잘려버려 소신 있는 판정을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제 기능 못한 스포츠 4대악 합동수사반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서울시 태권도협회 기술전문위원을 지낸 오용진 전 수석부의장은 “동메달은 1000만 원, 은메달은 2000만 원, 금메달은 4000만 원 이렇게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체육계 비리가 수시로 터지다 보니 스포츠 4대악 합동수사반 역할논란도 일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 5월 체육계 비리 척결을 위해 관련 수사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스포츠 4대악 합동 수사반’을 공식 출범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합동수사반은 문체부 직원 6명과 경찰청에서 파견된 수사관 6명으로 구성됐다. 또 서울중앙지검에 체육계 비리를 전담하는 검사 1명이 지정됐다.
문체부가 체육계 비리를 적발하고자 경찰과 검찰 인력을 동원해 수사반을 구성한 것은 처음이었다. 모태는 지난 2월 스포츠계에 널리 퍼진 입시비리, 편파판정 및 승부조작, 폭력과 성폭력, 조직사유화를 뿌리 뽑기 위해 만들었던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다.
문제는 이 합동수사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력에 비해 경기단체수나 대상이 너무 많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 합동수사반이 또 다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문체부 입맛에 맞지 않는 경기단체를 조사하면서 압력을 행사한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일부 경기단체들에서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세력다툼을 하는데 신고센터를 악용하고 있어서 분별력 있는 대처가 시급한 상황이다.
#사건사고 브리핑
‘봉천동 식구파’ 폭력조직원 5명 입건
동네 조직폭력배 '봉천동 식구파' 일원이 동네 상점에서 행패를 부리다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집단상해 혐의로 A(39)씨를 구속하고 B(40)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은 또 업무방해 혐의로 C(4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 등은 지난 9월10일 새벽 서울 신림동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공금을 개인적으로 썼다는 이유로 같은 일원인 B씨에게 욕설을 퍼붓고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치는 등 집단적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C씨는 같은 달 16일 새벽 봉천동의 한 사우나에서 "탈의실에 전용 옷장을 제공해 달라"는 요구를 거절당하자 업소 물품을 부수고 문신제거 흉터를 보여주며 위협하는 등 영업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봉천동 식구파’에 몸 담고 있던 조직원들이었다. 봉천동 식구파는 봉천동 일대에서 활동하던 폭력조직 '봉천동 사거리파'와 '현대시장파'가 2001년 통합된 것으로, 조직원이 40여 명에 이를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봉천동 식구파는 봉천동 일대 재개발 공사 등 이권에 개입하고 가짜 석유를 판매하며 세력을 확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부하 여군 성추행 A사단장 긴급 체포
우리 군 역사상 처음으로 현역 사단장(소장)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되는 치욕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육군은 9일 수도권 한 부대의 A사단장(소장)을 성추행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육군 관계자는 “A사단장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부하 여군(부사관)을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법에 따라 엄중히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사단장은 지난 8~9월 다섯 차례나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추행을 당한 여군은 부대 내 병영생활 상담관에게 최근 이런 사실을 알렸고 8일 육군본부가 이 사실을 파악해 A사단장을 긴급체포했다.
육군 관계자는 “현재 성추행 피해자인 여군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다”며 “정신적 피해 등 추가적인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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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