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똥 튈라’몸 사리는 재계
신정아 후폭풍이 이번에는 재계로 몰아치고 있다. 그동안 신정아 파문의 초점이 ‘학력위조’, ‘권력형 비리’ 등에 맞춰졌다면 이제는 ‘정경유착’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신씨가 큐레이터로 있었던 ‘성곡미술관’에 기업들이 거액의 후원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련 기업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만약 변양균 청와대 전 실장이 어떤 식으로든 기업 쪽에 외압을 넣은 사실이 밝혀진다면 관련기업들은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때문에 각 기업들은 현재 검찰의 수사방향이 ‘제 3자 뇌물수수죄’ 적용쪽으로 흘러갈 것인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파문에 기업들이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성곡미술관 등에 내놓은 거액의 후원금이 검찰 수사결과 ‘뇌물’로 결론날 경우다.
신씨는 2002년에 성곡미술관에 들어가 2005년 학예연구실장이 됐고 올해 7월까지 근무했다. 성곡미술관은 신씨가 오기 전에는 별다른 기업후원 유치 실적이 없었지만 신씨가 학예연구실장이 된 후부터는 국내 대기업들로부터 잇따라 후원을 받았다. 이 기간 변 전실장은 기획예산처 차관, 장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외압설’이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변 전 실장과 부산고 동창인 박세흠 대한주택공사 사장이 대우건설 사장으로 재직했던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대우건설은 성곡미술관에 2억 9000만원을 후원했다.
대우건설은 2004년 ‘세계 어린이 비엔날레’ ‘풍경 Look&See’ 등 3개 전시회에 1억원, 2005년 미술관 개관 10주년 ‘Cool& Warm’ 등 4개 전시회에 1억원, 2006년 ‘존 버닝햄 40주년 기념전’ 등 3개 전시회에 9000만원을 입장료와 팸플릿 광고 형식으로 지원했다. 대우건설은 전시회 입장권을 임직원들에게 배포
해 왔다.
유력 대기업 대부분 리스트 올라
산업은행도 지난해 63건, 18억원 규모의 문화·예술행사 후원 중 미술 분야에서 성곡미술관에만 3건, 5000만원을 지원했다. 산업은행 김상록 총재도 부산고 출신이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7월 ‘존 버닝햄 40주년 기념전’에 1000만원, 11월엔 ‘알랭 플레셔전’에 1000만원 등 총 2000만원을 후원했다. 포스코도 지난해 알랭 플레셔전에 1억원을 후원했다. 삼성, LG, 국민은행도 후원기업 명단에 올라있다. 유력기업들은 대부분 후원자 리스트에 올라있는 셈이다.
검찰은 대우건설, 산업은행, 포스코, 하나은행 등 후원기업 임원들을 차례로 소환해 후원과정에 대해서 조사했다. 만약 수사결과 이런 후원들이 청탁의 대가로 이뤄진 것이라면 해당 기업들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기업들이 이처럼 ‘신정아 파문’에 줄줄이 얽혀 들어가고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문화계에 많은 후원을 해왔기 때문이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일반적인 후원활동도 청탁성으로 비쳐진다는 것이 기업들의 주장이다.
특히 그림에 관심에 많은 재벌 총수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은 적어도 한 두 개의 미술관 내지 박물관을 운영해왔다. 때문에 파문이 터진 초기에는 미술관을 운영하기만 해도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가 관장으로 있는 ‘리움미술관’이 악성루머에 휘말린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
신씨가 일했었던 금호미술관과 성곡미술관을 운영하는 기업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미술계 경력이 일천하던 신씨를 큐레이터로 처음 채용한 금호미술관은 금호아시아나 그룹 소유이며 최근까지 일하던 성곡미술관은 쌍용그룹 창업주의 호를 따서 만든 미술관이다. 공교롭게도 금호그룹은 리스트에 올라있는 대우건설을 지난해 인수했다.
지난 13일 새정치연대 장기표 대표는 “신씨가 금호의 대우건설 인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해고 금호 측은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란 공식입장을 내놨다.
재벌 2~3세와 염문설도 ‘곤혹’
또한 신씨가 도피 전까지 살았던 ‘경희궁의 아침’을 지은 시공사도 성곡미술관과 연관이 깊은 쌍용건설이다. 변 전 실장과 쌍용건설 김석준 대표이사는 고려대 동문이기도 하다.
기업들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다른 하나는 호사가들의 입에 신씨의 남자들로 오르내리는 인물 등 중에 기업관련 인물들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여의도 정가를 중심으로 거론되는 신씨의 남자는 대략 20명 선이다. 이 중 “신씨가 재벌 2~3세들과 내연의 관계를 맺어왔다”는 루머도 소리소문 없이 퍼지고 있다.
A그룹 명예회장의 아들로 지금은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B씨와는 한 때 혼담이 오고갔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C 제약회사 고위간부와도 자주 만남을 가져왔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현재 이러한 소문은 당사자인 신씨가 잠적한 상태여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양상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도 애매모호한 상황이다.
검찰 수사도 당사자인 신씨 없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신씨가 한국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밝히지 않는 한 소문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 신시와 무관한 기업들도 소문에 휩쓸려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을 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유다.
박혁진 phj1977@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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