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동거녀와 헤어질 것을 요구하는데 격분해 홀어머니를 살해 후 암매장한 20대 아들이 경찰에 붙잡혀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19일 사실혼 관계인 동거녀와 헤어지라고 강요하는 어머니를 살해한 허모씨(29)에 대해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허씨는 지난 8일 밤 11시경 경기 고양시 대장동에 사는 어머니 박모씨(77)와 말다툼을 벌이다 박씨를 둔기로 때리고 목 졸라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한 혐의다. 박씨는 경찰진술에서 어머니가 동거녀와의 관계를 반대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지만 어머니의 재산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비극이 잉태되기 시작한 것은 허씨가 3년 전 김모씨(29)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부터다.
허씨는 경기 안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A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A교회는 전북 익산의 B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를 자주 가졌는데 김씨는 B교회 신자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두 교회의 교류를 통해서 이뤄졌다. 급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든 두 사람은 곧 부평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허씨는 김씨와 동거하면서 세 살배기 딸까지 둔 사실혼 상태에서 박씨에게 결혼승락을 받으려 했지만 박씨는 줄곧 김씨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김씨에게 헤어질 것을 강요하며 심한말도 서슴지 않았다. 또 박씨는 김씨를 못마땅하게 여겨 수시로 헤어지라고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김씨에게 폭력을 휘두른 적도 있는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에 허씨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개선해 보려 노력했지만 어머니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이로 인해 모자지간의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혼을 종용하는 박씨의 압박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던 두 사람은 견디다 못해 대책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니의 성화가 극에 달하자 허씨는 생각 끝에 일단 헤어진 것처럼 꾸며 별거하면서 자신이 어머니를 설득해 보겠다고 김씨에게 제안했다.
지난 4월부터 아내와 헤어진 척 별거하면서 박씨 집 근처인 고양시 백석동의 한 오피스텔로 옮겨 생활해온 허씨는 박씨를 원망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김씨를 허락해 달라고 끊임없이 설득했다. 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박씨는 허씨가 김씨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화를 내며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꺼내지 말
라고 화를 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의 반대에 대해 “박씨가 아들과 며느리의 관계를 반대한 표면적 이유는 며느리가 키도 작고 못 생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며 “내가 보기에 진짜 이유는 아들을 곁에 두기 위한 욕심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며느리를 보니 보통수준의 외모에 참하고 얌전한 편이었다”며 “허씨의 진술이나 주변인들의 진술을 들어보면 박씨는 아들에 대한 소유욕이 강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헤어진 듯 연기하며 박씨를 설득했음에도 소득이 없자 김씨는 지난 7월경 허씨에게 “따로 생활하니 생활비도 많이 들고 아이를 혼자키우기도 너무 힘들다”며 “어차피 어머니의 뜻은 변함이 없을 것 같으니 그냥 같이 사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다.
이에 허씨는 이달 10일 다시 합치자고 말한 뒤 전날 고양시에 거주하는 박씨를 찾아가 다시 김씨와 살겠다고 말했다.
이 소리를 듣고 대노한 박씨는 허씨에게 “너 같은 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 당장 사라져라”며 “그 여자와 같이 살겠다면 내 재산을 단 한 푼도 줄 수 없으니 그리 알아라”고 말했다.
참다못한 허씨는 박씨와 크게 말다툼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진 허씨는 그만 박씨를 둔기로 내려친 뒤 목 졸라 살해하고 말았다.
허씨는 또 박씨를 살해한 다음날 시신을 텐트가방에 담아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경기도 포천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
경찰조사에서 허씨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경찰에 자수하려 했지만 처자식이 눈에 아른거려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며 “그동안 참아왔던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너무 커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고 괴로워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억대 재산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은 재산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의 재산에 대해 미스터리 한 부분이 있다고 전하면서 “박씨는 평안도에서 월남해 홀홀단신으로 자식을 키워왔는데, 재산은 대략 6~8억
정도 되는 것 같다”며 “그러나 어떻게 이 돈을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심지어 아들이 허씨도 어머니가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의아해 했다.
이밖에 경찰 조사에 따르면 허씨 부부는 박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로 매우 애틋했던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어머니의 반대가 심해 두 사람이 부부싸움을 자주 했을 법도 하지만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들었다”며 “어머니만 고집을 꺾고 이들 관계를 허락했으면 매우 행복한 가정을 꾸렸을 것”이라고 말하며 아쉬워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박씨는 김씨가 아이를 낳아도 한번 찾아보는 일이 없었다. 이에 두 부부는 손녀의 사진을 보여주면 박씨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박씨는 사진을 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찢어 버렸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끝까지 자식을 축복해 주지 않은 어머니도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의 반사회적 패륜범죄는 절대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윤지환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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