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외교부 모두 피랍선원 외면 했다
해수부, 외교부 모두 피랍선원 외면 했다
  • 윤지환 
  • 입력 2007-08-09 14:50
  • 승인 2007.08.09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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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피랍 선원 어디에…”

아프간 피랍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소말리아 피랍 어부에 대해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동원호 사건의 충격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지난 5월 16일 소말리아 주변 해역에서 발생한 이 피랍사건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 표류중이다. 피랍된 한국인 모두 4명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건강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피랍된 두 척의 선박은 탄자니아 선적으로 선장 및 선주는 모두 한국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외교채널을 동원해 이들의 석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과연 그 노력이 얼마나 실효를 거두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피랍 80일이 훌쩍 지났음에도 이들의 석방이 지연되자 일각에서는 정부가 관심의 끈을 놓은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식통 “정부, 선원 석방 협상 추진 거의 안해” 주장
해적들의 천문학적인 몸값 요구가 협상의 최대 난적


피랍된 한국어선 2척은 케냐 뭄바사항 출발, 예멘으로 가던 중 소말리아 해안에서 180마일 떨어진 해역에서 소말리아 해적으로 추정되는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다. 어선이 피랍되자 정부는 소말리아 외교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선원들의 조기 석방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마영삼 외교부 아중동 국장은 일본 주재 케냐 대사에게 조속한 석방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선을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과 협상루트를 개척하고 있는 동안 아프간 피랍 사건이 터진 것이다. 아프간에서 한국인 23명이 무더기로 피랍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외교통상부의 소말리아 대책반은 아프간 대책반으로 돌변했다. 아프간 피랍 한국인이 피살되면서 이런 상황은 더욱 굳혀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이중적 태도에 분노

“소말리아 피랍 어부들을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그들을 억류하고 있는 해적들은 계속 협상 창구를 열어놓고 있기 때문에 아프간 피랍자들보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현재로서는 당장 내일 어찌될지 모르는 아프간 피랍자들을 구출하는 게 우선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현재 방침을 이렇게 설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소말리아 피랍 어부들에 대한 정보는 계속 확인하고 있다”며 “아프간 사건이 마무리되면 곧 소말리아 해적들과 접촉해 어부들을 석방시키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외교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소말리아 현지의 한 소식통은 정부의 노력에 대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선원들 사이에선 정부가 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며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드러난 게 아무것도 없다. 그에 반해 다른 나라는 실질적인 접촉과 협상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정부가 다양한 외교채널을 통해 교섭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도대체 어떤 채널을 통했는지 밝혀진 바 없다”며 “현지 선원들도 한국정부는 교섭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일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해양수산부와 외교부는 이 사건을 외면하기 바쁜 모습이다. 해양수산부는 피랍어부들에 대해 선원수첩도 없고 배도 한국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외교부 역시 노력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어부들은 분명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피랍된 한국 선원 4명은 모두 해기사 자격증 및 선원수첩과 선원등록증 등을 소지한 것으로 알려져 이들이 무사히 귀국할 경우 외교부와 해수부에 비난여론이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협상 최대 관건은 천문학적 몸값

현재 협상은 탄자니아 국적인 마부노호를 소유해온 한국인 선주가 나서서 하고 있지만 진전이 되지 않고 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해적들이 요구한 한국인들과 선원 24명에 대한 몸값은 500만 달러(46억원) 수준으로 밝혀졌다. 이는 당초 알려진 70만달러(6억원)보다 7배나 많은 액수다. 소말리아 해적은 지금까지 제시한 몸값을 한 번도 낮춘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몸값은 협상 타결의 난제로 작용될 전망이다.

이밖에도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협상의 장애요소는 또 있다. 여러 국적의 선원이 함께 납치된 점 때문에 협상창구가 단일화되지 않아 효율적인 대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피랍 당시 2척의 어선에는 선장 한석호씨, 총기관감독 이성렬씨, 기관장 조문갑씨, 기관장 양칠태씨 등 한국인 4명과 중국인 10명, 인도네시아인 4명, 베트남 및 인도인 각 3명 등 총 24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소식통은 각국이 각기 다른 교섭 채널을 통해 해적들과 협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질석방 방법과 몸값 제안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해적들의 요구조건이 수시로 변하고 있으며 억류 기간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하지만 변수는 있다. 아프리카 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이 협상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아프리카 투자와 개발에 큰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이번 사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피랍된 24명은 아직까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오랜 억류생활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지친 상태로 전해졌다.

[한국인 최근 해외 피랍 일지]

▲2003. 11. 30 = 오무전기 직원들, 이라크 티크리트 고속도로서 차량 이동 중 피격. 김만수 곽경해씨 사망, 이상원 임재석씨 부상.
▲2004. 4. 5 = 지구촌나눔운동의 한재광 사업부장과 무역업체 직원인 박모씨, 이라크 나시리야에서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 추종 민병대원들에 의해 억류됐다가 14시간여만에 석방.
▲2004. 4. 8 = 변경자씨 등 한국인 목사 7명, 이라크 바그다드 서쪽 250㎞ 지점에서 차량 이동 중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피랍.
▲2004. 5. 31 =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 물건배달을 위해 바그다드에서 팔루자로 트럭을 이용해 이동하다 무장단체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에 피랍.
▲2004. 6. 20 = 이라크 알-자지라 방송, 한국인 김선일씨 피랍 사실 공개. `24시간내 철군하지 않으면 살해 위협.
▲2004. 6. 22 = 김선일씨 참수된 채 팔루자 인근 도로에서 시신 발견.
▲2004. 8. 7 = 이라크 취재 중이던 외국언론사 소속 한국인 기자 조모씨 무장 세력에 억류된 뒤 15시간30분만에 석방.
▲2005. 2. 18 = 나이지리아 교민, 몸값 노린 무장세력에 피랍 뒤 석방.
▲2005. 7. 28 = 아이티 교민 서모씨,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몸값 노린 무장괴한에 의해 피랍. 사흘만에 석방.
▲2006. 3. 14 = KBS 용태영 특파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무장단체 PFLF(팔레스타인 해방전선) 소속으로 추정되는 무장괴한들에 의해 피랍.
▲2006. 4. 4 = 동원수산 수속 원양어선 제628호 동원호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조업중 현지 무장단체에 피랍.
최성식 선장 등 한국인 8명, 인도네시아인 9명, 베트남인 5명, 중국인 3명 등 총 선원 25명 피랍.
▲2006. 6. 7 = 대우건설 근로자 3명, 한국가스안전공사 직원 2명 등 한국인 5명 나이지리아 유전지대 포트하코트내 대우건설 현장에서 현지 무장단체에 의해 피랍.
▲2007. 1. 10 = 나이지리아 남부 바엘사주 오구지역서 대우건설 소속 한국인 근로자 9명과 현지인 1명 등 10명이 무장단체에 피랍.


# 한국인 피랍의 원인은 ‘무모함’

1년여전 동원수산 소속 원양어선 피랍사건이 발생했던 소말리아 주변 해역에서 한국어선이 또 납치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험에 대한 불감증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1991년 독재정권이 붕괴된 이래 무정부 상태에 빠져든 소말리아는 공권력이 무력해지면서 지역 민병대로 구성된 해적의 활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수역의 한 곳으로 지적되어온 소말리아 해역에서는 지난해 한동안 해적의 출몰이 뜸했으나 지난 1월부터 다시 납치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이 해역을 지나는 선박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동원호는 해적활동이 절정이던 지난해 4월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이 해역에 들어갔다. 그러다 결국 해적에 피랍돼 선원들은 생사를 오가는 117일을 보내고 겨우 석방됐다. 이번 피랍사건 역시 해당지역이 이미 피랍사건이 발생했던 지역에서 재발한 사건이다. 그 해역은 2006년 4월 동원호 선원들이 납치될 때까지도 국제적으로 해적이 출몰하는 위험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1년 만에 또 들어가다 피랍된 것이다. 그렇다면 선원들 모두 소말리아 해역에 대한 위험성을 몰랐던 것일까.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경력으로 미루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그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모험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그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윤지환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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