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리 오너 풀어주면 투자 늘까…의문부호 많아
MB때도 없던 대대적인 기업세무조사 유예, 그 결과는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유명 기업의 광고 문구다. 해당기업의 사업부문과 잘 어우러져 기업이미지는 물론 매출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광고문구가 재계 전반에 적용된다면 결과는 어떠할까. 최근 들어 정부가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유예 방침을 밝히고, 비리총수들의 사면을 언급하면서 이 같은 의문이 함께 떠오르고 있다. 이에 [일요서울]은 정부의 방침이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지 각계의 반응을 살펴본다.
일반인 중 다수는 “기업이 활발히 움직여줘야 나라의 경제가 좋아지는 것 아니냐”며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증시전문가들은 같은 질문에 의문부호를 내밀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시전문가는 “우리나라가 최근 10년 이내에 좋아졌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기업이 잘되면 그 반사이익이 서민에게 돌아오는 게 아니고 결국은 오너 뱃속 불리기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쉽게 말해 월급쟁이들이 자주 말하는 게 물가와 공공요금은 다 오르는데 안오르는 건 자신의 월급이라며 푸념을 내놓는 것을 자주 보았을 것”이라며 “서민이 잘살아야 나라가 잘사는 것이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인 거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기업들은 수익이 예상되는 곳에 돈을 쏟아부을 뿐이다. 오너가 수감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에서 별 차이가 없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사법 처리로 회장 부재 상태인 재벌그룹들의 주가가 10대그룹 중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2일 한국거래소와 재벌닷컴에 따르면 CJ그룹과 SK그룹의 올해 시가총액 증가율은 각각 31.76%, 14.36%로 10대 재벌그룹 중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CJ그룹 시총은 지난해 말 16조822억 원에서 지난달 19일 현재 21조1902억 원으로 5조1080억 원이나 불어났다. CJ 주가가 53.39%, CJ대한통운이 59.50%, CJ E&M이 58.20% 각각 급등하는 등 9개 상장사 중 7개 상장사 주가가 상승했다.
SK그룹 시총도 같은 기간 80조8723억 원에서 92조4896억 원으로 11조6173억 원 늘었다. SK하이닉스 주가가 21.83%, SK텔레콤이 27.17% 각각 오르면서 그룹 전체 시총 증가를 이끌었다.
이 기간 10대 그룹 전체 시총이 3.11%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두 재벌그룹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같은 기간 삼성그룹 시총은 7.55% 감소했고 현대중공업그룹은 40.16%나 급감하는 등 나머지 6개 그룹의 시총은 줄었다. 시총이 증가한 그룹은 LG그룹(8.69%), 포스코(6.05%) 등 두 곳에 그쳤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재벌그룹들이 전문경영인 등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므로 총수가 부재해도 주가에 큰 영향은 없다고 본다”며 “다만 총수 부재가 단기적으로는 주가에 큰 상관이 없더라도 대규모 인수합병(M&A) 등 전략적 의사결정을 마비시켜 장기적으로 그룹의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업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수감된 재벌 총수들을 풀어주면 투자와 고용이 늘기는 할까. 과거의 경험을 보면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고 기업들의 요구를 많이 들어줬다.
그러나 늘어난 건 투자와 고용이 아니라 재벌들의 곳간이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대기업의 현금보유액은 2배 이상 늘었다. 경제활성화는 뒷전이고 돈을 쌓아놓기에 바빴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 “재벌들이 과실만 따먹고 투자를 외면했다”고 역정을 냈다고 한다.
정부의 노림수는
최근 정부의 규제개혁 완화도 결국은 재벌 총수 살리기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총수들의 비자금 및 횡령 금액이 일반인에게 사용됐다면 나라 경제 살리는 데 더 보탬이 됐을 것이란 주장도 많다.
그러나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삼아 현재 구속 수감돼 있는 일부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사면이나 가석방 등 선처 가능성을 시사했다.
게다가 국세청도 음식·숙박·운송업 등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업종과 영화·게임 등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업종 가운데 연매출 1000억 원 미만인 130만개 기업에 대해 내년 말까지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법인세 등 신고내용에 대해 사후검증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안에는 대기업 계열사도 속해 있어 결국은 재벌 봐주기식 세무조사가 될 수 있다.
발표 시점도 공교롭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에 출국한 틈을 탔다. 파장이 커지자 청와대는 “사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청와대와 교감 없이 핵심 장관들이 민감한 문제를 거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때문에 황 장관과 최 부총리의 사면 발언이 어떠한 결과를 도출해 낼지에 이목이 쏠린다. 또한 과연 비리 오너의 사면이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재차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