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총대메라 한발짝 물러설게
누군가 총대메라 한발짝 물러설게
  • 이인철 
  • 입력 2004-11-04 09:00
  • 승인 2004.11.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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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많이 따겠네”, “충성경쟁이야”.이해찬 국무총리의 한나라당 폄하발언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내던진 말이다. 탄핵사태 이전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야당을 공격하더니 이제는 총리가 바통터치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른바 ‘마스크 용병술’을 쓰고 있다는 논리다. 주요 현안에 직접 나서기보다 자신의 의중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앞세워 할 말은 한다는 것. 주목받고 있는 노 대통령의 ‘마스크 용병술’을 짚어봤다.‘마스크 용병술’은 노 대통령이 분권형 국정운영시스템을 도입할 때부터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노 대통령은 지난 8월말 이해찬 국무총리,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 이른바 열린우리당에서 차출한 3인방에게 권력을 나눠줬다.

이 총리는 국정전반을 총괄, 정 장관은 외교안보라인, 김 장관은 사회문화분야를 책임지는 분권형 국정운영시스템을 도입한 것.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동안 대통령의 이미지와 역할에 대한 혼선이 있었고 이것이 국정 혼선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었다”며 “새로운 대통령의 역할을 정립해 이런 문제에 대한 가닥을 잡아나갈 필요가 있다”고 도입배경을 말했다. 청와대도 ‘제왕적 대통령의 관행을 벗어난 새로운 대통령 역할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당정청의 유기적인 협력관계와 그 동안 정쟁의 한 가운데 서 있던 대통령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여권의 대표적인 대권주자들이 정부 각료에 임명되면서 ‘경쟁구도’를 만든 정치적 배경도 고려됐다고 해석했다. 당시 야권의 한 관계자는 “분권형 시스템으로 이해찬 총리가 급부상해 정동영, 김근태로 굳혀지던 차기후보군을 견제하려는 측면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자칫 충성경쟁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고 평했다.

이 관계자는 충성경쟁과 관련 “노 대통령도 국민의 정부 시절 DJ가 보수언론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을 때 선두에 서서 DJ를 대변하는 공격적 발언으로 총애를 받았다”며 “이번에 큰 책임을 맡게 된 3인방이 대통령의 의지를 한 발 앞서 대변해 야당의 공격으로부터 대통령을 보호함과 동시에 야당의 전선이 자신에게 돌아오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망했다. 실제 노 대통령은 분권형 시스템 도입이후 정국현안에 대한 발언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 대신 3인방의 목소리가 커졌다.이 때문에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0월 초 국정감사대책회의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직접 발언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이 국민들의 요구에 대해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마치 당에 책임이 있는 듯이 모든 사안을 열린우리당에 떠 넘기고 당 뒤에 숨어 침묵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지금의 사회 갈등과 국론분열은 국보법 폐지, 수도이전, 과거사 들추기 때문인데 이는 노 대통령이 주장했던 일이고 저지른 일인데도 본인이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이 총리가 노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국정운영의 실질적인 책임을 맡게 돼 ‘실세총리’로 불리는 이 총리는 대통령을 대신해 유럽에서 열린 진보정상회의에 참석하고 국정연설을 대독하는 등 활동 폭이 넓어지고 있다. 최근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한나라당과 조선, 동아 두 신문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발언도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생각을 총리가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나라당 모 의원은 28일 의총자리에서 “총리가 저렇게 야당에 대해 함부로 하는 것은 뒤에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라며 노 대통령을 성토했다. 총리를 앞세워 놓고 대통령은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상 노 대통령이 마스크 용병술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이같은 분위기여서인지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이 총리 발언에 대한 집중성토에도 불구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고 여론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정쟁의 한 가운데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노 대통령의 이른바 마스크 용병술이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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