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은 수단과 방법을 부려 벌어들인 그 많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 그 돈을 재투자해서 귀중한 가치가 있는 고미술품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 매입해 관심 있는 일반시민, 박물관, 미술관에 판매하면 얼마나 좋을까. 또 고미술품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능력과 재력이 있는 수장가에게 매도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 될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렇게 되면 뛰어나고 비싼 유물이 아니더라도 작지만 예쁘고 잘생긴 수많은 우리 유물에도 일반인의 관심과 애정이 모아져 유물거래가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숨었던 유물도 다시 나와 고미술시장이 되살아날 것이다. 소상인의 가게에도 햇볕이 비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까지 수백 수천 점의 유물을 봐왔다. 그래도 처음 보는 귀중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유물이 있다. 큰 유물에서도, 작은 유물에서도, 아주 가끔은 시중에 새롭게 나와서 볼 기회가 있다.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고 쓰다듬어보고 어루만져 보면서 이 유물이 어디로 가든지 다시 깊숙이 숨지 말고, 해외로 나가지 말고,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으로 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언제나 가져 본다.
그런데 그 큰 돈이 어디로 갔는지 소상인에게도 아니 가고, 재투자도 되지 않았다는 소문만 자자하다. 물론 이런 소문은 과장되기도 하고, 상인간의 이해 상충으로 와전돼 널리 퍼져나갈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고미술 관계 상인과 거기 깊숙이 관여해서 그 내막을 안다고 하는 사람을 만날 때 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소자본 상인들은 판로도 마땅치 아니한데 반드시 감정 평가서도 받아야 한다. 또 거상의 눈치도 보아야 하니 거상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장사도 못하게 된다. 그나마도 판로가 막막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가짜를 팔고 진짜 바탕에 그림을 그려 속여팔기도 하는 등 사기행각을 벌이게 된다. 그래도 꿋꿋하게 작은 수익이라도 올려서 올바르게 버티고 있는 상인을 보면 저절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렇지 못한 거간이나 소상인은 모처럼 물건이 하나 나온 것을 수소문해 친분 있던 거간이나 거상인에게 매매를 의뢰한다. 의뢰받은 상인은 팔아 준다하고는 행방이 묘연해진다. 요새 고미술값이 없어 안 팔린다고 하고는 억지로 겨우 팔았다고 하며 판매금액이 1/5이나 1/10 밖에 주지 않는다고 한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원로거상과 훌륭한 거간이 있었다. 고미술시장에도 어르신이 있어 상가의 질서가 섰다. 잘못된 거래를 하는 상인을 불러다가 호되게 꾸짖고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엎드려 사과하라고 하면 가서 사과를 하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모든 거래가 그렇듯, 신용거래가 많아 원매자가 물건을 내어주면 성심껏 팔아서 돈을 갖다 주면 소정의 사례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것은 상계의 법도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요사이는 백주대낮에 부당하게 물건과 돈을 떼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관여한 일도 없는데 고소 고발을 당해 억울하고 황당한 일을 당한 사람도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죽도록 억울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시장이 정상적으로 운영 될 리가 없다. 전국에 천여 곳쯤 된다는 고미술 상가가 거의 다 깊은 한숨만 쉬고 있을 것이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재력 있고 신용이 있다고 알려진 몇몇 수장가가 마음에 드는 유물이 있으면 선선히 유물을 사고 어음을 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수십 수백 건이 쌓여도 어음이 현금화되지 아니하면 상인도 낭패요 수장가도 낭패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재력과 신용이 있던 수장가들도 들어올 돈이 들어오지 아니하니 속이 탈 수 밖에 없다. 상인으로서는 장사가 안 되는 어려운 시기에 믿고 어음을 받고 유물을 팔았으나 돈이 되지 아니하니 큰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 <한국미술발전연구소>
청화백자 운용문준
백자준 15세기 호림박물관 소장
우리나라에 항아리가 많다는 이야기는 이미 한 일이 있다. 특히 백자 항아리가 많다는 것은 몇백년씩 된 항아리가 어찌 그리 많은지 전란을 겪고 나서도 살아남아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항아리는 소중한 먹을거리나 약재 등과 혹 귀중한 문서라도 깊숙이 보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항아리는 15세기의 키 큰 항아리 중에서도 잘생긴 항아리로 키가 큰 이러한 형태는 백자준(白磁樽)이라고 해야 한다. 구연부는 밖으로 단정하게 말아 정리하였는데 아주 말아 붙여 어깨에 닿지 아니해 구연아래 낮은 목이 보인다. 구부가 몸체에 붙었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상큼한 이 낮은 목이 이 준의 첫 번째 매력이다. 목으로부터 어깨와 상동(上胴)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팽창되지 아니하고 적절하게 벌어졌다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아주 조금씩 좁아지면서 굽에 이른다. 따라서 구부에서 목을 지나 어깨와 상동을 지나 굽에 이르는 모양이 하나의 유연한 아름다움을 지닌 선으로 이루어졌다. 태토도 정제됐고 유약도 조선초의 상품유약으로 조선초를 대표할만한 걸작이 아닐 수 없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정양모 교수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