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법무 ‘기업 총수 사면 검토’ 파장
황교안 법무 ‘기업 총수 사면 검토’ 파장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4-09-29 11:14
  • 승인 2014.09.29 11:14
  • 호수 1065
  • 2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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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우리 회장님 언론기사 빼주세요”

동양·LIG·태광 예의주시…국감 증인 채택도 부담
선처방식 수위 관심…법무부 “논의된 바 없다”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황교안 법무장관이 “기업 총수들에 대한 사면 및 선처를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재계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이번 발언이 정부의 경제살리기 정책에 특정 기업의 적극적인 협조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되면서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이미 총수가 구속되었거나 법의 테두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업의 대외협력팀 임직원들의 행보가 빨라지는 정황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일부 홍보팀 직원들은 내달 있을 국정감사 기간 중 기업 임원 및 총수의 증인채택 여부가 이번 사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며 여의도로 발길을 옮긴다.

재계 복수의 관계자는 “사면 검증기간 동안 불미스러운 일에 임직원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기 위해 내부단속이 한창"이라며 “특히 내달 있을 국정감사와 관련해서 증인채택이 되면 여론에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홍보팀 직원은 “그동안 거론된 총수의 이름을 언론기사에서 삭제하기도 한다"며 “다 알려진 내용의 기사라도 사면 검증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사례가 종종 있어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가는 게 속 편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국정감사에서 증인채택 여부가 걸림돌이 될 수 있기에 회사명 또는 임직원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도록 밤낮으로 국회와 증권가를 찾아 동향을 예의주시 중이라고 한다. 증권가는 루머가 양산되는 곳이기에 더욱 긴장하고 주변을 살핀다고도 한다.

특사는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무회의에 안건이 상정돼 통과되면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처럼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특사가 단행되기 전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새어 나오게 마련이다. 현재까지는 성탄절이나 연말·연초 특사가 진행 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만이 나돌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사면권을 남용하면 안 된다고 밝힌 바 있고, 취임 첫해인 지난해 한 번도 특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올 1월 설 명절 즈음에 특사를 한 차례 단행했지만 이마저도 특정인보다 일반인 사면에 그쳤던 만큼 이번 발언이 가져 올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예고된다.

그렇다면 황 법무장관의 발언처럼 박 대통령이 기업인에 대해 사면을 단행할 경우 가장 먼저 거론될 것으로 예상되는 총수는 누구일까. 단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어느 선까지 거론될까

대법원에서 4년형을 선고받은 최 회장은 형기의 3분의 1을 마친 상태여서 가석방도 가능하다. 지난 23일자로 수감 600일째를 맞기도 했다.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징역 3년6월),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징역 4년),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징역 3년) 등도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이와 함께 4년의 실형을 받았지만 병보석 중인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과 치매 등으로 형집행정지 중인 이 회장의 모친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도 선처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우 사건이 상고심 계류 중이지만 선처 가능성은 열려 있다. 기업비리 혐의로 재판 중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등도 선처 대상으로 꼽힌다.

한편 지난 24일 황 장관은 “(기업 총수의 사면이) 경제 살리기와 연결된다면 일부러 차단할 필요가 없다”며 선처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시사했다.

법무부 관계자 역시 “전(全) 정부 차원에서 경제 살리기에 역량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 중 재벌에 대한 사면도 국민 여론이 허락하면 어느 단계에서는 검토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해당 부처인 법무부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 관련 부처에서도 감지된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경제관련 부처 회의에서도 기업의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총수의 사면문제가 언급된 바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기업 총수에 대한 사면 등 선처 방침이 조심스레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자칫 섣부른 사면이 국민정서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적 판단을 하겠지만 기업 총수들도 형기를 다 채우는 게 정의의 원칙이고 그게 법질서를 세우는 일”이라며 현재의 사면 분위기를 경계했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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