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로지스틱스 인수SPC 투자 행보 눈길
“진출 계획 없다” 못 박아도 의심 눈초리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롯데그룹이 난데없는 일감몰아주기, 대기업 횡포라는 시선을 받고 있다. 택배사업 진출설 때문이다. 현대로지스틱스 인수 특수목적법인(SPC) 투자, 주요주주 지위 확보 등이 진출설의 배경이다. 택배업계는 롯데의 진출설만으로도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롯데 측은 “택배업 진출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뿐만 아니라 GS, 농협 역시 택배 사업 진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택배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롯데그룹(회장 신동빈) 택배사업 진출설이 불거졌다. 롯데 측이 현대택배를 운영하는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한 일본 금융기업 오릭스 SPC에 투자 계약을 체결하면서부터다.
현대그룹이 매각한 현대로지스틱스는 택배시장 점유율 14%인 업계 2위 기업이다. 현대그룹은 지난 7월 오릭스와 현대로지스틱스 경영권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상선과 현대글로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보유한 현대로지스틱스 지분 88.8%(6000억 원)와 현대로지스틱스가 계열사를 대상으로 발행한 신주인수권(500억여 원)을 인수한다는 것이 주 골자다.
오릭스는 SPC를 설립해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했는데, 문제는 롯데그룹도 여기에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롯데는 1250억 원의 투자를 통해 현대로지스틱스의 주요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율은 오릭스 35%, 롯데그룹 35%, 현대상선 30%다.
업계는 롯데의 이 같은 움직임을 택배사업 진출 포석으로 봤다. 앞서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택배사업 진출 가능성이 제기돼 왔던 만큼 이번 투자를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롯데그룹 측은 이 같은 설을 부인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현재 택배사업 진출에 대한 논의는 없다”면서 “현대로지스틱스 SPC 투자는 단순한 투자에 불과하다”고 못 박았다. 오릭스 측의 참여 요청에 따른 투자이며, 지분을 인수할 경우 그룹 내 물류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란 것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도 “현대로지스틱스에 대한 문제로 롯데 측과 접촉이 있었던 적은 없다”며 “오릭스 측에서 롯데 측에 투자를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택배사업 진출설은 잠재워지지 않고 있다. 롯데쇼핑이 단독으로 투자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지만 롯데로지스틱스, 호텔롯데, 롯데케미칼, 롯데리아 등 8곳의 계열사가 투자금 일부를 부담했기 때문이다. 특히 물류계열사인 롯데로지스틱스의 참여는 이 같은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로지스틱스는 현대로지스틱스 인수 SPC 자금 조달을 위해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또다른 SPC인 이지스일호로부터 200억 원 상당을 출자했다. 롯데그룹은 투자기간 종료 후 현대로지스틱스를 매입할 수 있는 일종의 조건부 콜옵션도 보유할 것으로 전해진다.
GS·농협 가세 업계 파장↑
택배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단순투자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자금력이 풍부한 롯데쇼핑 단독투자가 아닌, 자금력이 부족한 물류계열사인 롯데로지스틱스가 투자에 나선 상황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업계는 이를 두고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의식해 겉으로만 부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최근 민간 택배업체들이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적인 유통망을 구축한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할 경우 민간 택배회사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민간 택배업체들은 시장규모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가져가는 이익은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 포화에 따른 출혈 경쟁으로 택배 단가가 10년째 2000원 선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또 택배회사는 고객사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만큼, 롯데가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하게 되면 롯데그룹과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들이 거래를 끊을 수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식품, 의류 등 각 업종마다 라이벌들이 있는데, 롯데가 직접 택배사업에 나서면 그룹 내 계열사의 지원은 있을 수 있더라도 경쟁사들은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업계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또 다른 대기업인 GS그룹과 농협도 택배업계 진출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편의점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GS는 2007년 대한통운 인수전에 참여하며 택배 시장에 대한 의지를 내비쳐온 바 있다. 현대로지스틱스 인수전에도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GS 역시 GS리테일, GS홈쇼핑, GS왓슨스 등 유통계열사와 GS건설, GS칼텍스 등 물류 이동이 많은 만큼 택배사업 진출로 인한 업계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예측된다.
마찬가지로 농협도 하나로마트와 하나로클럽을 운영하고 있어 기존 택배업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농협 측은 지난 8월 우체국택배가 토요일 영업 중단을 선언한 뒤 “거래비용 절감을 위한 택배사업 진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는 정부가 준공공기관인 농협의 택배사업 진출을 묵인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민간 업체와는 달리 준공공기관인 농협은 화물차 운수사업법에 적용받지 않을 예정이어서 특혜논란까지 가중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농협의 택배시장 진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소비자들은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등의 횡포를 우려하면서도 경쟁을 통해 서비스나 가격 측면 개선에 기대를 하는 모습이다. 경쟁사가 늘어날수록 서비스 수준이 올라가고 가격 경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처럼 택배업계 지각변동이 예고되는 있는 가운데 진출설이 제기된 업체들의 귀추가 주목된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