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 탄탄한 재력에 ‘좋은 집안’, 통큰 정치 지향하는 ‘무대’
김무성 대표, 탄탄한 재력에 ‘좋은 집안’, 통큰 정치 지향하는 ‘무대’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4-09-29 10:08
  • 승인 2014.09.29 10:08
  • 호수 1065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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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김무성 대표는 듬직한 인상을 주는 외모만큼이나 성격이 호탕하다. 사람 사귀기도 즐긴다. 따라서 새누리당 안에서 뿐만 아니라 야권에도 친한 정치인이 많다. 같은 시기에 여야 원내대표를 지냈던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과는 호형호제 하는 사이다.

특히 여권에선 김 대표의 그늘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본인은 “계파를 만들 생각도 계파정치를 할 생각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당에 ‘무대(무성이 대장)계’가 꾸려지고 있다는 건 정가의 정설이다.

김 대표의 당내 위상은 7·14 전당대회 때 대의원들의 표로 확인됐다. 더 엄밀히 따지면 1년여 전인 2013년 5월 15일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당시 원내대표 경쟁자는 지금은 김 대표와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는 친박 핵심 최경환 의원과 역시 친박인 이주영 의원(해양수산부 장관)이다. 두 사람은 당시 경쟁적으로 ‘SOS’를 보내며 ‘김심(金心·김무성의 의중)’ 논란까지 벌여 마치 과거 박 대통령이 ‘무관의 제왕’이던 시절 당내 경선과정에서 ‘박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일을 연상시켰다.

김 대표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탄탄한 재력과 ‘좋은 집안’이다. 선친은 전방(전남방직) 설립자인 김용주 전 의원이다. 형은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다. 누나 김문희 씨는 학교법인 용문학원(용문중학교, 용문고등학교)의 이사장으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어머니다. 현정은 회장이 김 의원의 외조카가 된다. KBS 2TV 드라마 ‘아이리스2’ 등에 출연했던 배우 고윤(본명 김종민)은 김 대표의 아들이다. 김 대표의 장인은 경남 남해의 세도가였던 최치환 전 의원(1987년 작고)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큰 꿈을 꾼다면 선친의 후광이 빛을 발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부산에서만 5선을 했지만 경북 포항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선친이 포항에서 큰 기업을 경영했을 뿐 아니라 포항 영흥초등학교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 등이 영흥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김 의원은 이런 인연으로 2013년 10·30 포항남-울릉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를 검토하기도 했다.

과거 대선 때마다 영남권의 표 결집은 대세를 갈랐다. 역대 대통령 11명 가운데 무려 7명이 영남에서 나왔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다. 비(非)영남권은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황해도)과 내각제에서의 윤보선 전 대통령(충남), 과도기 국정을 이끌었던 최규하 전 대통령(강원),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전남) 밖에 없다.

따라서 PK(부산·경남) 출신으로 TK(대구·경북)와 끈끈한 인연이 있는 김 대표는 양대지역을 아우를 수 있는 호조건을 갖췄다. 명실상무한 ‘영남 대권주자’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가뜩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이후 뚜렷한 차기 주자가 떠오르지 않는 TK에서 김 대표를 ‘차선책’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경북 영천 출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최근 들어 ‘친(親)TK’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 대구·경북 유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선친의 영향으로 정치를 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그동안 아버지 얘기는 잘 안 했다.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대(代)를 이어 정치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선친인 김용주 전 의원은 이승만 정권이 옳지 않다고 판단해서 야당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다가 ‘2·4 정치파동’(1958년 언론과 야당을 탄압하고자 신국가보안법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사건. 국가보안법 관철이 주목적이어서 ‘보안법 파동’이라고도 한다) 때 큰 피해를 봤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4대 민의원 선거 때 경남 함양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했다가 부정선거 때문에 불과 24표 차이로 졌다. 4·19 직후 5대 참의원으로 당선돼 민주당 원내총무를 했다. 윤보선 대통령, 장면 내각 시절이다.

당시 참의원 원내총무는 참의원-민의원 양원 원내총무였다. 김 대표가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원내대표를 지낸 만큼 우리 헌정사에서 첫 부자(父子) 원내대표 기록을 그 때 쓴 셈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에 입문해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다 2005년 당시 박근혜 대표의 요청으로 당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2007년 대선후보 경선을 전후해 ‘친박계의 좌장’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박 대통령과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수차례 반복한 뒤 ‘비박계의 수장’이 됐고, 친박계 모두를 상대로 일합을 겨루고 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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