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참배 사건으로 공론화
‘모바일 투표 재도입’ 놓고 원내대표 기능 상실
[일요서울 | 박형남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요즘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다. ‘탈당 파동’ 사태가 정리됐지만 ‘직’만 유지할 뿐 당내에서 좀처럼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를 구성하면서 더더욱 그렇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 ‘모바일 투표 도입’ 등 당내 굵직굵직한 사안에 대해서 박 원내대표는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원내대표를 제외한 비대위원들이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주연’이 되어야 할 판에 ‘카메오’ 신세로 전략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비대위원장-비대위원들이 주인공이 돼 ‘박영선 왕따 사건’이라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주변이 갑자기 적막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한 말이다. 그저 별 의미 없이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그 말 속에는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는 박 원내대표 본인의 안타까운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 소외…박영선 실종
박 원내대표는 ‘이상돈 비대위원장 영입’을 과정에서 친노 강경파에 밀려, ‘탈당’까지 고심했다. 그러나 당내 인사들이 ‘탈당만은 막아야 된다’며 새 비대위원장을 추인하고 세월호 특별법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한 뒤 모든 당직에서 사퇴하는 것으로 거취가 정리됐다.
그런 그가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다. 당헌 당규에 따라 당연직 비대위원으로 임명됐던 것.
그러나 비대위원은 물론 원내대표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 전망은 현실화됐다. 지난 22일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박 원내대표는 소외되다시피 했다.
첫 비상대책위 회의가 열렸던 이날 언론의 관심은 문희상 위원장과 문재인 의원 등으로 이동했다. 회의가 끝난 후 문재인 의원과 나란히 나온 박 원내대표는 기자들이 문 의원에게 몰려들자 멋쩍게 웃으며 퇴장했다.
더구나 문 비대위원장이 “모바일로 한꺼번에 전 국민에게 뽑아달라고 하면 끝인데 그것만큼 공정한 게 어디 있나”며 ‘모바일 투표 재도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자 박지원 비대위원은 “문 위원장에게 발언을 조심하라고 말씀드렸다”고 반대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정작 당내 현안을 주도해야 할 박 원내대표는 별 말이 없었다.
더 나아가 박 원내대표는 “부자감세가 없다고 주장해 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맞장토론을 제안한다. 자신 있으면 응하라”이라고 말했으나 여당에서는 ‘반응’은커녕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 이를 계기로 ‘박영선 왕따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설’이 아닌 ‘왕따’로 단정 짓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 현충원 현충탑에서 비춰졌던 모습이 ‘결정타’였다.
실제 비대위 출범 후 첫 외부 일정으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자리에서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맨 앞줄에 섰다. 문재인, 정세균, 박지원, 인재근 비대위원들은 두 번째 줄에 섰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는 조정식 사무총장, 윤관석 사무부총장과 함께 세 번째 줄에 있었다.
이에 현장에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왕따’ 얘기가 급속도록 퍼졌다. 새정치연합 한 당직자는 “‘세월호 협상 과정에서 보여줬던 박 원내대표의 독단적 행동이 낳은 결과물”이라며 “원내대표로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는 일만 남았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각 계파의 수장들이 비대위에 참여했다. 그러나 비대위원으로 임명된 박영선 원내대표가 ‘옥의 티’다. 각계파 수장, 즉 ‘사장’단끼리 모여 회의하는 자리에 ‘부장’이 낀 꼴”이라며 “결과적으로 ‘부장’이 무슨 스포트라이트를 받겠느냐”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 원내대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면담하며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 사력을 다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주도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문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문 위원장은 지난 24일 유가족과 만난 자리에서 “여러분의 뜻을 100% 보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조금 모자라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말해 추후 협상과정에서 여야는 물론 유가족의 양보가 필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문 위원장 주도하에 세월호 특별법이 타결되면 박 원내대표에게 악몽을 선사하는 형국이 된다. ‘박영선 왕따’, ‘박영선 실종’이라는 미스터리 극으로 흐르게 된다는 얘기다. 탈당 파동 이후 모바일 투표 재도입, 세월호 정국에서 그는 완전히 실종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정기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박 원내대표로선 설 자리가 아예 없어진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한 당직자는 “문 위원장이 세월호 특별법에 타결을 위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정기국회, 국정감사 등이 시작되기 때문에 박 원내대표로선 자연스럽게 직을 내려놓고 사퇴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라며 “비대위에서 ‘왕따’라는 사실만 증명한 채 정치력 부재 등을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모바일 투표 재도입, 세월호 특별법 등 이슈를 선점하고 당 전면에 나서야 하는 박 원내대표로서 계파수장들이 비대위에 참여함에 따라 ‘왕따 아닌 왕따’ 신세가 됐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연 박 원내대표가 ‘언제쯤 왕따’ 신세를 면할지, 그리고 언제쯤 사퇴할 것인지를 놓고 당내 인사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퇴 시점 ‘오리무중’
상황이 이런 가운데 박 원내대표는 일단 원내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명확한 사퇴 시점을 밝히지 않은 채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성산사회복지관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며 “경로당 냉난방비마저 삭감하는 정부 행태를 우리 당이 바로잡겠다”고 당밖으로 화살을 돌렸다.
더욱이 문 비대위원장도 조기 사퇴론을 차단하고 있다. 문 비대위원장은 박 원내대표 사퇴 시점에 대해 “세월호특별법 통과 시점이 가장 좋은 모습”이라며 “다른 하나는 정기국회 일정에 (새정치연합이) 정상적으로 참여하는 날”이라고 에둘러 얘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원내대표 사퇴 문제는 조만간 소집될 의원총회에서 거론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새누리당이 박 원내대표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기류가 강하기 때문이다.
일련의 과정을 볼 때 박 원내대표는 ‘여당-협상파트너 불인정, 야당-원내 지도력 상실’ 등으로 인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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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