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 TK 맹주 쟁탈전 막 올랐다
무주공산 TK 맹주 쟁탈전 막 올랐다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4-09-22 09:45
  • 승인 2014.09.22 09:45
  • 호수 1064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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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ilyoseoul.co.kr

이명박·박근혜 배출 후 유력 대권주자 없는 상황
김문수·유승민의 야심…야권은 김부겸 출전 채비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전국에서 정치적 응집력이 가장 강한 지역은 대구·경북이다. ‘TK’로 불리며 정치판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TK 유권자들도 선거 때마다 보수 후보에 대한 표쏠림이 심하다. 현재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 27명 전원이 새누리당 소속이다.
역대 11명의 대통령 가운데 절반 가까운 5명도 사실상 TK 출신이다. 박정희·노태우·이명박 대통령이 이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이 고향이지만 대구공고를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 삼덕동에서 출생,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으나 대구 달성군에서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포스트 朴’ 노리는 최경환

하지만 2017년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둘 때 지금까지는 TK가 ‘무주공산’이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경북 경산-청도 국회의원),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 같은 파괴력을 갖춘 정치인이 있지만 당장 차기 대권주자로 인식되진 않았다. 정치권 밖에서도 차기 대권에 도전할 만한 TK를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대선이 가까워지면 예상 밖의 인물이 부각될 수는 있다. 또 유 의원의 경우 차기 당 대표에 도전하거나 바로 대권 행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최 부총리도 상황변화에 따라 ‘포스트 박근혜’를 노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주공산 TK에 입성을 시도하는 제3의 인물이 나타났다. 재선 경기도지사를 지낸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경북 영천이 고향이고, 대구 경북고를 졸업했지만 그동안 고향에선 ‘TK’로 치지 않았다. 정치를 수도권(서울 구로, 경기도 부천)에서 했고, 경기도지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운동권 출신으로, 민중당에 몸담았던 김 위원장 본인도 과거엔 ‘TK’라는 용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TK를 ‘꼴통보수’ 지역으로 인식했던 까닭이다. 더구나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지방분권’이 화두가 됐을 때 경기도지사로서 ‘대(大)수도론’을 설파한 뒤 TK지역에서 ‘공공의 적’처럼 인식된 적도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최근 들어 무주공산이 된 TK를 대권고지 등정을 위한 지역적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수도권에서 정치를 하다가 고향으로 귀환한 한나라당 권영진 대구시장이 성공을 거두고,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전 의원이 대구 수성갑 국회의원선거와 대구시장 선거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직후부터다.

그는 경기도지사직 퇴임을 앞두고 대선 예비 캠프 격인 ‘포럼 뉴코리아’(일명 광화문팀)를 운영하고 있다. 이 팀에 참여한 핵심 인물은 TK 출신으로 꾸려졌다. 경북 김천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임인배 안양대 산학협력 부총장, 경북 봉화가 고향인 김충환 전 의원 등이다. 광화문팀에서 활동하는 실무진도 정치권에 몸담았던 TK 출신이 주축이다.

예비 캠프 ‘포럼 뉴코리아’

이 시점에 김 위원장은 대구·경북의 전·현직 정치인, 지방자치단체장을 꾸준히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구 출신 전직 의원은 “얼마 전 김 위원장으로부터 ‘고향에 안착하는 데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TK에서 영향력이 있는 몇몇 사람을 소개시켜 줬다”고 밝혔다.

인적 터전을 어느 정도 닦은 뒤 대구에서 강연을 갖기도 했던 김 위원장은 최근 들어 TK 민심을 본격적으로 파고 들고 있다. 시작은 고향 영천이었다.

그는 8월 1일 영천을 찾아 부모님 묘소를 성묘하는 것으로 대권 의지를 다졌다. 영천의 서원을 방문해 고향 어르신들에게 인사하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서 “고향이 영천인데, 객지인 경기도에서 오랜 정치활동을 하다 보니 경북 사람보다는 경기도 사람으로 오해를 많이 받는다. 고향을 찾으니 옛 생각도 많이 난다. 앞으로 대구·경북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다음날에는 영천시장에서 상인과 시민, 친구들도 만났다.

수도권에서 국회의원과 도지사를 지내는 바람에 각인된 ‘비(非)TK’ 이미지를 씻어내고 ‘TK사람’에 편입하기 위한 시도다. 영천에서 워밍업을 마친 그는 TK의 심장부 대구로 달려갔다.

‘차례상 민심’이 조성되는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4일과 5일 대구에서 택시운전 면허를 취득하고, 전통시장 등을 돌며 바닥민심을 들었다. 이어 새누리당 보수혁신특위 위원장에 내정된 다음날인 16일부터 사흘 동안 대구에서 택시를 직접 몰며 민심을 훑었다.

하루 9시간 가량 대구 구석구석을 누비며 시민들의 얘기를 듣고, 여론에 밝은 택시기사들과 대화를 나눴다. 택시 운전이 정치쇼가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쇼 맞다. 하지만 택시운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쇼가 아니다. 분명히 필요한 쇼”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도 했다. 또 “내가 고민하는 모든 문제의 답이 현장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하루 종일 택시를 몰고 진땀을 흘려보면 이곳이 어떤 도시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대구에서 이틀째 택시운전을 했습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적자가 심하네요. 경기도와 서울에서 40일간 택시를 했는데, 어제, 오늘이 최악입니다. 대구는 택시도 너무 많지만 경제가 너무 침체돼 있네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열악한 대구 경제를 회생시켜 보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경북고 선후배와 교류 뜸해

그는 여당 혁신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으면서 날개도 달았다. 새누리당 소속이지만 ‘진보’ 이미지가 강했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공교롭게도 그에게 날개를 달아 준 인물은 새누리당의 차기 대선후보 경쟁을 벌일지도 모르는 김무성 대표다. 김 대표와 김 위원장은 나이(1951년생)가 같고, 15대 국회에서 첫 의정활동을 시작한 ‘여의도 입성’ 동기다.

양 김씨가 의기투합해 새누리당의 혁신을 추진하면서 대권고지를 향한 선의의 경쟁에 들어갔지만 ‘대권주자 김문수’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TK의 맹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그는 여당 안에서도 세력이 없지만 특히 TK에서는 ‘이방인’에 가깝다. TK의 주류인 경북고 출신 동창 정치인들과도 그동안 가까이 지낸 적이 없다고 한다. 현재 대구·경북 국회의원 가운데 경북고 출신은 5명(김희국·류성걸·유승민·이한구·정수성)이다. 이 중 경북고 51회인 김 위원장의 후배는 김희국·류성걸·유승민 의원 3명이 있다. 그러나 이들과 김 위원장은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유승민 의원(57회)은 TK의 차기 리더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번 보수혁신특위 위원장을 발탁하는 과정에서도 김 위원장과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다고 한다. 유 의원은 ‘원조 친박’이었지만 지금은 박 대통령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있다. 간혹 박근혜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하면서 독자적인 정치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유 의원은 TK 뉴리더로서의 위치를 굳혀 2016년에 실시되는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에 도전하거나, TK 대표 주자로 그 이듬해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는 7·14 전당대회 때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무성 후보를 견제하며 서청원 후보를 측면 지원하기도 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지금은 ‘정치인’보다는 ‘정책전문가’ 이미지가 깊지만 박 대통령의 후계구도 설정에 따라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 이 경우 ‘TK 맹주’ 자리 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된다. 최 부총리는 2012년 총선 당시 친박계의 실력자로서 상당 부분 공천권을 행사했다. 따라서 그 때 배려를 받아 금배지를 단 일부 TK 의원을 잠재적 최경환계로 간주할 수도 있다.

한편으론 야권에서도 ‘TK 대권주자’가 출전 채비를 차리고 있다. 김부겸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지난 6·4 지방선거 때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의 시장선거에서 선전하면서 단숨에 야권의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결국 김문수 위원장의 ‘고향 귀환’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다만, 경기도지사로서의 경험을 살려 대구·경북을 먹여 살릴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면 응집력 강한 TK 민심을 사로잡을 여지는 있다.

아직 차기 대선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주인 없는 땅이 됐던 대구·경북에선 서서히 맹주 쟁취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TK 목장의 결투’ 결과가 주목된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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