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용 탓하기 전 헌법부터 고쳐라”
“기고 내용 탓하기 전 헌법부터 고쳐라”
  • 정은혜 
  • 입력 2007-03-06 14:15
  • 승인 2007.03.06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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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변호사 인터뷰
한 일간지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글을 기고해 파문을 일으켰던 금태섭(41·사시34회)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 그가 최근 ‘변호사’로 변신해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금 변호사는 지난해 9월 모 일간지에 ‘피의자로 조사를 받을 때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내용의 기고를 시작으로 ‘수사 받는 법’을 연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글의 취지를 놓고 논란이 일자 기고를 중단했다.
이후 금 변호사는 검찰총장 경고를 받고 비수사 부서로 좌천됐다. 형사4부에서 총무부로 전보 조치됐던 것. 금 변호사는 4개월여 간 버티다 올해 1월 10일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당시 검찰 내부에서 ‘조직의 배신자’라는 등의 각종 비난과 질타에 적잖은 맘고생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 변호사는 현재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한 빌딩에 변호사사무실을 개업한 상태다. 지난 2일부터는 EBS-TV 시사프로그램 ‘세상에 말 걸다’의 진행자로도 변신을 꾀해, 향후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지난해9월 ‘수사 받는 법’을 신문에 기고해 논란을 일으켰던 금태섭 전검사가 ‘변호사’로 재탄생했다. ‘베테랑’ 검사에서 ‘새내기’ 변호사로 탈바꿈한 셈이다.

금 변호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고, 검찰을 떠나서도 보람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됐다”며 전직 동기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12년간 검사로 일하면서 하고 싶은 것 다해보고, 많은 사랑 또한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검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금 변호사는 기고문 파문 이후 검사직을 접기까지의 상황, 변호사 개업을 하기까지 있었던 에피소드 등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We speak for you.”

금 변호사의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문구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방이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키가 크고 멀쑥한 차림의 금 변호사 역시 밝은 얼굴로 기자를 맞이해, 인터뷰는 무겁지 않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금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 변호사 개업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마음고생이랄 것까진 없지만, 그간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지만 내가 연재하려던 기고가 중단됐다는 것과, 이로 인해 법조계 안팎에 물의를 일으킨 것에 적잖은 좌절감을 느꼈다.

- 일간지에 ‘수사 받는 법’을 연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
▲ 우리나라 피의자들은 법에 규정된 정당한 권리를 잘 모르거나 또는 잘 알아도 그런 권리를 행사하는 데 굉장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담당 판검사 등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스스로에게 많은 의문을 제시했다. ‘과연 우리 법조는 국민들에게 상징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 ‘형사절차는 과연 세계 최고의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등. 이때 나의 대답은 ‘글쎄’였다.
수사를 둘러싼 환경은 변했다. 이제는 우리 형사절차도 보다 선진적이고 체계적인 것이 되어야 하고, 불가피하게 수사를 받게 되는 국민들도 과학적이고 투명한 수사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내 전문인 형사절차에 대해서만큼은 법에 정해진 권리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해주자는 취지에서 기고를 하게 된 것이다.

- 검찰 내 반발은 예상했나.
▲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사견’이었고, 연재를 하기 전 취지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 검찰 측에서 문제 삼은 부분은 무엇인가. 구두 경고에 그치지 않고 내부 징계 조치까지 내려졌는데.
▲ ‘수사현실을 왜곡하고 검찰의 공익적 의무에 부합하지 않는 사견을 임의로 기고했다’는 것이다. 외부에 기고할 때에는 사전에 상부에 보고한 뒤 허가를 받도록 한 ‘공보 관리 지침’을 어겼다는 것도 징계 이유였다.

- 보고 체계를 거치지 않은 이유는.
▲ 당시 기고하려던 연재는 검찰 내에서 공식적인 업무를 추진하는 등의 공보사항이 아닌 걸로 판단했다. 지금도 이 판단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검찰 전체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 일개 검사의 사견이었기 때문이다.

- 기고 내용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나.
▲ 그렇다. 나는 국내 헌법을 토대로, 피의자들이 법적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법을 알기 쉽게 풀어준 것뿐이었다. 기고 내용을 탓하기 전에 국내 헌법부터 개정하라.

- 비수사부서인 ‘총무부’ 발령 조치에 대해 불만이 많았을 것 같다.
▲ 그렇지 않다. 총무부는 서울중앙지검장 비서실 구실을 하는 부서이자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검찰들이 희망하는 부서이기도 하다. 과거 지방검찰청에 몸담고 있을 당시에도 총무부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열심히 또 재미있게 일했었다.

- 변호사로의 전직은 이번 일을 계기로 결정한 것인가, 아니면 평소 염두에 두고 있었나.
▲ 내가 전직했다고 해서 특별하게 보는 시각이 많은데, 사실 검사가 변호사로 전직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정년퇴임하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변호사 개업을 하게 마련이다. 나 역시 그렇다. 특별히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검사직에서 물러날 거라 생각하고는 있었다.

- 사표를 둘러싼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다. 사표를 낼 당시 상황은 어땠는가.
▲ 당시 사표를 내려던 시점은 평검사 기간을 마치고 부부장 검사로의 발령을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10년 이상 검사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승진이나 출세도 생각했지만, 그 반대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도 생각했다. 이때 문득 든 생각이 검찰에서 관리자의 길을 걷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좀 더 활동적으로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표를 내고 변호사로 전직하게 된 것이다.

- 검찰 측에서 압력을 가해 사표를 낸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 ‘압력’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총장님과 선후배,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입장을 분명히 전하고 의견을 존중했다. 또 한두 살 먹은 어린 애도 아니고 누군가 압력을 가한다고 해서 무모하게 사표를 던지진 않는다. 사의 표명은 전적으로 자의에 의한 결정이었다.

- 검찰에서 물러나면서 후회는 없었나. 사실 이번 논란이 없었다면 검사로서 더 큰 명예를 얻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되는데.
▲ 처음에 검찰에 발을 들일 땐 ‘뼈를 묻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12년 간 검찰생활을 하면서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해봤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많은 사랑과 관심도 받아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출세와 명예도 중요하다. 하지만 검사복을 벗은 이상, 이제는 검사로서 출세가 아닌 변호사로서 출세하고 싶다.

- 주변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 선후배와 동료들이 돈 많이 벌라고 하더라(웃음). 이제 중학생인 아들은 ‘검찰은 나쁜 사람 혼내주는 건데 변호사는 그게 아니잖아’라며 조금 실망하는 눈치다. 아내는 당시엔 크게 걱정했는데 요즘엔 내가 변호사로 입지를 다지는 데 더 적극적이다. 많은 힘이 되고 감사하다.

- 향후 검찰로 다시 돌아간다거나, 정치권에 출마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 둘 다 사실무근이다. 검찰에 미련 없고, 정치권에 관심 없다. 만약 정치에 입문할 계획이었다면, 검찰의 반발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업고 갔을 것이다.

- 이번 사건으로 인해 빚어진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 최근 들어 교도소에서 편지가 많이 온다. 대개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하는 내용이다. 일일이 답장을 해주진 못했지만, 만약 이들의 편지내용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피의자의 법적권리 관련 문의 전화가 온 적도 있다.

- 3월부터 EBS-TV 시사프로그램 ‘세상에 말 걸다’의 진행자를 맡게 됐는데 이유가 따로 있나.
▲ 특별한 이유는 없다. 얼마 전 이 방송 제작진이 프로그램 진행을 부탁해왔다. 일반 시사 프로그램과 달리 따뜻한 시사 프로그램을 지향한다는 제작진의 취지에 공감해 진행을 수락하게 됐다. 평소 자기 목소리를 충분히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 주고 싶다.

- 변호사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 검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의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번에 미처 연재하지 못한 기고는 검찰과 변호사의 시각에서 다시 한 번 검토하고 보완해 조만간 책으로 낼 예정이다.



‘수사 받는 법’ 기고 내용은 무엇?

“피의자가 됐을 때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말라”

당시 금 전검사가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기고문(1회)의 주제다. 금 전검사는 이를 시작으로 모두 10차례 기고를 할 계획이었지만, 검찰 내 반발과 함께 논란이 커지자 기고를 중단했다. 다음은 기고문의 요약 내용(피의자로서 수사를 받을 때의 대처방안)이다.

고소를 당하거나 수사기관에 입건돼 피의자가 됐을 때, ‘약자’인 피의자가 취해야 할 행동지침은 두 가지다.

첫째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혹은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피의자는 자신에게 꼭 유리한 행동만을 하지 않는다. 수사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피의자도 섣부른 행동을 하다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가만히 있으면서 상황을 파악하라. 그것이 현명한 태도다. 상황을 파악한 이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수사에 대응해도 늦지 않다.

둘째,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병에 걸렸을 때 의사를 찾아가면서도 수사를 받을 때는 스스로 무언가 해보려고 한다.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해 훌륭한 변호인을 구해야 한다. 물론 변호인에게 사건을 의뢰하면 금전적인 부담이 따른다. 그러나 직업적인 범죄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수사를 받는 것은 일생에 몇 번 없는 일이다. 중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변호사를 수임,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한편, 2회분에 연재될 기고는 ‘피의자가 조사받을 때 대처방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는 조서에 도장을 찍을 아무런 의무도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 ▲소환 통보를 받거나 체포되었을 때 대처방안 ▲구속되었을 때의 대처방안 ▲압수수색을 당했을 때의 대처방안 ▲범죄 피해자의 권리 ▲참고인의 권리 등을 연재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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