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탁월한 안목과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도전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하고 개척해나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성공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야생 동물들의 생활방식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맹수들은 날카로운 관찰력을 갖고 사냥하기 쉬운 먹잇감을 선택하고 공격해 나간다. 인류의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사회의 흐름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해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조국 이스라엘로부터 대통령직을 제의 받았다. “국회는 만장일치로 당신을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해주십시오.”0 아인슈타인은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가르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이스라엘의 벤구리온이 어느 날 갑자기 수상직을 사임했을 때 기자들이 이유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제 나는 키부츠 땅콩밭으로 갑니다. 수상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땅콩농사는 아무나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지미 카터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며 말했다. “내가 대통령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임시직이지만 교사직은 평생직입니다.”
시련과 고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미래가 결정되는데 고통, 시련과 사투를 벌여 그것을 넘어선 사람만이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 있다. 일례로 18년 동안 소령 계급에 머물러 있다가 나이 47세에 간신히 중령으로 승진한 이후 1942년 소장, 중장 동시 승진 후 이듬해에 대장으로 승진, 44년에 원수 승진, 53년에는 미국의 34대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역경과 고난을 잘 참고 다스리면 고난 이전의 삶보다 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고, 본인이 갈망하는 것 또한 이룰 수 있다.
한비자(韓非子)에는 수주대토(守株待兎)란 이야기가 나온다. 송(宋)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토끼 한 마리가 달려가다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공짜로 토끼 한 마리를 얻게 된 셈이다.
그러자 농부는 토끼가 또 그렇게 달려와 죽을 거라 생각했다. 농부는 그날부터 밭 갈던 쟁기마저 집어던지고 오직 그루터기만 지키고 앉아 토끼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이는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며 입 벌리고 있는 격이나 마찬가지다.
서양 속담에 “노력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고 했다. 또 “쉽게 벌면 쉽게 나간다”고 했다. 지금의 스피드 시대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이치를 따져 천천히 준비해 나가기보다는 무슨 일이든지 빨리빨리 해결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남이 하니 따라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요즘 세대는 출세도 빨리 성공도 빨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자기의 적성이나 능력도 고려치 않고 쉽게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경향 말이다. 젊은이들조차도 땀과 정성을 들여 자신의 인격을 가꾸고 재능을 계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채 쉽게 포기하려 한다. 자신의 꿈이 좌절됐다 여기고 쉽게 유흥업소에서 돈을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성취와 성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무엇을 위해 성공하는 것인가? 진정한 성취는 자기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일궈낸 진정한 보물인 것이다. 젊은이들에게는 청춘, 무한한 가능성, 삶의 도전, 패기, 희망, 용기가 있지 않은가. 하늘의 무한한 가능성과 땅의 조화 말이다.
전문화시대, 다양화시대, 글로벌시대를 맞이해 자신의 눈높이만 맞춘다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지 않은가! 성공을 위해서는 준비된 삶, 계획된 삶이 필요하다. 성공적 삶의 기초가 되는 기다림, 준비, 희망, 시간관리 등의 실천적 행동이 필요하다.
이제 작은 실천을 통해 삶의 기초석을 튼튼히 해나가야겠다. 장래가 불투명한 어둠의 현실을 변화(Change)를 통해 기회(Chance)로 만들기를 바란다. 끝으로 차재두량(車載斗量)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차재두량(車載斗量)]
삼국 시대 오(吳)나라는 촉(蜀)의 관우를 공격해 죽여 촉나라와 적대하기에 이르렀다. 기원전 221년 촉나라는 오나라를 칠 군사를 내보내고, 오나라 군주 손권(孫權)은 위(魏)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조자(趙咨)를 보내며 강력하게 당부했다.
"결코 오나라의 체면을 손상시켜선 아니 되오."
조자는 명심하고 출발했다. 조자가 위나라의 수도에 도착하자, 조비(曹丕)는 그가 찾아온 뜻을 알면서도 짐짓 물어 보았다.
“오나라 임금은 어떤 인물이오?”
“총명하고 자애롭고 똑똑하며, 뛰어난 재능과 원대한 지략의 소유자입니다.”
“과장이 좀 심하군요.”
조비가 비꼬듯이 웃으니, 조자는 실례를 들어 반론했다. 조비가 또 물었다.
“만일 오나라를 공격한다면?”
“대국에 무력이 있다면, 소국에도 방위책이 있습니다."
“오나라는 위나라를 두려워하고 있겠지요."
“두려워하고 있다니요. 100만의 용맹한 군사와 천험(天險)이 있습니다."
“그대 같은 인재가 오나라에는 몇 명쯤 있소?"
“나 같은 자는 차재두량(車載斗量)할 만큼 있습니다."
조비가 탄복하며 말했다.
“사신으로 가서 군주의 명령을 욕되게 하지 않음은 그대와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오."
열석한 위나라의 신하들도 모두 감동을 받았다. 이리하여 오나라와 위나라의 군사 제휴는 성립되었다. 조자가 오나라에 돌아오자, 손권은 사명을 완수한 데 대해 상을 내리고, 기도위(騎都尉)로 승진시켰다.

김의식 교수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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