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일명 ‘카파라치’에 쏠린 금융권의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신용카드 불법모집을 신고하는 파파라치인 카파라치는 지난 6월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금융당국이 카파라치 포상금을 최대 5배까지 올렸던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연간 포상금 한도가 제자리로 돌아가며 향방이 다소 불투명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제도 조정이 모집인들에게 도움되기보다는 카드사들이 웃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카드업계에 대한 신뢰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떨어진 현재 카드사들은 신규가입 유치와 유효고객 수 늘리기에 몰두해 있다. 올해 초 사상 최대의 고객 정보유출로 제재를 받았던 카드 3사도 영업정지 후 복귀하면서 이 대열에 합류했다.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르면 신용카드 모집인은 신규고객에게 카드 가입을 권유할 때 연회비의 10%를 초과하는 경품이나 현금을 지급할 수 없다. 만약 고객이 2만 원의 연회비를 지불하는 카드를 만들게 되면 모집인은 2000원 이상의 경품을 제공할 수 없다는 의미다.
실질적으로 이 금액을 받고 카드를 만드는 고객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모집인들은 저마다 현금 또는 사은품을 미끼로 고객 유치에 나섰고 금융당국은 이를 막아섰다. 하지만 잦은 단속에도 불법영업을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자 새로 도입한 것이 바로 카파라치 제도다.
생계형 모집인들 제도 개선 반발해
처음 카파라치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12년 12월이다. 이후 약 9개월간 여신금융협회에 신고된 건수는 111건이다. 이중 포상금이 지급된 건수는 33건으로 전체의 30%에도 못 미친다.
당시 신고절차는 현재에 비해 상당히 까다로웠다. 불법 모집을 알게 된 날로부터 20일 안에 사진, 동영상, 녹취록 등 확실한 증거를 갖춰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가입신청서 사본이나 경품 등을 첨부해도 물증 불충분으로 반려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게다가 모집인들이 카드 가입 대가로 주는 현금보다도 포상금이 적은 것이 현실이었다. 일부 카드의 경우 최고 20만 원에 가까운 현금이 지급되는데도 번거로운 절차를 거친 신고는 10만~20만 원 수준의 포상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지난 6월부터는 포상금액이 조정되면서 신고도 급증했다. 길거리 신용카드 모집이나 연회비 10% 이상 경품 제공을 신고하면 받을 수 있는 포상금은 1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늘어났다. 타사 카드 모집 또는 미등록 모집 신고 시에는 포상금이 2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뛰었다. 또한 신고자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연간 최대 포상금 한도도 500만 원까지 확대됐다. 신고 기한도 20일 이내에서 60일 이내로 3배가 연장됐다.
이에 따라 신고의 양과 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것도 움직일 수 없는 증거와 함께 속속 접수되며 금융당국의 일을 덜어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제도 개선 전 신고된 건수는 월평균 11건, 포상 실적은 월평균 4건에 그쳤다.
그러나 개선 이후 신고 건수는 포상금 조절 첫달인 6월에만 67건으로 6배 넘게 증가했다. 다음 7월에는 신고 건수가 181건으로 개선 전보다 17배 가까이 불어났다. 지난 5월만 해도 단 9건에 그쳐 유명무실한 제도로 불렸던 카파라치 제도의 재조명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제도 시행 초기부터 6월 말까지 신고된 건수는 총 259건이었다. 카드사별로는 신한카드가 80건, 삼성카드 49건, 현대카드 28건, 롯데카드 25건, 외환카드 23건, 국민카드 10건 순이었다.
또한 신고로 적발된 모집인 52명의 월평균 모집수당은 400만 원 이상이 54%였으며 200만 원 이하는 전체의 15%에 머물렀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한 모집인은 카드사로부터 연간 4억 원을 받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미등록 모집인들을 데리고 불법영업을 한 결과다. 반면 1년에 1000여만 원을 버는 모집인도 있어 이들의 체감격차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모집인들의 경쟁은 카드사의 수당체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카드사들은 모집인이 발급하는 카드 한 장당 1~1.8점을 매기고 최소 기준을 10~20점으로 잡아 이를 달성할 경우에만 고정 실적급을 지급한다.
예를 들어 우리카드의 경우 카드 한 장당 1점으로 최저 점수가 15점인데 기준을 넘을 경우에만 제대로 된 고정 실적급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15점이 넘으면 한 장당 5만 원씩 최소 75만 원을 받는 식이다. 그러나 14점 이하인 경우 한 장당 2만 원으로 모두 해도 28만 원밖에 손에 쥘 수 없다. 한 장 차이로 3배의 실적급이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셈이다.
심지어 카드사들은 타사 모집인을 스카우트할 때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의 비용지급도 감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모집인들은 사재를 털어서라도 가입 건수를 늘리는 데 치중하게 됐다.
한편 카파라치들이 증가하면서 유효 포상 실적도 크게 늘어났다. 일부 전문 카파라치들은 초소형카메라가 부착된 안경, 가방 등 전문장비를 이용해 촬영이나 녹취를 한 뒤 신고 전 모집인과 협상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파파라치 전문 교육학원까지 다니며 신고를 전업으로 삼는 행태도 눈에 띄었다. 현재 알려진 파파라치 학원은 전국적으로 20여 곳이다. 어떤 곳에서는 필요한 장비를 판매하며 수강생들을 상대로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자칭 생계형 모집인들 사이에서 제도 개혁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카드설계사 규제 관련 공청회나 금감원 앞에서 열린 대규모 모집인 집회가 바로 그 예다. 모집인들은 카파라치 제도가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며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금융당국은 3개월 만인 지난 4일부터 다시 연간 포상금 한도를 낮추기로 했다. 신고자 한 명이 받을 수 있는 연간 한도는 50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5분의 1이 되면서 제자리를 찾았다. 다만 건당 신고 포상금액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향후 카파라치들의 증감을 점치기 어렵게 됐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카드 불법모집 신고 포상제도가 악성 신고인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면서 “제도 개선으로 악성 신고인의 모집인 협박 및 무분별한 신고가 줄어들고 건전한 모집질서가 확립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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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