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직파 간첩 사건’ 등 줄줄이 진술 번복
재판부, 무죄추정의 법리에 따르는 ‘원칙’에 충실
막연한 직감이 아닌 우수한 인재 확보해 전문성을 강화해야
[일요서울 | 박형남 기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직파 간첩 사건’ 등이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 잔혹사’로 비쳐질 만큼 검찰은 충격에 빠져 있다. 일부에선 검찰의 수사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뒷말까지 나온다. 그 이유가 뭘까. 간첩 혐의를 받은 인사들이 줄줄이 ‘무죄’ 판결이 내려진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지난 5일 탈북자로 위장한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된 홍 씨(41)에게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홍 씨는 혐의를 인정한 뒤 진술을 번복, 완강히 부인했다.
공판과정서 진술 번복
조사 과정에서 홍 씨는 국가정보원 탈북자 시설인 합동신문센터에서 2차례 조사를 받았고, 8차례 검찰 조사를 받으며 혐의를 인정했다. 실제 검찰과 국정원은 홍 씨가 갖고 있던 남한 내 비전향 장기수의 딸 결혼식 사진을 확보했고, 홍 씨의 초기 진술에 따라 압수수색했다. 특히 “북한 간부와 연계하라”는 지령을 받은 탈북자 이모씨의 증언과 문자 메시지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선임된 뒤부터 홍 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홀로 싸우던 홍 씨에게 ‘우군’이 생긴 셈이다.
이때부터 홍 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홍 씨 변호인은 공판과정에서 “홍 씨 진술서나 조서 등은 ‘미란다 원칙(진술 거부권, 변호인 조력권)’에 대한 정확한 고지 없이 강압에 의해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조서에서는 검사의 미란다 원칙 고지에 대해 홍 씨는 ‘아 그냥 갑시다’는 식으로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홍 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반성문도 변호인 도움을 받지 못한 홍 씨가 스스로 자유롭게 작성했는지 믿을 수 없다”며 미란다 원칙 고지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홍 씨의 진술 번복에 검찰은 손 놓고 당한 셈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역시 비슷하다. 유우성씨의 동생 가려씨가 국정원 조사에서 “오빠는 간첩”이라고 한 진술을 번복하면서 사건은 미궁속으로 빠졌다. 동생 가려씨의 진술이 유 씨의 혐의를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였던 것이다. 그러나 진술을 뒤집으면서 결국 2013년 8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급기야 검찰과 국정원은 유씨의 ‘간첩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유 씨의 북한 출입국 기록을 제출했지만 국정원이 관리해오던 조선족 협력자가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2심에서도 무죄선고를 받았다. 이 역시 가려씨의 진술에 의존했던 것이 큰 화근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지난 2003년 송두율 교수 간첩사건이 그렇다. 2003년 한국에 귀국한 송 교수는 변호인 입회조차 허락하지 않는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다. 송 교수는‘김철수’라는 가명으로 북한 권력사열 23위인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결국 1심에서 국가보안법에 의해 조선노동당 당원이라는 혐의를 받아 기소돼 재판부는 7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송 교수가 과연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서열 23위의 김철수인가 여부에 관해 입증이 부족함을 들어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검찰이 내세운 황장엽 씨의 진술이나 김경필의 대북보고문 등에 대해 증거능력은 인정했다. 그러나 증명력을 부인했다. 더구나 북한체제 편향적이라 볼 수 있는 저술활동 등을 한 데 대해서도 지도적 임무를 수행했다고 볼만큼 자유민주주의에 직접적 위해를 가한 바는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엄격한 증명의 법리와 무죄추정의 법리에 따라 판단했다. 즉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 한 다소 의심이 가더라도 유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그러나 검찰은 “공안사건이란 게 일정 부분은 정황이나 직감 등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며 “일반 사건과 동일한 정도의 입증을 요구한다면 김정일이나 김용순을 증인으로 세워야 한단 말이냐”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조사 방식의 '덫'
이처럼 검찰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무죄’가 선고된 이면에는 조사 방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피의자를 밀실에서 조사하고, 정신적·육체적 압박을 통해 자백을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법정에서 자백을 부인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북한 보위사령 직파 간첩 사건’ 등이 줄줄이 무죄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일까. 과거 잠수함 침투, 휴전선 잠입 등 북한의 대남 공작 방식이 변화해 탈북자들 사이에 정규 간첩 교육을 받은 공작원을 끼워 넣어 침투시키는 만큼 수사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에 대해 전직 검사 출신들은 실제 간첩 사건 특성상 대부분 증거가 중국, 북한에 있기 때문에 해외 증거 채집 능력을 강화하고 우수한 인재를 공안 요원으로 확보해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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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