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공약 흐지부지…내부 저항 만만찮아
개혁 공약 흐지부지…내부 저항 만만찮아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4-09-15 09:54
  • 승인 2014.09.15 09:54
  • 호수 1063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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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다른 역대 대통령의 국가정보기관 활용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국가정보원은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 보안 및 범죄수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정권의 감각 기능을 담당하는 셈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정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이 중앙정보부(중정)→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역할은 같았다. 목표는 국가 보위였으나 때로는 정권 보위의 첨병이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무리수가 따랐고, 중정을 창설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정부장(김재규)에게 시해 당하는 비극을 맞았다.

중앙정보부(KCIA)는 5·16 직후인 1961년 6월에 창설됐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최측근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앞세워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본떠서 만들었다. 중정의 기능은 크게 두 갈래였다. 국내정치공작과 대북첩보 활동이었는데, 이 두 가지 기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정권유지에 활용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정보기관의 명칭을 ‘국가안전기획부’로 바꿨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범이 중정부장이었으므로 이미지 변신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엔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안기부가 조직으로 개입한 의혹이 있는 ‘북풍 조작’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바꿨다. 국정원의 원훈도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에서 ‘정보는 국력이다’로 변경했다.

지금은 이병기 원장이 ‘정치 불개입’을 선언한 상태지만 과거 정권은 대규모 조직을 갖춘 국정원의 정세 분석, 판단에 크게 의존했다. 전국에 퍼져 있는 수천 명의 ‘정보활동요원’(IO·Intelligence Officer)들이 수집한 고급정보들이 매일 아침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 놓이곤 했다. 이른바 ‘일일동향보고서’와 정책보고서‘였다.

실제로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엔 국정원장(중정부장·안기부장)이 매주 한 차례 정도 직접 정보파일을 들고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에게 고급정보를 직보하고 활동 방향에 대한 ‘지침’을 받아왔다고 한다.

따라서 국정원장의 권한은 막강할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인 힘으로만 따지면 국무총리 이상의 ‘정권 2인자’ 노릇을 했던 원장도 있었다. 역대 대통령 역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심복을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수장으로 앉혔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국정원장의 정례보고를 없애 버렸다. 대신 사안이 있을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국정원장이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 참여정부 때는 국정원이 스스로 과거사 조사에 나서는 등 내부 개혁을 시도하기도 했다. 국내정치 사찰을 금지하는 대신 해외정보를 수집·분석하는 활동에 치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때 국정원을 ‘해외정보처’로 전환시키겠다고 공약했으나 이런 획기적인 변화는 내부의 저항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비정기 독대 기조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이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박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가 “대통령과 정보기관장의 정례 독대는 없을 것”이란 발표까지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도 국정원의 정치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다가 마침내 2012년 대선을 전후해 국정원의 대선개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에 큰 부담을 안겼다. 박근혜 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남재준 전 원장 시절엔 NLL 대화록 공개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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