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조직 ‘서방파’ 보스 출신으로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김태촌(59)씨. 지난 2005년 8월에 출소,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2의 삶’을 사는 듯했다. 주먹세계에서 완전히 손을 씻고 사회에 공헌하는 전도자로 거듭난 것처럼 보였던 것. 하지만 출소한 지 1년 반도 채 안 돼 김씨는 사행성 게임비리 의혹, 야쿠자 연계설 등 각종 의혹에 시달리다가 결국 뇌물 공여와 협박 혐의 등으로 지난해 11월 구속 기소됐다. 수감된 지 한달여 뒤, 김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다. 그는 당시 당뇨와 저혈압, 협심증 등으로 정상적인 수감생활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28일에 입원, 1개월 간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그는 최근 병세가 악화돼 집행정지 기간이 연장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현재 경남 진주 칠암동에 위치한 경상대 병원에 입원 중이다.
서방파 전보스 김태촌씨가 뉴스 메이커로 급부상했다. 배우 권상우씨 협박혐의와 관련,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씨와의 전화통화 녹취록이 언론에 일부 공개돼 김씨의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실제로 김씨는 지난 6일 기자와의 수차례 통화에서 권씨 협박전화 사건과 관련, “이미 녹취록이 공개된 상태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언론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한발 빼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김씨는 다음날 오후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나도 할 말은 해야겠다”며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에게 심경의 변화가 찾아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씨는 “언론의 일방적 보도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과거 보스라는 꼬리표가 지금까지 마이너스로 작용할 줄은 몰랐다”
며 울분을 토했다. 지난 7일 오후 6시께, 병상에 누워있는 그를 만났다.
병실의 문을 열었을 때 김씨는 다소 초췌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예상과 달리 주변에 경찰 등이 배치되어 있진 않았다.
김씨의 후배 1명만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김씨와의 인터뷰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끝내야 했다. 호흡이 곤란한 관계로 더 이상은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권상우씨 전화 협박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말 권씨에 대한 협박 사실 여부를 묻는 언론에 김씨는 ‘협박한 적 없다’고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최근 결정적인 증거인 대화 녹취록이 공개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난 권씨를 협박한 적 없다. 언론 보도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다. 방송에 나온 녹취부분은 협박전화인 것처럼 보이기 위한 ‘짜깁기’에 불과하다. 당시 권씨와의 전화통화는 총 5~6분가량이었으며, 권씨를 ‘설득’하고 ‘확인’하는 전화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 검찰에 따르면 상대방이 위협을 느꼈다면 협박 여부가 성립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전화통화 내용과 상황을 얘기해 달라.
▲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내가 “나, 김태촌인데”라는 말을 수 회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화를 바꿔주는 과정에서 상대 대화자가 바뀔 때마다 의례적으로 “나, 김태촌인데”라고 소개했던 것일 뿐, 괜히 겁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또 내가 ‘피바다’ 운운했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무근이다. 당시 상황은 권씨의 사정을 듣기 위한 확인전화였지, 다른 의도는 없었다.
- 권씨는 김씨를 협박혐의로 고소했다가, 다시 고소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권씨의 번복되는 진술 등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 권씨에게 특별히 할 말은 없다.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소속사로부터 돈도 못 받고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과거 조폭 보스였던 내가 개입돼 부담을 준 것 같다. 지금 많이 힘들어 하고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다.
- 권씨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 또 몇 차례 통화했고, 몇 번 만났나.
▲ 권씨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알게 됐다. 그러니까 작년 초쯤 알았다. 지난해 중순 내가 일본에 있을 때, 그곳에서 이틀간 두 차례에 걸쳐 만난 적도 있다. 그 때 우린 서로 얽혔던 오해를 모두 풀었다. 한국에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김씨는 검찰과 경찰, 정치권 등 소위 말하는 권력실세와 가까웠다는 소문이 많았다. 최근에는 연예인 이권사업을 위해 연예인 소속 관계자, 매니저뿐만 아니라 연예인들과 직접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 권력실세와 가까웠다는 것도 이제 다 옛말이다. 지금은 청소년 선도 사업 및 사회봉사, 간증활동 등을 하면서 조용히 살고 있다. 몸이 힘들어서 사람들 자주 만나지도 못한다. 상황이 이런데 ‘연예인을 상대로 이권을 챙긴다’, ‘야쿠자 조직과 연계돼 있어 일본에 갔다’는 등의 소문이 말이 되는가.
- 그렇다면 김씨를 둘러싸고 이런 소문이 왜 나돈다고 생각하는가.
▲ 검찰이 나를 음해하고 있다. 검찰은 내가 서방파 전 보스라는 이유로 해외에 신앙 간증을 가기 위해 비자를 신청했을 때도 쉽게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어떤 혐의든 하나 걸려보라는 식으로 별러왔다. 그러던 찰나에 권상우 협박전화 건이 터졌고, 권씨는 검찰의 집요한 추궁에 말려든 것으로 보인다. 권씨는 나를 고소한 게 아니라, 구두 상 수사에 동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이를 부풀려 언론에 보도했고, 나는 세간의 잇따른 비난을 받아야 했다. 억울할 따름이다.
- 혹시 최근 옛 부하들의 소식이나 안부는 좀 듣는 편인가. 항간에는 과거 김씨를 따르던 서방파 조직원들과 자주 접촉한다는 말이 나돈다.
▲ 나 여기 두 달 째 입원해 있으면서 서방파 조직이라는 사람들 단 한 명도 전화하거나 연락하지 않았다. 설사 그들이 연락하고 싶다고 다른 사람 시켜서 얘기를 전해와도 내가 만나주지 않았다. 나를 감시하는 눈이 워낙 많아 이상한 소문이 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최근 만난(병원을 찾아온) 사람은 누구인가. 이타회(타인을 이롭게 하는 모임) 소속 회원들과는 자주 연락하는가.
▲ 그렇다. 이타회 소속 회원들은 돌아가면서 한 번씩 찾아온다. 얼마 전에도 하일성씨, 임동진씨 등이 찾아와 병문안인사를 하고 갔다. 오랜만에 보는 거라 반가웠지만, 내가 몸이 좋지 않아 장시간 머물진 않았다. 아내는 거의 매일 들르지만 병원에서 생활하지는 않는다. 요즘 내 문제로 언론에 시달리고 신경을 많이 써서 건강이 좋지 않다. (실제로 기자와 통화했을 때 목소리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쉬어 있었다.)
- 몸 상태는 어떤가. 병원 측으로부터 여전히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 숨쉬기가 곤란해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야 하는 형편이다. 폐 한쪽이 이미 없고 남은 한 쪽도 폐결핵에 두 번씩이나 걸렸다. 요즘엔 과거 폐암 수술을 받았던 부위에 통증까지 심해 무척 괴롭다. 이 병원에 입원한지 두 달 정도 돼 가는데 종합검진 받아보니까 심장혈관에 또 고혈압이 있다고 하더라. 게다가 관상동맥까지 막혀서 조만간 일본에서 수술을 할 예정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 수술이 끝나는 대로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나 호주로 이민을 갈 계획이다. 그곳에서 성경공부에 더욱 힘쓰고 신앙 간증을 하며 살겠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몸이 호전됐을 때고, 당분간은 좀 쉬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나를 믿어주고 나의 간증에 눈물 흘렸던 많은 신도들이 배신감을 느낄까 우려된다.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에 이틀 밤을 뜬 눈으로 꼬박 지새웠다. 현재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나는 결백하다.
#검찰 vs 김태촌 ‘칼 없는 전쟁’
권상우씨와 전소속사와의 계약 관계로 불거진 법적분쟁이 폭력조직 관련 수사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김태촌씨와 검찰의 치
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되고 있다.
“검찰이 나를 음해하고 있다”는 김씨의 거센 항변에 이어, 검찰이 “우린 증거 없는 폭로는 하지 않는다”고 김씨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김씨가 권씨를 협박한 사실에 대한 진술과 증거를 확보했다”며 “현재 김씨가 벌이고 있는 ‘언론플레이’는 향후 재판과정에서 유리하게 작용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 녹취록에는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보다 더 심한 수위의 발언도 포함돼 있다”며 “향후 녹취록 전문이 공개될 경우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후폭풍을 예고하기도 했다.
또 “피바다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김씨에 대해 검찰은 일단 “두고 보자”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또 “만약 김씨가 주장하는 바가 사실이라면 향후 재판과정에서 그는 ‘무혐의’로 풀려나지 않겠느냐”며 “혹 검찰이 잘못된 수사를 한 것이라면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며, 그에 대한 죗값 또한 달게 받겠다”고 말해, 권씨를 협박한 사실 여부에 대해 확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김씨는 “혐의를 입증해 볼 테면 입증해보라”는 답변을 내놨다. 권씨 측과 오해가 풀리고, 이미 합의된 상태에서 검찰이 왜 나서냐는 입장이다.
이어 그는 “끝까지 나의 무죄를 입증해 보일 것”이라며 회한이 서린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진주=정은혜 kkeunnae@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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