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우(55) 부장판사 테러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초미의 관심사는 박 부장판사에게 화살을 쏴 왼쪽 복부에 2cm 정도의 상처를 입힌 테러범 김명호(50)씨에게 쏠려 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따라 사건의 파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성균관대 전교수인 김씨는 잘못된 판결에 불만을 품고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김씨는 또 “이렇게라도 해야 세상이 진실을 알아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박 부장판사를 위협하려 했을 뿐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직 교수가 단순히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사건 담당 판사를 테러했다는 것은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이에 최영찬 사무처장(서울대 농생명과학), 계승혁 서울대 수학과 교수, 김씨의 인척 등 김씨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어렵게 접촉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보았다. 이들의 증언과 경찰조사 내용을 토대로 김씨의 지난 10년간의 시간을 되돌아 봤다.
사건의 발단은 김씨가 몸담고 있던 성균관 대학 교수 시절, 1995년 대학 본고사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월 실시된 성균관대 대학별고사의 자연계 필수과목이던 수학2에는 모두 7문제가 출제됐다. 논란이 된 문제는 100점 만점에 15점이 배정된 7번 ‘공간벡터에 대한 증명’.
당시 수학과 조교수로 채점에 참여한 김씨는 “가정 자체가 잘못돼 있어 수학적으로 오류가 있는 문제”라며 수험생 모두에게 영점이나 만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문제를 낸 수학과 교수들은 총장에게 김씨를 징계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 그 결과 김씨는 부교수 승진에서 연이어 탈락했을 뿐 아니라 교수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중징계까지 받았다. 96년 2월엔 ‘해교행위와 연구소홀’을 이유로 교수재임용에서 탈락해 오갈데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수재임용 탈락 부당’…소송 패소
이에 김씨는 ‘재임용탈락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재임용 거부는 학교의 자유재량’이라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국내에서 설 곳이 없어진 그는 96년 말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2001년엔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무급 연구교수직을 맡기도 했다. 그는 대학과 회사를 오가며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좀처럼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어느 곳을 가든 ‘재임용에 탈락한 수학자’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결국 2005년 다시 한국 땅으로 발길을 돌린 그는 ‘교수지위 확인소송’을 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패’였다.
이에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질 대로 커진 김씨는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이고 말았다.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해 ‘테러’라는 극단적 수단을 계획하기에 이른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초 서울 종로3가의 한 석궁판매점에서 40만원을 주고 석궁과 화살 20개를 샀다. 동작 경찰서(관할 경찰서)에는 레저용으로 등록신고를 했다. 이후 김씨는 자기 집 벽을 과녁 삼아 사격 연습을 했다. 박 판사의 서울 잠실동 소재 주소는 인터넷 관보에 나온 고위 공직자 재산현황에서 입수했다.
‘나홀로’ 치밀한 범행계획
또 재판과정에서 얼굴을 확인하고,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박 판사의 승용차 번호와 퇴근시간을 파악했다. 심지어 김씨는 범행을 저지르기 1개월 전부터 3,4차례 박 판사의 아파트를 찾아가 거주하는 층과 호수도 확인하는 등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15일 저녁 6시 30분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입구. 김씨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1층 계단에 서서 박 판사를 기다렸다. 당시 그는 석궁에 화살 1발을 장전했고, 2발은 왼쪽 허리춤에 꽂고 있었다. 길이 35cm의 회칼과 6.6m짜리 노끈, 화살 6발을 바닥에 둔 상태였다.
잠시 뒤 박 판사가 도착하자 김씨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박 판사가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며 외쳤다.
"박홍우 판사, 그게 판결이야."
이 말과 함께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석궁에서 화살이 박 판사를 향해 날아갔다.
왼쪽 복부에 화살을 맞은 박 판사는 비명과 함께 쓰러졌고, 김씨는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온 경비원 A씨에게 제지당했다. 경비원과 김씨가 몸싸움을 벌이는 동안 박 판사의 운전기사도 달려와 합세했다.
김씨는 이들에게 붙잡힌 뒤에도 “죽여 버리겠다”며 추가로 화살을 장전하려다 운전기사의 제지로 무산된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경찰은 김씨가 회칼 등 또 다른 흉기를 갖고 있었던 점, 화살이 꽂힌 각도가 위에서 아래로 향해 있어 계단 위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조준사격을 한 점 등으로 미뤄 박 판사를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석궁으로 위협해 편파적 판결을 내린 이유를 자백 받으려 했을 뿐 살해 의도는 없었다”며 “석궁은 실랑이를 벌이다 우발적으로 발사하게 됐던 것”이라고 경찰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또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었던 김씨가 혼자서 이처럼 치밀한 계획을 짜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경찰에 따르면 18일 현재, 아직 공범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다.
한편 일반적으로 석궁의 위력은 발사 직후에 가장 파괴력이 크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소 차이가 있다.
김인섭 대한석궁연합회 이사는 “범행에 사용된 석궁은 날개가 짧고 위력이 약한 대만제인데다, 빗맞는 바람에 피해가 비교적 가벼워 피해가 덜했던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견해를 밝혔다.
이밖에 박 판사는 현재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안정을 취하고 있다.
그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대병원 외과담당 박규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왼쪽 복부 아래쪽에 지름 8mm, 깊이 2cm 정도의 상처가 났다. 화살이 근육층까지 들어가 세균 감염우려가 있다. 염증도 계속 진행 중이어서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상처도 상처지만, 정신적 충격이 커서 당분간 안정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소견을 밝혔다.
#법정 테러 · 난동 사례들 - 면도칼 자해… 둔기 휘두르고… 어제오늘일 아니다
판사 테러나 사건 당사자들의 법정 난동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친일파 이완용의 증손자가 땅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 이기자 정신병력을 가진 민원인이 1997년 아무 관련도 없는 수원지법 성남 지원장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는 일이 있었다.
호적정정을 신청했던 민원인이 2003년 법원의 기각 결정에 불복해 면도칼로 자해를 하며 법원장실에 난입했던 적도 있다.
또 2005년에는 서울 소재 법원에서 피고인 가족이 고소인에게 둔기를 휘두르고, 피고인인 남편이 증인선서를 하는 부인을 흉기로 찔러 상해를 입힌 사건도 잇따랐다.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원인 편의 제공에 힘쓰던 대법원은 법정 난동이 이어지자 고육지책으로 검색대를 확대 설치하고 가스총을 소지한 법원경비관리대를 창설해 민원인들의 법정 내 소란을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이와 함께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 측으로부터 물리적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피해자 가족들은 안전한 곳에서 재판 상황을 화상으로 방청하면서 증언을 할 수 있는 ‘형사사건 피해자 보호실’도 설치될 예정이다.
kkeunnae@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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