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대권까지 영향 미칠 핵심 변수로
[일요서울ㅣ류제성 언론인] 박근혜 정부의 지역기반은 영남이다. 그 중에서도 대구·경북(TK)은 정권의 산실(産室)이나 마찬가지다. 2012년 대선에서의 박 대통령 전체 득표율은 51.55%지만 경북에선 80.82%, 대구에선 80.14%의 득표를 기록했다. 시·도별 집계에서는 1위와 2위를 차지했다.같은 영남권인 경남(63.12%), 부산(59.82%), 울산(59.78%)도 많은 표를 몰아줬다. 부산과 울산의 경우 강원(61.97%)에 미치지 못했지만 전국 평균 득표율을 크게 웃돌았다. 따라서 현 정권의 양대 축은 TK와 PK(부산·경남)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TK와 PK는 서로 상대를 견제하며 마치 경쟁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지역적으로 편향된 인사에서 비롯됐다. 일반적으론 현 정부 들어 영남 출신이 득세했다는 평가가 많지만 영남을 TK와 PK로 나눠서 분류하면 PK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지역적 편향된 인사 심각
실제로 현재 대통령을 제외한 국가 3부요인(정의화 국회의장, 양승태 대법원장, 정홍원 국무총리)이 모두 PK다. 청와대의 ‘왕(王)실장’으로 통하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해 주요 권력기관도 PK가 장악했다. 국가 의전서열 10위권 중 8명이 PK로 채워져 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TK 지역에선 ‘역차별론’ ‘홀대론’이 팽배하다. 심지어 “농사(대선 득표)는 TK가 짓고, 수확(요직 기용)은 PK가 다 한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PK 지역에선 ‘인구와 인물의 문제’라고 반박한다.
이처럼 두 지역 사이에 감정의 골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구와 부산이 정면 충돌할 전선이 형성됐다. 동남권(남부권) 신공항 건설이다. 현재 부산은 부산 가덕도를, 대구·경북과 경남은 경남 밀양을 신공항 입지로 밀고 있다. 부산은 신공항 명칭을 ‘동남권’이라고 붙인다. 가덕도가 국토의 동남권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구·경북·울산은 국토 남부지역이 모두 이용해야 한다며 ‘남부권 신공항’이라고 부른다.
신공항 입지를 놓고는 2011년에 양측이 힘겨루기를 벌이다가 정부가 건설 계획 자체를 백지화 하는 바람에 승부 없이 끝난 바 있다. 그러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신공항 건설을 공약하고 최근 정부가 이를 구체화 하자 2차 유치경쟁이 시작됐다.현재 각 지자체는 각자 유리한 지역에 신공항을 유치하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9월 2일 “부산시는 차분한 가운데 공항을 만들기 위해 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루 24시간 동안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시장은 대구·경북은 물론 다른 지역과의 상생방안도 찾겠다”고 덧붙였지만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권영진 대구시장도 같은 날 정례조회에서 “남부권 신공항은 특정지역 공항이 아니다. 남부권 경제공동체의 중심이 될 수 있고, 남부권 시·도민이 쉽게 갈 수 있는 지역에 들어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특히 권 시장은 “대구시 공무원은 신공항 유치를 위해 적극 홍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신공항 유치 홍보에 대구시 공무원 총동원령을 내린 셈이다.
공무원 총동원령…선전포고
신공항 유치를 놓고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인물은 홍준표 경남도지사다. 신공항 이슈를 차기 대권 가도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는 해석까지 나올 정도다. 6·4 지방선거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밀양 신공항’ 필요성을 역설해 오다가 정부의 수요조사 발표가 있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홍 지사는 최근 공식회의 석상에서 “상식적으로 공항 입지는 물구덩이(가덕도) 보다 맨땅(밀양)이 낫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 지사가 신공항 이슈를 선점하려는 건 ‘차기 대권 플랜’의 일환으로 파악된다. 무엇보다 집토끼인 경남의 민심 결집용 성격이 짙다. 여기다 영남권 전체로 볼 때 부산에선 비판을 받더라도 TK지역의 환심을 사면 대권 도전에 유리할 것이란 속셈도 있어 보인다. 산토끼 잡기다. 고향은 경남 창녕이지만 대구 영남고를 졸업한 홍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TK 정치인과 자주 어울렸다. 박근혜 대통령 이후 여당 내에서 뚜렷한 TK 대권 후보군이 없는 점도 감안한 행보로 읽힌다.
하지만 영남권의 다른 유력 정치인들은 일단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산 출신이든 대구 출신이든 서로 상대방 지역의 정서를 건드려선 좋을 게 없는 까닭이다. 여기다 박 대통령이 ‘유치경쟁 자제령’을 내린 만큼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2일 영상국무회에서 “지난주에 동남권 신공항 항공수요 조사 연구용역 결과가 발표됐는데 지역 간 경쟁과열, 대립 등으로 갈등이 심화할 소지가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어 “관계 부처는 타당성 검토 중인 과정에서 갈등이 커지지 않도록 지자체 간 평가기준에 대한 합의를 먼저 이루고, 결과를 수용한다는 원칙이 견지되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부산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신중 모드로 접어들었다. 신공항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치권의 개입은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평가기준 합의 먼저 이뤄야”
김 대표는 1일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서 “과거 입지선정과 관련해 지역간 엄청난 갈등을 야기했다. 그 중심에 정치권이 있었다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고, 몇 년 만에 이런 잘못이 또 연출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신공항 문제가 또 다시 굉장히 예민하게 대두되고 있다. 대구시당과 부산시당 위원장은 특별한 모임을 만들어 입지선정위원회에서 선정될 때까지 정치권은 일체 여기에 대해 말씀 안 하시도록 협조 해 달라”고 지시했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김 대표의 이런 스탠스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대선을 의식하면 부산 외의 다른 영남지역 민심도 감안해야 되기 때문이다. 김 대표로선 대권고지 등정에 나서든, 안정적 당 운영을 위해서든 PK와 함께 여권의 정치적 기반인 TK 민심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더구나 세월호 정국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신공항 이슈가 조기 부상할 경우 영남권이 분열되고 이는 현 여권의 정권재창출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PK지역에서 ‘신공항의 정치학’과 관련해 주목되는 또 한 명의 인물은 경남도지사를 지낸 김태호 최고위원이다. 김 최고위원도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힌다. 그는 1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대통합위의 갈등 조정→청와대·정부 건설’을 신공항 해법으로 제시했다. 영남권 5개 시·도는 손을 떼고 청와대가 입지 선정을 주도하라는 주문이다.
‘청와대 주도론’은 김 최고위원의 현재 정치적 입지와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경남 김해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지만 가덕도와 밀양 중 특정 지역에 힘을 싣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김해을이 부산 권역으로,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지역 유권자들의 호응도가 높은 까닭이다. 따라서 신공항이 어느 곳으로 가든 김 최고위원으로선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신은 신공항 논쟁에서 한발 물러서는 게 유리하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렸을 수 있다.
대구·경북의 유력 정치인들도 일단 “정치권이 개입하면 3년 전처럼 신공항 건설 자체가 백지화될 수 있다”며 입지 선정 문제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부산이든 대구·경북이든 어느 한 쪽의 정치권이 신공항 유치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순간 양측의 신중모드는 경쟁모드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부산과 대구 정치권은 지난 6·3 지방선거 국면에서 이미 한차례 전초전을 치른 적이 있다. 새누리당이 당시 고전 중이던 서병수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가덕도에서 중앙선대위를 여는 바람에 대구·경북 출신 의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김 대표도 이 회의에 참석했다. 김 대표는 나중에 대구 방문 길에 “부산 가덕도에서 중앙선대위를 개최한 건 잘못된 일로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파장이 컸다.
처신 고민하는 경제부총리
특히 차세대 TK 리더로 꼽히는 유승민 의원 등은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격하게 항의했다. 나아가 유 의원은 7·14 전당대회 때 대구권 의원들을 규합해 김 대표와 경쟁했던 서청원 최고위원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경북 경산-청도가 지역구인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처신이 어렵다. 일단 정부 경제 수장으로서 정치논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경제논리만 적용해 신공항 입지를 정해야 할 위치에 있다. 하지만 지역구의 여론, TK지역 친박계 리더로서의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최 부총리도 차기 대권 꿈이 없다고는 보기 어렵다. 또 대권 도전이 여의치 않다면 비박계의 리더로 떠오른 김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친박계 차원에서 다른 주자를 지원하는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래저래 ‘김무성-최경환’ 대치 구도는 차기 대권 경쟁 국면에서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여러 상황을 감안하면 영남권의 유력 정치인들이 지금은 불필요한 파문을 차단하기 위해 극도로 언행을 조심하고 있지만 언제든 신공항 입지 문제가 영남을 분열시킬 수 있는 화약고가 돼 있는 셈이다.
ilyo@ilyoseoul.co.kr
‘최경환과 김무성, 여러 차례 대립과 협력 반복’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을 전후해 친박계의 좌장은 김무성 대표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두 차례 공천에서 낙천하고 세종시 파동을 겪으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2012년 대선 때 중앙당 선대위의 총괄본부장으로 투입되면서 정권창출에 일조했지만, 7·14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주자로 나선 서청원 최고위원과 과열 경쟁을 벌인 이래 지금은 비박계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친박계에서 ‘김무성의 빈 자리’를 채우는 인물은 단연 최경환 경제부총리다. 2007년에는 김 대표와 호흡을 맞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시도했으나 이후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은 달랐다.
김 대표가 여러 차례 우역곡절을 겪는 사이에 최 부총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친박을 대표해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내고, 현 정부 출범 직후 원내대표로 선출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박 대통령의 신뢰도 측면에서 보면 최 부총리가 친박 핵심 중에서도 으뜸이란 말이 들릴 정도다.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사이에 최 부총리와 김 대표 사이에 견제와 갈등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김 대표가 2013년 4·24 부산 영도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을 받는 과정에서 여권의 핵심인 최 부총리가 반대했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반대로 최 부총리가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에 나섰을 때는 김 대표가 같은 PK인 이주영 의원을 밀었다고 한다. 평소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는 사이지만 최근 들어 관계가 서먹서먹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급기야 지난 7·14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최 부총리가 ‘김무성 대항마’로 검토되기도 했다. 당시 친박 핵심에선 서청원 최고위원이 고령인데다, 과거 정치자금 비리로 실형을 산 경력 등을 들어 ‘불가론’이 제기됐다. 그 대안으로 ‘최경환 대표 카드’가 부상했지만, 최 부총리의 취약한 대중성 등이 걸림돌이 돼 접었다고 한다. <성>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