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 돈 받으면 모든 저작권 포기해야”
한국의 조앤 롤링 나오기 힘들다 비판
한솔수북이 유아용 그림책 구름빵을 집필한 백희나 작가와 ‘매절계약’이라는 불공정계약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출판업계의 매절계약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백희나 작가 역시 “저작권은 당연히 저작자가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며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심경을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한솔수북은 이 같은 논란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않는 모양새다. 백 작가가 소속된 에이전트의 한 관계자는 “해당 논란이 일어난 후 한솔수북과 특별히 이야기가 오고간 것은 없다”며 “현재 별도의 계약관계를 맺은 상태도 아니고 이번 논란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연락을 받거나 논의가 이뤄졌던 일은 없다”고 말했다.
또 “저작자와 출판사는 공생의 관계다”며 “출판사 입장에서도 돈이 필요하다보면 ‘매절계약’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일정기간만 정하는 식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 향후에도 기본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는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발표된 표준계약서 권고안을 비롯한 것들이 좀 더 구체적이고 단단한 법적 장치를 통해서 보호받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일이 이렇게 된 것이 안타깝다”며 “도의적인 선에서 협의를 이끌어내는 것을 넘어 법적 안전장치를 통해 공생의 관계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매절계약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해당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한솔수북은 유아용 그림책 ‘구름빵’으로 얻은 수익인 4400억 원이 ‘매절계약’을 통해 일방적으로 얻은 수익임을 알려지면서 출판업계 불공정 계약 논란의 시발점이 됐다.
구름빵은 2004년 단행본으로 나온 어린이 그림책이다. 국내에서만 40만 부가 넘게 팔리며 아이가 있는 집의 필수 도서가 됐다. 또 영어, 일본어 등 8개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캐릭터 상품은 물론 TV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2차 콘텐츠로까지 제작됐다. 특히 강원정보문화진흥원이 ‘구름빵’ 테마파크를 건립하기로 발표한 것은 국내 최초의 사례다. 그동안 하나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주제로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일은 없었다.
이에 따라 구름빵은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대표사례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구름빵’을 지목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휴가 기간 SNS를 통해 “우리 캐릭터 중의 하나인 ‘구름빵’이 인기를 얻고 있다. 콘텐트 창작은 우리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유아도서계에서 백희나 작가와 구름빵은 뽀통령에 버금가는 유명인사가 됐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구름빵으로 백 작가는 부와 명예를 다 가진 한국의 조앤 롤링이 됐으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조앤 롤링 작가는 ‘해리포터’ 하나로 단숨에 스타작가가 된 인물로 유명하다.
그러나 백 작가는 1850만 원의 인세만 받는 데 그쳤다. 매절계약은 작가가 출판사로부터 한 번 돈을 받으면 모든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름빵처럼 2차 콘텐츠 등의 수익이 생기더라도 작가가 아닌 출판사가 저작권을 갖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며 구름빵은 창조경제의 성공사례에서 불공정 계약 논란의 화두로 떠올랐다. 한솔수북 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의 문제로 지적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저작자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 조앤 롤링같은 작가의 탄생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인 분리로 규제서 제외
한편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논란이 지속되자 업계 전반에 만연한 불공정 약관조항에 대해 시정을 명령했다. 애니메이션, 뮤지컬, 연극, 전시회 등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한 번에 영원히 출판사에 매절하도록 돼 있는 약관 규정을 저작자가 출판사에 양도할 권리를 선택하고, 2차 콘텐츠에 대한 권리가 작가에게 있다는 걸 명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창작 동화책 등 창작물을 2차적으로 활용할 땐 저작권자의 명시적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작 불공정약관 시정 대상 출판사에 ‘구름빵' 출판사인 한솔수북은 제외됐다. 한솔수북은 단행본이 아닌 학습지주력회사로 등록됐다는 이유다. 공정위가 시정 명령을 내린 곳은 출판 웅진씽크빅, 교원, 삼성출판사, 시공사, 김영사 등 대표적 출판사 20군데다.
한솔수북은 ㈜한솔교육 단행본 출판부가 독립한 자회사다. 한솔교육은 1982년 자본금 150만 원에서 시작해 어린이 교육 시장을 개척하고 선도해온 대표기업이다. 하지만 한솔수북은 이 같은 한솔교육의 자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법인이 분리돼 있기 때문에 공정위의 규제에서 피해갈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결과적으로 한솔수북은 4400억 원의 수익에 따른 불공정 약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규제나 처벌도 받지 않게 됐다.
이에 해당 출판사와 공정위의 방침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논란이 된 업체는 제외되고 다른 출판사들만 규제를 받는다는 건 말도 안된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한솔수북 관계자는 “해당 논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애쓰고 있다”면서 “앞으로 좋은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논란에 대한 인터뷰는 사양하겠다”고 답해 불공정계약, 갑질 논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