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막판 불의의 장출혈 수술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33·샌디에이고 파드리스)씨가 또 한 번 속앓이를 할 뻔했다.
박씨가 효심이 지극하다는 점을 악용, 박씨의 아버지를 납치해 수십억 원의 몸값을 요구하려던 한 30대 남성이 최근 검찰에 검거되는 해프닝이 일어난 것. 평범한 회사원이었다가 최근 사업에 실패한 최모(31·무직)씨가 그 장본인이다. 춘천지방검찰청 형사제2부는 7일 박씨의 아버지 박제근(63)씨를 납치해 금품을 빼앗으려 한 혐의(인질 강도 예비)로 최씨를 긴급체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사건은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최씨의 범행 시나리오가 마치 ‘007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밀하고 빈틈없는데다가, 납치 후 감금할 장소 및 경찰 추적을 따돌릴 방법까지 모색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또 최씨가 박씨 아버지의 구체적인 신상까지 꿰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스타들의 가족 안전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실정이다.
‘효자’ 박찬호 상대로 범행 모의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작년까지 채권추심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러다 올해 인터넷 도박 PC방을 개업, 사업을 벌이다 검·경의 집중 단속으로 영업이 어려워지자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 설상가상 최씨의 아버지도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최씨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빠졌다고 검찰관계자는 전했다.
그렇다면 최씨는 왜 하필 박찬호씨를 범행대상으로 정한 것일까.
거액의 현금을 몸값으로 지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박씨의 효심이 지극하기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버지의 신변이 걱정돼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 검찰관계자는 “게다가 박씨가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박씨의 아버지를 범행대상으로 정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영화 같은 시나리오 ‘치밀한 계획’
납치를 실행에 옮기기로 한 최씨의 범행계획은 치밀하다 못해 비틈이 없었다. 범행 성공 시와 실패 시 두 가지 상황에 대한 각본을 미리 짜 놓은 것. “마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잘 짜여진 시나리오”라는 게 검찰관계자의 말이기도 하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9월 20일부터 40여일 동안 인터넷 등으로 범행수법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우선 최씨는 박씨가 인터넷 홈페이지로 각종 후원사업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을 악용, 박씨 측근에게 ‘후원사업의 수혜자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접근했다. 최씨는 박씨의 전화번호 등을 알아냈지만, 통화하거나 접촉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으로 최씨는 서울 모 지역에서 경기 청평과 가평을 지나 강원 춘천 방하리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범행 이동경로를 구체적으로 조사한 범행계획서를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범행계획서는 마치 지도를 보듯 각 지역의 위치와 차량 이동경로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었다”면서 “5명의 공범들이 각자 위치에서 할 일들도 기록돼 있었다”며 최씨의 치밀한 사전 계획에 혀를 내둘렀다.
뿐만 아니다. 최씨는 박씨의 아버지를 납치한 뒤, 감금장소로 경기 청평군 인근의 모 펜션을 물색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 과정에서 대포폰과 대포차량, 차량번호판 2개, 금속탐지기, 보트, 수갑과 복면, 가발 등의 범행도구들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포폰은 11개를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협박용 휴대폰’ 등 용도에 따라 사용하기 위해서 마련한 것이라고.
최씨의 치밀한 계획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범죄동업자를 모집합니다’라는 카페를 개설, 범행에 가담할 동조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최씨는 납치와 현금 수송 등은 모두 공범자에게 맡기고 자신은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배후에서 감시, 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공범들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자신의 계획을 밝혀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도주계획까지 세워놓기도
최씨는 본인과 일당들이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복면을 사용하려고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돈이 든 가방에 위치추적기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금속 탐지기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돈이 실린 차량을 미행하는 경찰 등의 차량이 있을 것이라 판단, 경찰을 따돌리고 도주로까지 계획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기도 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 검찰관계자는 “최씨는 가평 모 지역에 덤프트럭을 준비해 놓은 뒤 돈이 실린 차량이 지나가면 도로를 막아 미행차를 따돌린 후, 가평 모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춘천으로 이동해 미리 준비해 놓은 차량을 타고 서울로 도주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며 “심지어 현장답사까지 마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의 범행계획은 감히 초범이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했다”며 “자칫 미궁에 빠질 뻔했던 범행이 사전에 적발돼 천만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인터넷 통해 공범 모집하다 ‘덜미’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최씨의 범행은 실행되기도 전에 막을 내려야 했다.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고 공범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검찰 첩보망에 걸려든 것.
최씨는 지난 5일 오후 6시 20분쯤 춘천시 서면 모 초등학교 인근에서 만나기로 한 공범과 접촉을 시도하려다가 그 자리에서 체포됐으며, 당시 최씨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복면을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내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한편, 박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 직접 참고인 조사를 받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매형이자 매니지먼트사인 ‘팀61’ 김만섭 대표는 “찬호가 이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면서 “그나마 사건이 실행되기 전에 범인을 잡은 데 대해 안도를 했다”며 그의 심정을 대신 전해주었다. 이어 김대표는 “찬호는 아버지가 검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는 것으로 사건이 빨리 종결돼 조용해지길 바라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다행히 범행 모의단계에서 용의자들이 검거돼 해프닝에 그쳤지만, 몸값을 노린 납치범죄가 연예인에 이어 스포츠 재벌 스타로까지 확대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은혜 kkeunnae@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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