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파문의 장본인인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달 초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연구실을 여는 등 그동안 잠잠했던 연구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는 지난달 14일 타인명의의 재단법인 설립을 최종 허가,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설립했다. 황 전교수는 함께 일했던 대학원생 등 20여명을 채용해 연구 인력을 보충하기도 했다. 또 인간배아줄기세포가 아닌 동물 복제와 무균 돼지를 이용한 이종 장기연구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연구재개에 대한 정황만 포착됐을 뿐, 구체적인 진행 상황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연구원 및 서울대 관계자들은 ‘입단속’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 눈치다. 황 전교수의 변론을 맡고 있는 이건행 변호사 역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서울 구로동소재 디지털단지에 연구실을 열고 본격적인 연구 재개를 모색하고 있는 황우석 전교수의 행보가 관심사다.
21일 과기부에 따르면, 황 전교수는 타인 명의로 재단법인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설립해 법인설립신고서를 제출, 지난 7월 14일 과기부로부터 최종 허가를 받았다. 재단 이사장은 황 전 교수의 동향으로 알려진 박병수 수암장학재단 이사장 겸 (주)스마젠 회장이다. 재단의 총 재산은 25억원 규모이고, 재단 사무실은 서울 방배3동 수암빌딩에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설립목적은 동물 줄기세포연구 및 복제연구 등 8가지 연구 사업이다.
과기부 조성연 사무관은 “민법과 공익법인 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목적과 연구시설, 자본금 등을 갖추면 누구나 재단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사무관은 또 “황 전교수는 법인 설립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박병수 이사장의 지원을 받는 연구원일 뿐”이라며 “사실상 이 연구실은 후원자로부터 무상공여 받는 셈”이라고 밝혔다. 황 전교수가 지원받는 연구실 임대료는 150평에 보증금 5,000만원, 월세 5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일대 사무실 임대료를 바탕으로 추산한 결과다.
구로디지털단지 연구실 150평 임대
‘황우석 부활 플랜’을 풀가동하고 있는 연구실이 위치한 곳은 서울 구로3동. 이곳 일대는 아파트형 공장들이 즐비해 ‘디지털 밸리’라고도 불린다. 황 전교수가 연구 재개를 위해 마련한 이 연구실은 의류 수출업체인 ㅌ물산 사옥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크기나 외관상으로 볼 때 화려한 수준은 아니지만 황 전교수가 연구를 재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는 평가다.
21일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 150평으로 알려진 내부는 아직 ‘미완성’이었다. 70여평 정도만 연구실로 활용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공터였다. 합판으로 벽을 만들어 2개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실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있었다. 따라서 연구실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물론 관계자와의 접촉 또한 쉽지 않았다. 때마침 연구실을 방문한 수리공들을 통해 기자는 연구실 안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내부는 생각보다 평범했다. 방은 5개였고, 복도 벽은 내부가 보이는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다. 방 안에 일일이 들어가 확인하진 못했지만, 유리창 밖에서 볼 때 아직 본격적인 연구시설은 확보되지 않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외부 창고 방에 놓인 쓰레기 및 박스에 널려 있는 주사기 포장지 등으로 미뤄 짐작컨대, 내부에서 뭔가 물밑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연구원측 언론과 접촉 일체 안해
황 전교수 주변과 측근을 취재한 결과, 그는 아직 연구실에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조만간 연구소에 출근, 본격적으로 연구 활동에 가담할 예정이라고.
실제로 기자가 황 전교수의 향후 행보를 전해 듣기 위해 그와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황 전 교수의 전화는 그의 여비서로 추정되는 직원이 대신 받았고, 현재 바쁜 일정 때문에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전했다.
수암생명공학연구원 관계자 역시 “황 전교수와 관련, 그 어떤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나는 합류한 지 얼마 안돼서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내부 규정상 모든 언론과 일체 접촉하지 않기로 했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서울대 수의대에 다닌다는 한 대학원생은 “얘기하지 말라고 해서…”라고 말끝을 흐리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내부에서 ‘입단속’을 철저히 시키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일부 대학원생은 “황 전교수를 보고 이번 연구에 합류했다”며 “이곳에서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학위를 받을 것이다”라고 각오를 다진 것으로도 알려졌다.
전 서울대 연구원, 갈등 없이 합류
무엇보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합류한 연구원들이 누구인지 여부다. 항간에는 합류한 20여명 모두 서울대 대학원생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잘못된 보도인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 결과, 합류한 연구원들은 황 전 교수와 함께 일하던 대학원생 15명과 연구보조인력 4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사급은 얼마 전 돼지 줄기세포 연구로 박사 논문이 통과된 김수 연구원 뿐이고, 나머지는 박사과정이나 석사연구원들이다. 이에 대해 황 전교수의 한 측근은 “현재 연구원들을 더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존 연구팀보다 더 보강된 막강 드림팀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줄기세포팀장이던 권대기 연구원은 아직 합류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교수의 양대 축으로 활동했던 이병천, 강성근 교수 역시 새 연구소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병천 교수는 “현재 정직 상태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강성근 교수 역시 “기자들과 통화하고 싶지 않다”며 “이럴 수밖에 없는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횡령 등 혐의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황 전교수와 별도로 다른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교수의 변론담당인 이건행 변호사는 “황 전교수는 인간줄기배아세포 연구재개를 희망하고 있으나 연구자격을 상실해 불가능하다”며 “이들은 동물 복제와 무균 돼지를 이용한 이종 장기연구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변호사는 “연구실이 노출되면 연구 활동에 방해를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황 전교수의 현재 건강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항간에 나도는 해외 영입설 등등의 소문에 대해 이변호사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모든 소문을 일축했다. 이어 그는 “황 전교수와 연구원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각오로 임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며 “이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