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위 “친일파 재산 꼼짝마”, 후 손 “국고 환원꼴 못 봐”
조사위 “친일파 재산 꼼짝마”, 후 손 “국고 환원꼴 못 봐”
  • 정은혜 
  • 입력 2006-09-10 15:24
  • 승인 2006.09.10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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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재산환수 후폭풍 예고

최근 검찰이 친일후손이 제기한 재산반환소송의 소 취하 요구를 거부해 주목을 끌고 있다. 친일파 토지반환 소송의 취하 의견이 거부된 것은 친일파재산환수법이 시행된 지난해 12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친일파 후손들의 ‘구색에 맞는’ 소 취하·제기 행위가 어려워 친일파 재산환수 작업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친일파 후손에 대한 재산환수 작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친일파 리스트’도 재부상하고 있다. 18일 공식출범한 대통령 소속 범정부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이하 친일재산조사위, 위원장 김창국)’는 리스트에 올라있는 이들의 후손을 집중 추적해 수십억~수백억원의 재산을 완전히 몰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친일후손의 반발이 거세질 것은 불문가지이고, 향후 이 문제는 정치·사회적으로 적잖은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실제로 친일후손들은 거센 반발과 함께 매국의 유산을 되돌려 받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유산을 둘러싸고 후손들 간 법정다툼도 한창이라고 한다. 심지어 조사 중인 토지와 관련, 이권을 챙겨주겠다거나 국고 환수 결정을 막아주겠다는 브로커 내지 사기범들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땅 찾기’ 소송 잇따라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이완용 등 주요 친일파 11명이 일제시대 경기도에 보유한 토지만 약 440만평. 현시가로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미래정책연구원 홍모 연구원은 친일파 31명의 보유 토지가 1억 3,484만평(445.75km)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 이 경우 현시가는 수백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친일후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 친일파 후손의 ‘땅 찾기 소송’은 지난 80년대 말부터 진행되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된 것은 이완용의 종손인 이윤형이 1992년 서울대학교를 상대로 경기도 고양시 소재 2만5,000평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였다. 이 소송은 원고의 소 취하로 종결되었지만 이후 경기도 여주군과 강원도 철원읍 일대, 서울시 북아현동 일대 등의 부동산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다른 친일파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잇따라 소송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제기된 친일파 후손들의 국가상대 소송은 모두 33건으로 이 중 국가 승소 5건, 국가패소 9건, 소 취하 6건, 나머지 13건은 재판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초헌법적 재산몰수 될 수도
하지만 지난달 21일 검찰이 친일후손이 제기한 재산반환소송 소 취하 요구를 거부하면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은 재판 계류 중인 ‘재산 찾기’ 소송에서 이재완의 후손이 소송을 그만두겠다고 했음에도 불구, 법정에서 소 취하를 거부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은 상황이 불리할 때는 소송을 취하했다가 시일이 지나 유리하게 흘러간다 싶으면 다시 소송을 제기하는 등 ‘기회’만 엿보고 있다”며 후손들의 ‘속 보이는’ 행동을 비난했다. 이 관계자는 또 “민사소송에서는 판결 전에 취하를 하면 언제든 소장을 다시 낼 수 있다”며 “친일파 후손들의 소송 남발을 방지하고, 재산환수 작업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소 취하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소송을 다시 내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가 확실한 상황에서만 소 취하에 동의하고, 소 취하서를 제출하더라도 소송을 다시 제기할 가능성이 보이면 소 취하 동의를 거부할 방침이다”라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실제로 이완용, 이재극, 민영휘의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재산 찾기 소송에서 이겨 소유권을 인정받은 재산에 대해서도 최근에 예비조사를 벌여 재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사유재산권에 대한 재판을 번복할 초법적 재산몰수 활동을 친일재산조사위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재조사 결과 친일후손들이 보유한 재산이 반민족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것으로 밝혀지면, 조사위는 과반수 출석에 다수결 방식으로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친일후손들에 대한 초헌법적 재산몰수가 가능하다는 판단도 할 수 있다.

후손들 “재산 절대 뺏길 수 없어”
검찰의 이러한 강경대응에 후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친일재산조사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완용의 후손이 이미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겨 소유권을 인정받은 2건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친일재산조사위의 결정에 불복하는 법률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또 이번 친일청산 방식이 위헌 또는 재산권 침해 결정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된 것이 아니어서 경우에 따라 57년 전의 반민특위 해산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재산환수 방식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헌법재판소의 몫으로 넘겨졌다. 재산을 몰수하는 조사위의 결정을 친일후손들이 그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재산이 몰수되는 친일후손은 위헌소송까지 제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조사 중인 토지와 관련, 이권을 챙겨주겠다거나 국고 환수 결정을 막아주겠다는 주장을 하는 브로커나 사기범과 결탁하는 경우도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가끔 소송을 수행하다가 원고에게 뭘 물어보면 소송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는 100% 토지브로커가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토지브로커들은 일제시대 토지조사부 등을 입수한 다음, 그 중 국가에 보존등기가 된 경우를 찾는다”며 “사실 그 땅을 사정받았던 후손들은 정작 찾을 생각도 안하는데 브로커들이 이들을 찾아가 ‘소송에 이길 수 있으니까 해 보자’고 회유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너서클’ 친목다지기도
이러한 브로커들과 함께 이너서클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은 지난 4월 20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일제시대 때 중추원 참의 이상을 지냈던 사람들, 요즘으로 말하면 국회의원 이상을 했던 친일후손들이 지금까지도 이너서클을 꾸려오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의원은 이너서클 모임의 실체에 대해서는 공개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명을 비롯한 구체적인 내용이 거론될 경우,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이들 모임에서는 ‘돈되는’ 부동산에 관한 정보뿐 아니라 친일청산법 등과 관련한 정부정책에 대한 논의 및 대응책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들은 “재산환수법이 발효돼 재산을 뺏기느니 차라리 브로커들에게 주거나 내팽개치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라고 한다. 환수당한 재산이 국고로 들어가는 꼴은 눈 뜨고 못 본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한편, 친일재산조사위의 실효적인 환수작업을 두고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조사위가 특정의 재산에 대해 친일재산임을 확인하고 조사개시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제3자에 매각되면 환수가 법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또, 친일후손이 친일재산 조사결정이 내려질 것을 우려해 서둘러 헐값에 매각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조사위 활동시한이 최대 6년으로 묶여있는 점도 방대한 규모의 재산 조사 및 환수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친일청산을 위한 정부의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다. 법적, 사회적, 정치적 논란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역사적인 청산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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