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검진서 한국돈 4천원
실제로 지난 2005년 한해에만 4천여명의 베트남 여성들이 건강검진서 없이 베트남 호치민 영사관을 통해 비자를 받아 유유히 국내로 들어와 살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제결혼 외국인 여성들이 별다른 건강검진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내로 들어와 생활하고 있다는 게 기정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이는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국내 건강검진 체계가 대단히 취약하다는 얘기다. 국제결혼 알선업체에 따르면 이들은 약혼자인 한국 남성들과 건강검진 전에 이미 부부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남성들이 에이즈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은 상황인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본부는 정작 이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어 아직 이들의 신원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에이즈 감염 여부 확인을 위한 건강검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 국제결혼 알선업체 관계자 김모(50)씨는 ‘국제결혼 에이즈 파문’ 관련 보도 이후 외국인 아내의 에이즈 감염여부를 확인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혼시 검진서 진위여부 확인해야
김씨에 따르면 자신이 운영하는 알선업체 고객인 A(38)씨는 아내인 베트남 여성의 에이즈 감염여부를 밝혀달라고 의뢰한 상태라고 한다.돈과 능력을 중시하는 한국 여성에게 수차례 상처 받아 지쳐있던 그는 ‘한국 여성은 아니되 우리와 비슷한 외모, 환경, 사고방식 등이 같은 외국 여성을 찾기 위해’ 2004년 5월 국제결혼 알선업체를 찾았다. 이곳에서 A씨는 ‘착하고 순하다’는 베트남 여성 B(25)씨를 소개 받았고 이렇게 둘은 인연을 맺게 됐다.
김씨에 따르면 A씨는 B씨를 처음 만났던 날 ‘기분이 너무 좋아’ 과음을 한 탓에 필름이 끊겼다고 한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나이도 어리고 얼굴도 예뻐 첫눈에 반했다는 것. 이렇게 ‘눈이 맞은’ 그들은 결혼을 약속했고 곧 베트남으로 향했다. 업체의 소개로 국제결혼을 하는 한국 남성들은 결혼 전에 예비 신부의 국가를 방문해 부부관계를 맺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을 것만 같던 A씨가 B씨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이번 ‘국제결혼 에이즈 파문’ 보도가 터져 나오면서부터.
국제결혼 당시 A씨는 아내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혹시 아내가 ‘에이즈 감염자’이지 않을까 내심 신경도 쓰였다고 한다. 건강검진결과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설마’가 ‘사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몇 번이고 마음을 접었다고. 게다가 마흔이 다 되어 어렵사리 꾸리려는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터다. 이번 보도 이후 A씨는 아내 몰래 피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검사결과 당뇨만 조금 있을 뿐 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아무 이상이 없어 다행”이라며 “아내도 곧 건강검진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혼전 성관계 관행도 문제
또 다른 사례. 우즈베키스탄 여성과 혼인신고를 했다는 P(40)씨는 현재 모국에 있는 아내가 한국에 들어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P씨는 작년 12월 알선업체를 통해 우즈베키스탄 여성과 결혼식을 치른 뒤 부부관계를 맺었다. 사업상 문제로 한국에 먼저 들어온 P씨는 이때 우연치 않게 ‘국제결혼 에이즈 파문’ 보도를 접하게 됐다. 아내의 건강검진결과를 한 번도 확인한 적이 없던 P씨 역시 의심이 들긴 마찬가지. 아내와 처음 만날 당시 아내를 주선해준 알선업체에 “아내가 건강검진을 했냐”고 물었더니 “진단 결과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업체측의 말만 들은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도를 접한 이후 P씨는 “그때 왜 좀 더 적극적으로 아내의 건강검진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을까 너무 후회가 된다”면서 “만약에 지금 와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하냐”고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또한 그는 “지금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아내가 너무 예쁘고 착해서, 업체 말만 믿고 성급하게 부부관계를 맺은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일단 아내가 입국하는 대로 건강검진을 할 계획”이라며 “힘들게 얻은 아내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주위에 혹시 국제결혼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건강검진’ 부분을 꼭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제결혼 알선업체 관계자 김씨는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단언했다. 김씨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베트남 여성들이 질병 사실을 숨기고 이미 한국 남성과 결혼, 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허위 건강검진서를 조작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한국 돈으로 4천원 정도면 허위 건강검진서를 어렵지 않게 발급받을 수 있어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전했다. 이번 ‘국제결혼 에이즈 여성 파문’은 외국인 여성에 대한 한국대사관과 정부의 허술한 건강검진체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국제결혼 가정은 물론 국민 건강권 확보 차원에서 손을 놓고 있어 문제가 됐다는 점에서 만약 이들의 에이즈 감염여부가 ‘속속’ 드러날 경우 당국은 따가운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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