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한진 vs 느긋한 아람코…불리한 줄다리기 6개월째
장부가 5천억 하락, 유증 4천억 출자…연 1천억 배당도 끝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대한항공이 보유한 에쓰오일(S-oil) 지분 매각이 난기류에 봉착해 있다. 한진해운을 필두로 한진그룹 경영정상화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 지분 매각은 벌써 6개월이 넘도록 지지부진한 상태다. 대한항공이 에쓰오일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Aramco)와 단독협상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그 와중에 에쓰오일 주가는 30% 가까이 떨어지며 대한항공의 자금회수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대한항공은 한진해운 유상증자 참여 등 반강제적인 그룹 지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이다.
애초 대한항공이 멀쩡한 에쓰오일 주식을 팔기로 결정한 것은 한진해운의 유동성 위기 때문이다. 6년간 그룹과 다른 길을 걷던 한진해운이 지난해 말 경영악화로 다시 한진그룹의 품에 안긴 것이다.
이에 한진그룹의 최대 과제는 돌아온 한진해운 살리기가 됐다. 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대한항공이 이 십자가를 졌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부터 에쓰오일 주식은 물론 보유 부동산 및 항공기까지 정리하며 자금을 마련 중이다.
사실 대한항공의 입장에서 에쓰오일 주식 넘기기는 다소 속이 쓰린 계산이다. 에쓰오일은 1년에 1000억 원씩을 대한항공에 배당금으로 안겨준 회사다. 최근 6년간 대한항공이 에쓰오일 지분을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받은 배당금은 7000억 원이 넘는다.
이는 에쓰오일의 배당성향을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에쓰오일은 2000년부터 12년간 4조7000억 원을 웃도는 배당금을 뿌렸다. 같은 기간 순이익의 70%가 넘는 금액으로 철저한 주주우선정책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그룹 경영정상화 계획대로 에쓰오일 지분을 내놓고 한진해운 유상증자 참여에 합류해야 한다. 사실상 모그룹을 살리기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부실 계열사 지원을 감행하는 것이다.
7년 전 생성된 올가미 목 죈다
잃을 것도 눈에 훤하다. 먼저 에쓰오일 지분 매각이 이뤄지면 대한항공은 1년에 1000억 원씩 들어오던 배당금이 날아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진해운 유상증자 참여로 당장 4000억 원을 내놓아야 할 판이다. 당초 에쓰오일 지분을 팔아 유상증자에 출자하려 했으나 타이밍이 어긋난 셈이다.
게다가 매각 지연으로 보유한 에쓰오일 주식의 장부가는 6개월간 5000억 원 넘게 증발했다. 그간 에쓰오일 주식은 지난해 말 주당 7만5000원선에서 이달 초 5만5000원선으로 27%가량 하락했다. 국제유가가 정체되고 비산유국의 불황이 이어진 탓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의 자회사 한진에너지가 보유한 에쓰오일 주식 3000주도 2조2000억 원선에서 1조7000억 원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매각 과정에서 단독 협상권이 아람코에 있다시피 해 대한항공은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 모양새다.
아람코는 세계 최대 석유생산회사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이며 현재 에쓰오일의 최대주주다. 지속적으로 항공유를 구매하는 대한항공과도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한진그룹은 2007년 롯데그룹과의 경쟁 끝에 에쓰오일 지분을 사들였다. 기존부터 에쓰오일 지분 35%를 보유한 아람코가 최대주주, 대한항공이 28.4%로 2대주주가 됐다. 이 과정에서 한진그룹은 보유 지분 우선매수권을 아람코에 쥐어줬다.
이것이 올가미가 돼 대한항공의 목을 조르고 있다. 대한항공은 에쓰오일 지분 매각에서 경쟁입찰을 배제한 채 아람코와 일대일 협상을 선포했다. 현재 아람코는 주가 하락이 반영된 금액으로 인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반해 대한항공은 최초 주가를 요구하면서 가격차가 5000억 원 이상 벌어지고 있다.
놀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국제민간항공운송협회 참석을 겸해 직접 중동으로 날아가 아람코 총재를 만나 담판을 짓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제 와서 지분 매각을 무효화 할 수도, 경쟁입찰로 돌릴 수도 없는 조 회장의 난처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더불어 대한항공이 에쓰오일 지분 매각을 매듭짓지 못한 상태에서 한진해운 유상증자에 4000억 원을 출자하는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것도 대한항공이 지난해 10월과 12월 한진해운홀딩스에 2500억 원의 운영자금을 대여한 지 6개월 만의 일이라 여론이 더욱 악화됐다.
이와 관련해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1일 논평을 통해 “대한항공이 계속해서 한진해운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유동성 해결이 아닌 그룹 전체의 위기 확산이 될 수 있다”면서 “대한항공은 이번 유상증자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더 이상 부실 계열사 지원에 나서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