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대로 다 해 드립니다’
‘시키는 대로 다 해 드립니다’
  • 김현진 
  • 입력 2004-12-13 09:00
  • 승인 2004.12.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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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합격자, 토익 만점자도 취업난의 그늘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을 가면 미래가 보장이라도 되는 듯 대규모 커닝 사태까지 빚어져 그야말로 사회 전체가 뒤숭숭하다. 20대 청년실업자를 비롯, 10대까지도 신종 아르바이트에 혈안이 돼 있다. 그들의 의도는 용돈(?)이라도 벌어보겠다는 것. 아르바이트를 찾는 일부는 그 도를 넘어 ‘노예족’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단지 용돈을 벌기 위한 순수한 거래일까. 일명 ‘노예족 세계’를 들여다봤다.‘노예족’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채팅방에 자신의 프로필을 제시한다.강우석(23·가명)씨는 “안녕하세요. 사진과 함께 인사 드립니다. 너무 무섭게 생겼나요? 하지만 저는 당신의 노예랍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힘(?) 좋게 생겼죠?”, “제가 필요하신 여왕님들은 메일이나 전화주세요. 바로 달려갑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또한 이정석(17·가명)씨는 과감한 10대 노예족이다.“사는 곳은 서울 송파와 경기 성남 분기점입니다. 아름다운 여성분의 노예가 되고 싶어요”라는 메시지와 전화번호를 남겼다.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는 이들은 다양한 프로필과 사진들을 게시하며 자신들을 팔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자칭 ‘노예족’들은 무슨 일을 하며 ‘여왕님’들을 즐겁게 해줄까. 노예가 필요하다는 조건으로 기자는 이들 중 한 사람에게 어렵게 접근했다.민정진(28·가명)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이렇다 할 직장에서 러브콜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용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여기 저기 기웃거리던 민씨는 올 초 재밌는 신업종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복잡한 것도 싫었고 단순히 시키는 일을 하며 ‘솔솔’하게 용돈을 벌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민씨는 바로 회원 가입을 했고 자신을 찾는 여성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덧 민씨를 찾는 고객은 늘어갔고 ‘베테랑 도우미’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민씨는 “요즘 여성의 사회 활동은 많아지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스트레스를 풀 곳을 찾지만 마땅한 게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같은 ‘노예’를 부리며 어떤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우리는 돈을 벌고 서로 좋은 거 아닌가”라며 베테랑 도우미다운 대답을 했다. 그는 올해 4월부터 ‘노예’업을 해 왔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간간이 일을 했는데 수입에 대해서는 “시간당 3만~4만원 정도다. 유동적이라 정확하지 않다”며 자세한 설명은 피했다.민씨가 ‘노예’로서 한 첫 번째 일은 ‘애인’ 역할이었다. 애인이 없는 여성이 그를 산 것이다. 나이는 자기보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그 당시 민씨는 저녁 약속은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다. 자기를 산 여성이 부르면 바로 ‘네’하고 달려가야 했기 때문. 커플 모임이나 동창 모임 등 민씨의 동반이 필요할 경우 시간당 몇 만원씩을 받으며 함께 참석했다. 물론 모임에서 대접받은 ‘만찬’에 대한 돈의 지불도 그 여성의 몫이었다. 민씨는 “가끔은 ‘뭐 하는 짓인가’라는 우울함도 있었지만 좋은 음식과 적지 않은 용돈의 대가로 그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여성의 ‘여행 파트너’ 역할을 했다. 솔로인 여성은 여행을 원했지만 딱히 같이가고 싶은 친구도 없고 스케줄도 맞추기 힘들자 ‘노예’가 필요했던 것이다. 민씨는 이 여성과 제주도 여행을 갔었다고 한다. 비용 일체는 역시 여성의 몫. 민씨는 여행 중 노예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고 밝혔다.

민씨가 가장 수행하기 힘들었던 노예로서의 본분은 바로 ‘술친구’였다고 털어놨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았던 민씨에게는 돈을 받고 술친구가 되어 주는 일이 가장 힘든 고역이었다고 했다. 술좌석에서 그녀 대신 술을 마셔 주기도 했고 밤이든 새벽이든 원할 때는 언제든지 나가서 술상대가 되어 줬어야 했다. 물론 시간대에 따라서 지급되는 시급은 차이가 있었다. 1만~2만원 정도 올라가는 재미에 그 또한 견딜만 했다. 민씨를 통해 그밖에 ‘노예족’들의 업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노예족들은 앞에서 말한 내용 외에도 부모 없는 어린 아이들의 부모 역할이나 외로운 사람들의 말벗, 늦은 결혼으로 인해 다 떠나 버린 친구의 빈자리를 채워 주는 하객 도우미 역할 등 다양한 일들로 용돈을 벌고 있다”며 ‘자신들의 세계’를 소개했다.

성매매는 금지 항목이다?

이들 세계에서도 금지 항목은 있다. 몇 가지 금기시 하고 있는 것 중 눈에 띄는 항목은 성매매 금지 항목이었다. 하지만 이 항목이 ‘과연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에 질문을 던져 봤다. 이에 대해 민씨는 “물론 금지 사항이다. 명목상 ‘신종 아르바이트’ 이기 때문에 주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애인’역할, ‘술친구’역할, 하물며 ‘여행 파트너’역할을 돈 받고 하는데 발전(?)가능성을 배제한다는 게 말이 되나. 암암리 거래는 이뤄지고 있는 걸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 ‘도우미’에도 등급이 있다. 물론 시간당 사례비는 본인이 결정해서 게시한다. 그러나 그 사례비에 대한 판단은 고객(노예 사용자)이 한다. 소위 말하는 ‘킹카’급은 좀 더 비싼 값에 픽업되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일감(?)이 적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노예시켜 안마 받아봤다”

20대 여성 “애인 용도로 고용도”우연히 ‘노예’를 사 봤다는 최지영(29·가명)씨의 얘기를 들어 봤다.
- 어떻게 ‘노예’를 사게 됐나. ▲인터넷을 통해 프로필을 보고 호기심에 연락했고, 사게 됐다.

-어떤 용도였나.▲애인용도였다. 가끔 외로울 때 연애도 하고 커플 모임에도 함께 갔다. 특히 혼자 가기 힘든 결혼식이나 각종 잔치에 동반자로 이용했다.진짜 애인이라면 눈치도 봐야 하고 챙겨야 할 것도 많지만 난 주인이기 때문에 돈만큼만 하면 됐다.

-‘노예’와 있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에피소드랄 것은 없고 얼마 전 ‘안마’를 받았던 게 기억 난다. 몸살기가 있었는데 힘 좋은 남자가 안마를 해주니 엄청 시원하더라(웃음).

-사용 가격에 대한 불만은 없었나.▲괜찮은 사람들은 사실 높은 가격을 부른다. 그러나 그만큼 값어치(?)가 있다. 좀 친해지면 할인도 되고 ‘공짜’로 서비스되는 것도 생긴다.어떻게 보면 ‘외롭고 힘든 사람’들끼리 하는 사업이 아닌가 싶어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김현진  kideye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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