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 합격한 800여 명 예고 없이 연기된 시험에 ‘대혼란’
“하루아침에 미래가 없어져 버렸다” 대학 학과생들 허탈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세월호 참사에서 구조 인원 ‘0명’을 기록하며 무능함을 드러냈던 해양경찰청이 결국 ‘해체’라는 철퇴를 맞게 됐다. 사고 당일 “살려달라”며 최초로 신고한 단원고 학생에게 위도와 경도를 묻고, 배가 가라앉는 순간에도 안내 방송 없이 밖에 나와 있던 승객들만 구했던 해경의 해체는 어쩌면 예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갑작스런 해체 통보에 해경채용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들은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실기시험을 하루 앞두고 해체가 발표되면서 시험이 무기한 연기됐기 때문이다. 2일 만에 시험 일정이 재통보됐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해경이 못한 게 뭐가 있느냐. 80명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
세월호 참사 구조 과정에서 무능을 그대로 보여준 해경 간부의 말이다. 해당 간부는 이 발언으로 논란이 일어 결국 직위해제 됐지만 현 해경의 상태를 보여준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구조 인원 ‘0명’과 함께 초동대처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을 불러 일으켰던 해경은 결국 해체라는 불명예 퇴장을 앞두고 있다.
실망을 넘어 분노로 해양경찰청의 무책임
지난 4월16일 오전 8시52분. 세월호에 타고 있던 단원고 학생 최모군이 119로 침몰 사실을 신고했다. 전화를 연결 받은 해경 담당자는 이 학생에게 “GPS경위가 안 나오느냐”며 연신 경도와 위도를 물었다.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까운 시간만 날린 것이다.
모두가 지켜본 초기 구조 작업은 엉망이었다. 9시30분 목포해경소속 123경비정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배 안으로는 진입하지 못하고 밖에 있던 승객과 승무원만 구조 한 채 돌아갔다. 당시 해경은 “세월호로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어서 해상에 투신한 승객 위주로 구조했다”고 변명했다.
또한 배가 완전히 침몰한 후 생존자 구조를 위한 잠수사 투입은 너무 늦었다. 사고 당일에는 잠수부 16명만 투입됐으며 다음날인 17일에서야 겨우 가이드라인이 설치됐다. 뿐만 아니라 민간업체 ‘언딘’ 잠수사들이 우선 들어가야 한다며 해난구조대(SSU)와 특수전전단(UDT)을 대기시켰다.
생존자를 구할 수 있었던 소중한 ‘골든타임’이 헛되이 흘러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경 간부는 초기 대응이 미진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80명 구했으면 대단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했다.
이렇듯 무능함을 내보여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해경의 ‘징계’는 예상됐던 바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 전까지 누구도 해경을 해체할 것이라 예상치 못했다.
“자고 일어나니 내 꿈이 산산조각”
“하루아침에 미래가 없어졌다.”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해경의 잘못과 책임을 물어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소식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해경 지도부가 아닌 수험생들이다. 해경 합격만을 목표로 공부하던 수험생들은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미래’가 없어졌다며 허탈해했다. 특히 해경 해체가 실기시험을 하루 앞두고 나온 발표여서 혼란은 더욱 커졌다.
앞서 해경은 해양경찰공무원 채용 일정에 따라 지난 2월 신입 경찰관 335명을 뽑기 위해 원서 접수를 받았다. 지원자는 3135명으로 경쟁률은 무려 9대1을 기록했다. 3월22일 필기시험을 통해 800여 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이들은 20일에 진행될 2차 실기시험과 면접, 적성검사를 앞두고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해경 해체 발표와 함께 시험이 무기한 연기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해경은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에 따라 2014년도 제1회 해양경찰공무원 채용시험 일정은 향후 정부 조직개편 확정시까지 연기한다”고 밝혔다. 실기시험을 앞둔 수험생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해경합격을 목표로 수년째 공부중인 다른 수험생들도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논란이 일자 해경 측은 2일 만에 시험일정을 재공고했지만 혼란은 그치지 않았다.
수험생 생활을 3년 동안 했다는 김모(28)씨는 “해경은 일반 경찰과 시험 과목이 다르기 때문에 쉽게 다른 분야로 전환할 수 없다”며 “이번 채용이 예정대로 실시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는 만큼 불안해하는 수험생들이 많다. 공부를 계속해야할지,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제 1년차 수험생에 접어들었다는 이모(25)씨는 “해경 해체 발표를 듣고 한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해경 해체를 하루아침에 발표할 수는 없다”며 “이번 문제는 정부 관료 문화의 잘못이지 해경만의 잘못이 아니다. 수많은 수험생은 정책 결정 시 전혀 고려 대상이 안 되는 것인지 답답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원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해경 학원 관계자는 “발표 이후 수험생들이 우왕좌왕 하고 있다”며 “우리도 제대로 알지 못해 조언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관계자는 “자고 일어났더니 꿈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우는 학생이 있었지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며 “하반기 채용에 대한 확신이 없다며 학원을 떠나는 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경찰 채용 준비에 들어간 수험생도 있었다. 윤모(26)씨는 “수험생을 위한 대책은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경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 주변에 많다”고 전했다.
“전과를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
해양경찰 관련 학과 학생들 역시 당혹감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오직 해경만을 목표로 대학도 관련 학과로 진학했는데 이제는 “학과 이름을 변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해양경찰학과 학생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전과를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학년 김모(21)씨는 “오직 해경 공채만을 바라보고 대학에 진학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꿈이 사라졌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부모님한테 전화가 왔는데 할 말이 없었다. 해경이 될 수 없다면 해양경찰학과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한탄했다. 4학년 손모(25)씨는 “아무리 사고 수습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해도 이렇게 성급하게 해체를 결정할 수는 없다”며 “완벽한 조직은 없다. 부족한 점은 채우고 잘못한 점은 고쳐나가며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해경한테만 가혹한 처사를 내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해경 해체이후의 방향에 대해 정확히 제시해야 하는데 이런식의 발표는 사람들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해경 해체 발표로 인한 혼란은 대학 측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에 해경 관련 학과가 있는 곳은 경상대, 군산대, 목포해양대, 부경대, 전남대, 제주대, 한국해양대, 강원도립대, 조선이공대 등 9곳이다. 해경이 해체된다면 해당 학과 역시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우리도 갑작스럽다”며 “현재 내부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해경이 해체되는 이상 학과 이름을 그대로 가져갈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아마 이름이 바뀔 것이다. 학과 존폐여부나 정원 등은 앞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과 교수 역시 같은 반응이다. A교수는 “해경에 대한 대대적인 쇄신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조직 해체가 발표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도 모두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경만을 바라본 학생들과 교수들이다 보니 쉽게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라며 “해경의 기능이 경찰청과 국가안전처로 분산된다고 하지만 학생들에게 경찰 시험을 준비하라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수험생들과 관련 학과 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은 다름 아닌 “수험생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해경이 해체된다고 해도 역할을 경찰과 국가안전처에서 분산하는 만큼 채용에 있어서 순차적으로 변화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채용인원을 조정할 수는 있어도 예정대로 올 하반기 채용을 진행하고, 채용 방식에 대한 변화도 수험생들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수험생 위한 대책 필요하다
수험생 이모(28)씨는 “해경은 일반 경찰이나 공무원과는 다르다”며 “바다 위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이뤄지는 업무이기 때문에 해체 된 이후 일반 경찰시험이나 공무원 시험과는 별도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번 해체 발표에 가장 손해를 입는 것은 바로 수험생일 것”이라며 “수많은 수험생들을 위해서라도 채용 방식은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수험생 한모(25)씨도 같은 입장이다. 한씨는 “역할이 분산 되어도 한동안 채용방식은 그대로 가야 한다”며 “해경 업무만을 위해 몇 년 동안 공부해온 수험생들을 국가가 모른 척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정부는 하루빨리 해경 해체 후속 방안을 발표해 혼란을 없애야 한다”며 “또 올 하반기 채용도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해경 관련 학과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해경학과 특채를 당분간 유지해야 한다”고 외쳤다. 해경학과 1학년 손모(20)씨는 “해경이 되기 위해 대학을 진학했다”며 “정부가 해경학과 학생들을 외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해경학과 특채는 현 1학년이 졸업 후 시험을 응시할 때까지는 유지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는다면 많은 학생들이 백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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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