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결 기준이 무엇인가, “평등이라는 절대적 규칙 무너졌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노역 일당을 5억 원으로 결정한 판결에 대한 비판이 각계각층에서 폭발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어떠한 법조항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판결을 내린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에게도 화살이 쏠렸다.
지난 23일, 광주지검에 따르면 400억 원대 벌금과 세금을 미납하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던 허 전 회장은 하루 전인 22일 오후 6시께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검찰은 입국과 동시에 허 대주그룹 전 회장을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유치했다.
재판부는 ‘벌금은 판결확정일로부터 30일 안에 내야하고 벌금 미납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 노역장에 유치해 작업할 수 있다’는 형법에 따라 허 회장에게 벌금을 내지 않을 시 1일 노역의 대가로 5억 원을 산정했다. 재판부는 벌금을 선고하면서 환형유치 환산금액을 정한다. 따라서 만약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1일 노역 대가를 돈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할 수 있다.
문제는 허 전 회장에게 매겨진 하루 노역비 5억 원이 매우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허 전 회장의 5억 원은 일반인의 노역비와 비교하면 거의 1만 배에 가까운 액수다. 즉, 어떠한 기준으로도 재판부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허 전 회장의 나이가 고령임을 감안하면 이번 노역이 중노동이라기보다는 시간 채우기 수준에 불과할 것이란 지적이다.
결과적으로만 봤을 때 허 전 회장은 영장 실질심사 중 구금된 1일을 제외하고 49일 노역장으로 벌금 249억 원을 탕감 받을 수 있다.
절대 이해할 수 없어
때문에 각계각층에선 비난의 날을 세우고 있다. 법조계를 비롯해 정치권에서도 이번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우선 김상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이 ‘일당 5억 노역’ 판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김 부지부장은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허재호 전 회장에게 과도하게 책정된 노역 일당 5억 판결은 자의적인 차별”이라며 “일반인의 경우 노역장 유치 환산금액이 1일 5만 원으로 책정되는데, 허 전 회장의 일당은 일반인보다 만 배가 넘는 금액”이라고 비판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위철환) 역시 허 전 회장이 노역을 통해 매일 5억 원씩 벌금을 공제받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고 있다. 변호사협회는 24일 성명을 내고 “허 전 회장은 고작 50일만 노역장에서 지내면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이번 사건의 양형과 형 집행에 통탄한다. 노역장 유치 제도 자체를 개선하는 동시에 향판(지역법관)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은 끊이지 않았는데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한마디로 황당 무계한 판결”이라고 강하게 꼬집었다.
그는 또 “국민 눈높이에 동떨어진 이런 판결이 특혜 논란을 일으키고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를 추락시킨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며 “노역장 제도와 지역법관, 이른바 향판제도 등 국민의 상식을 벗어난 법적, 제도적 장치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판결을 내린 장병우 광주지법원장 역시 뭇매를 맞고 있다. 과거 천민자본주의적 판결을 내린 적 있다는 주장도 나와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법 앞의 평등이라는 절대적 준칙을 깨트렸다”며 “장 광주지법원장은 광주고법 부장판사 시절 지역 내 대형마트가 포화상태임에도 대형마트 입점이 정당하다는 논리를 주장한 바 있다. 천민자본주의적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향후 관심사는 어디로
이처럼 비난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가운데 허 전 회장에 대한 압류 절차 진행 여부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국세청은 허 전 회장의 부동산을 가압류하고도 3년 넘게 공매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졌고, 검찰은 허 대주그룹 전 회장의 국세 136억 원, 지방세 24억 원, 금융 빚 233억 원의 강제 집행과 압류절차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현재 기존에 접수된 공사비 체불 등 고소 사건 수사와 더불어 국내 재산 은닉, 뉴질랜드 체류(영주권 취득) 과정의 적법성, 해외로 재산 빼돌리기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허 전 회장은 수억 원대의 벌금과 세금을 내지 않고 해외에 도피해 있던 중 뉴질랜드에서 카지노 VIP룸을 드나드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에 입국한 직후 여권이 만료돼 국외여행을 할 수 없어 오클랜드 총영사관에서 임시여권을 발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회장은 2010년 횡령 및 탈세 등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던 도중 뉴질랜드로 도피했다. 그리고 이듬해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 254억 원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2008년 12월 허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 원을 선고했다.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1일 2억5000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결정했다. 당시 기준으로 허 전 회장은 203일만 노역하면 벌금을 탕감 받을 수 있었다.
이후 2010년 1월 광주고법 제1형사부는 지난 2010년 1월 허 전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으로 형을 줄였다. 노역장 유치 환산금액은 5억 원으로 두 배 늘렸다.
당시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조세포탈과 관련해 허 전 회장이 자수했다는 점을 들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