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은행인 하나금융과 1000억 두고 1년째 기싸움
유효 소송 포기하고 형식적 청구만 일삼은 이유는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신임 총재 내정자의 청문회를 앞둔 한국은행의 기대감이 감지되는 가운데 앞서 한은이 매각한 외환은행 주식가격이 다시금 구설수에 올랐다. 그간 한은은 외환은행 주식교환 및 가격 결정에 대해 그야말로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여 왔다. 1년 전인 지난해 3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은은 “낮게 결정된 외환은행 주식가격이 억울하긴 하지만 일을 확대할 생각은 없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해 논란에 휘말렸다.
애초 한은이 보유한 외환은행 주식을 하나금융 주식으로 교환해 보유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은행법 제103조 때문이다. 한은법 제103조에서는 한은의 영리행위 및 영리기업의 주식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외환은행은 한은에서 분리된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적용이 제외됐다. 외환은행법 폐지법률 제8조에는 1989년 외환은행이 회사로 전환되면서 한은이 소유한 외환은행 주식에 대해서는 한은법 제103조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즉 한은이 외환은행을 제외한 타 기업의 주식을 갖게 되면 한은법에 어긋난다는 의미다. 하나금융 주식 역시 외환은행 주식처럼 예외로 쳐주지 않는 범주다. 때문에 한은은 부득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보유주식을 매각해야만 했다.
한은법상 타 기업 주식 보유 못 해
문제는 장부상 가격차이만 해도 1000억 원이 넘게 벌어졌다는 점이다. 한은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받게 되는 해당 주식가격은 2916억 원이다. 앞서 한은이 주식을 취득한 1967년부터 매각한 지난해까지의 취득원가는 3950억 원이다. 이를 적용하면 단순 수치상으로만 1034억 원의 갭이 생기게 된다.
주당 평균 매입가로 계산해도 취득가는 1만 원이지만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은 주당 7383원으로 26~27%가량 절하돼 있다. 이는 하나금융이 당시 시가를 기준으로 책정한 주식 가격인데 1주당 교환산정 가격은 7330원,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은 7383원이었다.
한은 측은 그동안의 배당수익 누적액이 3061억 원이므로 총 회수금액으로 따지면 손해가 아닌 이득이라고 주장했다. 또 매각지침에 취득원가와 매각비용 등을 고려할 때 ‘적정한 가격’에 매각하도록 명시돼 있지만 이것이 ‘특정가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궁색한 변도 내놨다.
게다가 당시 한은은 1000억 원 정도의 손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흑자가 예상된다며 논란을 덮으려 했다. 한은이 보유한 외환은행 지분이 총 6.1%로 3950만주에 달하는 2대주주인 것을 고려하면 다소 무책임한 태도다.
당연히 외부의 시각은 달랐다. 외환은행 소액주주들과 시민연대들은 한은이 주식교환 무효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며 압박했다. 이에 한은은 법원 대신 금융위에 매수청구권 가격조정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은은 지난해 9월에야 외환은행 주식교환 과정에서 제시된 매수가격이 적당한지 판단해달라는 내용의 주식매수가격 결정 청구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결정 청구는 단순히 가격상향 조정을 원하는 것으로 주식교환 무효소송과는 다른 것이다.
소 제기는 포기 청구마저 기각
참여연대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주식매수가격 결정 청구를 제기한 것은 포괄적 주식교환 자체의 무효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 돈 몇 푼 더 달라는 요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하나금융이 한국은행에 적용한 주식매수 가격이 적정치 않다는 것은 다른 소수 주주들에게도 이 가격을 적용했다는 것”이라며 “결국 문제가 된 주식교환은 공정한 교환이 아니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은의 외환은행 주식매각 금액이 론스타가 매각한 1주당 1만1900원(배당금 포함 1만4260원)보다 훨씬 낮은 것에 주목했다. 게다가 외환은행 주식 1%를 보유하고 있던 일성신약도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데 6.12%를 보유한 2대주주인 한은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추궁했다.
이와 관련해 한은은 같은 해 10월 “주식교환 무효소송은 제기하지 않기로 했으며 대신 법원에 신청한 주식매수가격 결정 청구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소액주주들의 바람을 무산시킨 바 있다.
실제로 주식교환 무효소송과 함께 주식매수가격 결정 청구를 병행하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한은 내부에서는 법리적 사항과 소송의 득실을 따져보니 면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효소송을 지레 포기한 셈이다.
결국 지난달 한은의 주식매수가격 결정 청구는 기각됐고 한은은 항고를 제기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될 것이라는 의견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주식교환 무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한도 만료된 상태다.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주식교환 무효소송을 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이 아직까지 잔존한다. 그러나 한은 측은 승소 가능성이 적을 뿐 아니라 소송 진행 시 득보다 실이 크다는 계산 때문에 마음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주식교환 무효소송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서 행한 주식매수가격 결정 청구 항고 외에는 남은 법리적 대응 방법이 없다”면서 “새 수장을 맞이하는 한은이 이 문제에 대한 비난을 면하기 위해 계속 항의 코스프레를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