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부분에 더 흥분한다”
“감춰진 부분에 더 흥분한다”
  • 서준 프리랜서 
  • 입력 2007-08-29 14:00
  • 승인 2007.08.29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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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2007 대한민국 패티쉬즘 보고서

찰칵찰칵. 요즘 어딜 가든 온통 디지털카메라(디카) 찍느라 난리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도 찰칵, 테이블 위에 놓인 카푸치노 한 잔에 도 찰칵. 자동차 찍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거리에서도 먼 산이나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눌러댄다. 전문가들의 특권이었던 사진은 이제 만인이 누릴 수 있는 공통 영역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는 이들의 심리 중심에는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추억하고자 하는 욕구와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과시욕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일반인들과는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셔터를 누르는 이들이 있어 얘기해보고자 한다. 남몰래 훔쳐보듯 셔터를 누르는 ‘패티쉬마니아’들의 이야기다.


패티쉬즘의 사전적 의미는 이성의 특정 부위 혹은 물건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성적인 흥분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성욕 도착으로 불리는 이들은 ‘변태’ 또는 ‘정신병자’로 불리며 매도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그들은 평범함을 벗어난 평균 이하의 사람들일까. 기자의 생각도 일반적인 생각과 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본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으며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멀쩡해서 충격이었다고 할까. 적어도 2시간 남짓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패티쉬즘 관련 비밀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패티쉬즘은 남자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겪는 홍역 같은 것이라 말한다.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패티쉬즘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엄마한테 느꼈던 포근한 느낌을 이성에 눈이 뜨면서 갈구하기 시작한다고 할까요. 저희 어릴 적엔 이웃집 마당에 걸린 속옷 훔쳐다가 자위를 하는 애들도 많았죠. 최초 욕구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 거죠.”

패티쉬즘은 성장과정별로 아주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한다. 3~4세 즈음 자신의 성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머니를 사랑의 대상으로 느끼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는 무의식 속으로 꼭꼭 밀어넣지만 사춘기에 이성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때의 기억과 감촉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패티쉬즘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감정이므로 내색하지 않지만, 여자 없이 남자들만 모이는 군대에서 다시 패티쉬즘에 탐닉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묘미는 ‘훔쳐보기’

“사람마다 느끼는 부위는 다릅니다. 시작은 가슴이지만 여자를 알면서 특정부위로 옮겨가 마니아 양상을 띠게 되죠.”

A씨가 탐닉하는 부위는 가슴. 좋아하는 가슴의 모양을 손짓으로 표현하며 자세하게 묘사하는 모양새가 업계의 전문가다웠다. 그는 여자보다 여자의 몸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패티쉬즘 동호회 회원들의 취향도 각양각색이다. 가슴이 제일 많지만 다리, 엉덩이, 목덜미, 발뒤꿈치, 발가락, 스타킹 신은 다리 등 부위도 취향도 다양하
다. 심지어는 여성의 긴 생머리라든가,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기 내 다리 좀 봐 주세요’라며 그들에게 다가오는 여자는 없겠지만, 만약 있다 해도 직접 드러내놓고 보는 것은 그들의 취향에 맞지 않아요. 패티쉬즘의 묘미는 바로 몰래 훔쳐보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패티쉬즘은 관음증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훔쳐보는 것이 더 자극적입니다. 다 드러낸 것보다 감춰진 부분에 더 흥분하고 쾌감을 느끼는 것이죠. 직접적으로 성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망사스타킹, 망사팬티 그런 부분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요. 감춰진 것을 보고 상상 하는 것에 더 큰 즐거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 스타일의 포르노가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들은 여성의 한 부위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나름의 스토리를 짠다. 그리고 자신을 흥분의 상태로 몰아간다. 여성의 다리에 집착하는 이들은 다리를 보고, 짧은 치마도 입혀보고, 치마를 들춰 손 한번 집어넣어 만지는 등의 상상을 하며 자위를 하기도 한다.

어릴 적 집에 놀러온 어머니 친구의 스타킹을 보고 스타킹에 탐닉하게 된 어떤 사람은 여자 중학교나 여자 고등학교에 밤에 몰래 들어가 화장실을 뒤져 스타킹을 훔쳐오기도 한다고. 패티쉬즘이나 관음증은 이처럼 어린 시절에 우연히 성적인 흥분을 불러일으켰던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려는 충동이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패티쉬즘 공유화 추세

그들만의 몰래 훔쳐보기는 2000년대 초반 디카가 보급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길거리에서 사진찍는 것, 그리고 인터넷 상에 공유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패티쉬 사진이 인터넷 공간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A씨가 운영하는 곳과 같은 패티쉬 관련 동호회도 생겨났다.

“처음에는 다섯 명 정도 아는 사람끼리 만든 친목 도모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취향을 가진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합류하면서 회원수가 조금씩 늘어났죠. 지금은 25명 정도 됩니다. 저희 클럽은 서로 자신이 찍은 패티쉬 사진을 올리고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사진이 유출되면 곤란한 점이 많아서
철저하게 비밀클럽으로 운영 중이죠.”

일반적으로 감추고 싶어하는 욕구를 드러내놓고 공유하는 만큼 회원 간의 관계는 여느 다른 인터넷 동호회보다 끈끈한 편이다. 일반적인 사진 동호회처럼 그들도 출사를 나간다. 소위 물 좋다는 거리에 나가 자신이 원하는 여성의 신체 부위를 향해 셔터를 누른다.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건질 수 있는 자신만의 보물 공간도 따로 갖고 있다.

“모델을 구해서 자신의 원하는 부위만 골라 찍을 수도 있겠지만, 몰래 찍는 것만큼 짜릿한 것도 없습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잡지 촬영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우리가 단체로 나가서 사진기 들이대고 있으면 “왜 우린 안 찍지?” 하며 섭섭해하며 지나가는 여자도 많습니다. 어떤 여자들은 사진 찍히는 것을 즐기는 거죠. 자동차 박람회에서 레이싱걸들도 많이 찍곤 합니다.”

그들도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동호회에 가입했다가 그들의 ‘변태놀음’에 환멸을 느끼고 탈퇴한 회원도 있다고. 그러나 그도 한때는 자신의 여자친구의 사진을 올리며 활발히 활동했던 장본인.

A씨는 수준급의 사진기술을 활용해 ‘건전한’ 인물을 찍는 것으로 관심을 돌려보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인물 사진 잘 찍기로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인물. 그런 그도 패티쉬즘은 인간이 가진 몇 가지 본능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한다. 도벽, 식욕, 성취욕, 성욕처럼 생물학적인 인간인 이상 어
찌할 수 없는 본능임을 절감한다고 했다. 그들이 남들과 나른 점이 있다면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는 점.

A씨의 아내와 두 딸도 그가 인물사진 찍는 취미를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쪽 계통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그는 중고등학생인 두 딸을 생각해 미성년자는 찍지 않는다는 나름의 룰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제 아무리 골라 찍는다 해도 찍히는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몸의 일부분이 자기도 모르게 찍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쓰였다는 사실에 대해 광분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 이에 대해 A씨는 이렇게 반문한다.

“패티쉬즘은 남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들도 원빈 같은 꽃미남 얼굴 보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잖아요. 이정재나 송승헌의 근육질 몸매에 열광하고요. 땀에 젖은 남자의 몸을 보면서 섹시하다고 느끼는 것, 제 생각엔 그것도 일종의 패티쉬즘이라 생각합니다.”

A씨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그들의 취향은 여고생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바바리맨’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실제로 그의 동호회 회원 대부분은 정상적으로 여자 친구도 사귀고, 결혼생활도 유지하며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를 변태나 미친놈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패티쉬즘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본능이라 생각합니다. 각자 아닌 척하고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프로이트는 남자가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극복한 후에야 비로소 성인(成人)의 정상적인 성애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상적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이 콤플렉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패티쉬즘은 본능에 충실한 행동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들의 취향이 아직은 도덕적인 잣대에 의해 지탄받는 현 상황에서 그들은 비정상과 정상, 변태와 취미의 사이를 아찔하
게 오가고 있다.

서준 프리랜서  www.heyman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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