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신야권연대가 출범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지난 8일 “지난 대선 관련 사건에 대해서 더 이상 검찰을 신뢰할 수 없다”며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제안한 특검을 전격 수용했다. 이에 앞서 안 의원은 지난 4일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과 수사를 여야에 제안했다. 이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 때 야권연대가 성사되는 것 아니냐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안철수 측에서는 “‘신야권연대’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에선 겉으론 선을 긋고 있지만 내심 ‘야권연대 물꼬를 텄다’는 반응이다. 반면, 새누리당 진영에서는 ‘신야권연대’에 대한 비난과 함께 일부에선 반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안 의원을 민주당 틀 안에 옭아맬 찬스라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민주당 내에서도 ‘신야권연대’에 대한 불안 심리가 가중되고 있다. 이른바 ‘신야권연대 독약론’이 당내에 팽배한 상황이다. 그 내막을 살펴봤다.
- 세력확장 민주당, 대표성은 안철수…존재감 부각
- “민주당 안에 安을 넣어라”…새누리당 집토끼 단속

일단 민주당은 선을 긋고 있다. 민주당 최원식 전략기획위원장은 “야권이 모여 같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연석회의는) 보수·진보를 넘어선 전국민적 틀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신야권연대 프레임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국한해 보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안 의원과 연대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안도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대선 개입 사건뿐만 아니라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안 의원과 민주당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서로 힘을 합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라도 물꼬를 텄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호남지역에서는 경쟁이 불가피하더라도 수도권과 영남지역에서는 선거연대가 필요하다”며 “야권연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안 의원 측과 민주당은 ‘패배 책임론’에서 무사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민주당 내에선 야권연대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찮다. 안 의원 측이 독자세력화를 통한 신당 창당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단일화 여부를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신야권연대를 통해 가장 많은 이득을 본 인사는 누구일까. 기자와 만난 새누리당·민주당 인사들은 하나같이 안 의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야권연대 부각지지층 이탈할 수도
안 의원은 국정원 등 국가기관 대선 개입에 대한 정황이 드러났을 당시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무소속 한계론과 함께 인재 영입에 난항을 겪으면서 ‘안철수 위기론’이 팽배했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 예산보이콧 등으로 반전의 기회를 노렸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때마침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가정보원 개혁 등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신야권연대를 이뤘지만 안 의원에게 민주당이 끌려다니게 됐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당직자는 “지난 대선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안 의원과 친노는 절대 융합할 수 없다. 야권연대를 하는 순간 친노에서 반발할 것”이라며 “때문에 안 의원이 제안한 특검을 받으면서 안 의원의 존재감만 부각시켜 준 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신야권연대로 인해 세력 확장은 민주당, 대표성은 안 의원이 갖게 됐다. 이것이 민주당의 현 주소”라며 “안 의원이 사안별로 연대를 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민주당이 안 의원에게 끌려 다니는 꼴이다. 한마디로 민주당이 힘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겉으로는 대여투쟁 강화 차원으로 볼 수 있지만 민주당 지지층의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한 것”이라며 “민주당 지지 세력은 안 의원과 정의당이 끼는 것을 싫어한다. 집토끼조차 놓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선거 때 야권연대를 할 경우 내부 지지층 결집이 약화될 뿐 아니라 이탈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민주당 내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안 의원이 ‘미래대통령을 요구한 것’이 사실이고, 민주당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에 당혹했던 만큼 안 의원의 새정치도 낡은 정치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는 당내 인사들이 적잖다. 그 때문에 안 의원에게 손 내미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갈수록 강한 상태에서 안 의원의 특검을 받은 것에 대한 불만이 만만치 않다.
반면 안철수 의원을 야권연대 틀에 갇히게 했다는 자평도 나오고 있다. 특검과 예산안을 연계함에 따라 안 의원을 야권 연대 프레임에 옭아맸기 때문이다.신야권연대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 안 의원 측에서는 ‘신야권연대 프레임’에서 벗어나겠다는 입장이다. 독자적인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 의원 측근인 금태섭 변호사는 “민주당이나 저희나 정의당이나 다 선거하고는 관계없이 특검에 관계돼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다. 이렇게 분명히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방선거 얘기를 얘기하시는 건 좀 잘못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범야권 연대라고는 하지만 민주당이나 정의당이나 각각 다른 정당이고 이 문제 때문에 지금 서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못하고 있지 않느냐”면서 “워낙 이것이 중대하기 때문에 해결방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다. 선거나 그 밖의 일과 관계없는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안 의원이 ‘국가정보원과 군 등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진상 규명과 민주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연석회의(연석회의)’에서 제안한 ‘특별검사 도입 논의를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에 불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도를 기반으로 여야 지지층을 폭넓게 아울러야 하는 안 의원의 입장에서는 ‘범야권’으로 묶이는 것이 정치적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안 의원은 주도권을 잡고 민주당을 흔들었다. 반면 민주당도 안 의원을 야권연대 틀 안에 갇히게 했다. 즉 ‘먹는냐, 먹히느냐’의 싸움이 시작된 셈이다.
여, “안철수 새정치 없다”민주당+안철수=야권
새누리당에서도 ‘신야권연대 프레임’을 통해 민주당은 물론 안 의원까지 옭아맬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야권단일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새누리당으로서는 안 의원을 민주당 틀 안에 가둘 수 있다. 이럴 경우 신야권연대는 야권으로 한정될 뿐 아니라 안철수 신당에 관심을 보였던 여권 인사들도 넘어갈 수 있는 명분이 줄어들고 여야 중도세력을 아우르려는 안철수 신당도 힘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지난 대선에서 안 의원이 대선 후보로 나왔다면 여권 일부에서 안 의원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정치세력이 생길 수 있는 구도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안 의원을 신야권연대 프레임에 가두면 야권으로 한정될 뿐 아니라 ‘집토끼’도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야합연대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특히 야권연대 효과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야권연대는 지난 총선과 유사한 형태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 때문에 사전에 야권연대에 대한 바람을 차단해 연대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민주당의 포지션이 줄어들 것”이라며 “안 의원의 새정치도 퇴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방선거에서 야권 단일화는 불가피하다. 안 의원 측은 호남과 수도권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라며 “안 의원의 양보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된 만큼 박 시장을 끌어내릴 명분이 없다. 따라서 안 의원은 경기도지사를 요구하는 등 민주당과의 단일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럴 경우 새누리당이 지방선거에서 고전할 수도 있다. 때문에 안철수 새정치의 현주소라는 점을 부각시켜 야권연대 효과를 최소화하거나 새누리당-민주당-안철수 등 3자구도를 형성해 민주당-안철수 신당의 단일화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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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