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사고 피해액 수 조원…임원 성과급 논란 불거져
1직급 직원 145명 전원 사표, 그러나 사표수리는 0명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공기업(公企業).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투자해 소유권을 갖거나 통제권을 행사하는 기업을 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첫 번째 의무로서 공익성을 요구받고, 두 번째로 관료주의와 비능률을 회피해야 한다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막상 공기업들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공공의 목적을 잊은 채 방만경영 일로를 걷는 모습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일각에서는 ‘공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공기업을 찾는 것이 오히려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이와 같은 현실에 [일요서울]은 각 공기업이 어떻게 공익을 해치고 있는지 그 천태만상을 보도하기로 결정했다. 그 다섯번째 대상은 비리백화점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사장 조석·이하 한수원)이다.

한수원 비리가 점입가경이다. 양파 껍질 벗기듯 하루가 멀다 하고 비리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잦은 원전 고장과 납품비리에 이어 시험성적 위조까지 총체적인 문제가 지적됐다. 특히 에너지 정책으로 ‘창조경제’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려는 박근혜 정부에 찬물을 끼얹는 대표적 사례로 주목됐다.
정수성 새누리당 의원은 한수원 비리와 관련해 “건국 이래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대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 의원은 “시험성적서 파문과 고장 등으로 멈춰선 원전 탓에 수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했다”며 국감에 출석한 조석 사장에게 “국민을 바라볼 면목이 있나”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홍지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 역시 “국민들의 배신감과 분노가 매우 크다. 책임을 묻는 데 관용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한수원 조석 사장은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비난했다.
이는 한수원 비리로 발생한 모든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기 때문에 의원들이 열을 낸 것이다. 실제로도 원전 고장에 따른 대체전력 구입 비용은 한전의 적자폭을 키워 결국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되고 말았다. 올해에만 9656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반면 한수원의 임직원들은 평균 1380만 원의 성과급 잔치를 벌여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해 한수원 직원 평균 연봉은 7900만 원. 기관장 연봉은 2억 원에 달해 공공기관 295곳 중 상위 15% 이내에 든다. 반성하고 책임져도 모자랄 판에 한수원 임직원들이 성과급 찬치를 벌인 것이다.
안전 무시된 부품 사용
피해액 소비자에게 전가
한수원의 문제는 비단 국내뿐만이 아니다. 일본과의 무역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냈다.
최근 일본이 안전성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한국에 원자력발전소용 부품·기기를 수출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한수원이 2004년부터 일본에서 수입한 원전 부품·기기는 무려 9건, 금액은 699억2700만 원에 달한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재천 의원(민주당)이 국정감사 자료로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이 2004년 이후 일본 히티치, 도시바, 미쓰비시와 체결한 계약 건은 11건, 1306억7700만 원에 달했다. 이중 수력발전소용 부품을 뺀 원자력발전소용 부품 계약 규모는 9건이다.
마이니치신문의 보도 내용을 보면 일본이 지난해까지 10년간 한국 등에 수출한 원전용 부품기기 1248억 엔(약 1조3610억 원) 가운데 적어도 40%인 511억 엔어치에 대한 ‘안전 확인' 절차가 생략됐다. 안전 확인 절차가 일본무역보험의 수출보험을 이용할 때 시행하는 서류상의 간단한 심사지만 이마저도 생략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 의원실이 ▲인수검사 절차를 행한 주체가 어디인지 ▲국내에서 부품 수입 시 일본 업체가 ‘안전 확인’을 거쳤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지 ▲외관, 포장상태, 품질보증서류 확인, 기술검사 등을 수행했으며 수행 결과 문제가 없음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해 줄 것으로 요구했으나 한수원은 이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의혹을 더욱 키웠다.
최 의원은 “한수원이 일본산 부품에 대해 적절한 검증을 거쳤다면 이를 입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며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이들 부품이 안전 확인 절차를 거친 것이 맞는지, 어떤 방식으로 기술검증을 한 것인지 명확히 밝혀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수원은 국감에서 “인수검사 절차에 따라 외관, 포장상태, 품질보증서류 확인, 기술검사 등을 수행했다”고 답변했다.
한수원에서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다. 한수원은 지난 6월 13일께 원전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에 책임을 지겠다고 발표하면서 ‘자발적 쇄신대책’의 일환으로 1직급 직원 145명 전원의 사표를 제출받았다. 그러나 사표수리된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처음에는 ‘사장 공백’때문이라고 해명하더니 후에는 “진행 중이던 수사나 감사에서 책임이 드러날 경우 처리한다는 의미였다”고 말을 바꿨다.
비리를 저지른 직원들도 무겁게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이 역시도 흐지부지한 상태다. 지난 5년 동안 한수원 본사에서 13건, 지역본부에서 405건의 비리가 적발됐지만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본사 임원 5명(사장 제외)과 지역본부장 등 140명의 간부 중 단 한 사람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징계를 받은 직원들의 감경조치도 원칙 없이 진행되고 있어 방만 경영의 단적인 예로 꼽힌다. 2009년 이후 비리 혐의로 적발된 직원 204명중 48명(23.5%)이 최초 징계 수위보다 낮은 단계로 감경을 받았다. 또한 올해에는 계약업체로부터 500만 원을 수주한 직원을 해임한 반면, 지난해에 498만 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 수수, 금전대여와 상납까지 한 직원은 해임에서 정직으로 감경해줬다.
김동철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의원(민주당)은 “지금까지의 한수원은 책임질 줄도 모르고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는 조직”이라며 “이제 자정은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대폭적인 물갈이로 조직쇄신을 단행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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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