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우리 문화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개념에서 출발”
[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우리 문화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개념에서 출발”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3-09-02 10:39
  • 승인 2013.09.02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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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문화의 근원
 
자연 사랑이
우리 문화에 미친 영향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린 나무는 세찬 바람이 일어도 꿋꿋하게 견뎌내 꽃이 아름답고 열매를 맺으며 깊은 샘물은 가뭄이 심해도 항상 맑고 깨끗한 물이 넘쳐 흘러 내를 이루고 바다에 이른다. 세종임금께서 가르쳐 주신 자연의 진리요, 운행이다.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열매와 나무와 샘물과 샘은 우리의 문화이고 깊숙한 땅속은 우리 문화의 버팀목이고 땅 속의 온갖 영양소와 생명의 지하수는 우리의 전통 문화이다. 따라서 우리 문화가 발전하려면 전통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세계문화를 과감히 수용 섭렵해 비교 분석 연구하여 우리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색다른 영양소로 받아들여야 한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아니한다. 인간이 수수만년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연을 느끼고 보고 배우며 생활의 지혜를 터득했을 것이다. 자연의 무궁한 변화와 오묘한 운행을 경이롭고 신기하게 느끼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깨달아 가면서 자연과학을 배웠다. 한걸음 나아가 태양과 달과 별과 같은 자연의 불변하는 운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하고 생각을 거듭하게 됐다.
 
우리 인간이 보고 헤아릴 수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만 불변하면서 운행하고 있는 자연에는 무슨 부동의 진리(법, 원리)가 있고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더 깊고 오묘한 것을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아마 철학이라는 학문도 생겨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자연에서 터득한 지혜가 쌓이고 과학과 인문를 키워 나가면서 문화를 발전시켰지만 인문과 문화는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
 
지구상에서 같은 아시아의 동쪽에 위치한 나라 중에서도 우리의 자연은 높고 큰 산이나 대평원이나 큰 강이나 깊고 큰 호수 등이 없다. 사계의 변화가 뚜렷해 그 변화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지진, 해일, 화산폭발,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드물다. 지금 큰 나라와 비교하면 규모는 작지만 그 당시 우리만의 안목으로 보면 큰 산과 큰 물과 넓은 평야가 있고 거기서 우리의 기개를 한껏 펼칠 수 있었고 기기묘묘함이 있고 화사함과 담담함이 있는 우리 산하와 우리의 기후가 가장 아름답고 위대하고 평온하다고 생각해 왔다.
 
자연은 우리를 편안히 감싸 안았고 우리들은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해 왔다. 우리의 심성 속에는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생각해 왔으며 자연은 안온하고 무한한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으나 자연을 거스르면 큰 재앙이 올 수 있다는 신념이 있어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그 자연의 순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마음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상은 자연을 숭배하고 신격화해 자연 현상에 운명을 빌고 명복을 빌고 복을 빌고 제액을 빌게 됐다. 국가와 지방 군현에서도 나무와 바위와 산과 강과 바다에 제사 지내 안녕을 기원했고, 해님과 달님도 별님에게 향하는 마음도 같았다. 우리 어머님과 누님들은 달밤에 정안수를 떠 놓고 달님께 집안과 자식의 안녕과 무사안일과 입학을 빌었다. 자연숭배가 인문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지은 자연과 친숙한 집(한옥)의 삼신을 모시는 다락에도 부엌에도 부뚜막에도 우물에도 장독대에도 대문간에도 뒷간에도 신이 있어 제액과 안녕을 빌어 고사 지내면 으레 집안 곳곳에 고사떡을 올리고 절하고 축원했다. 삼국말기 이래로 성행한 지금도 일부 성행하는 풍수도참 사상도 자연존중과 숭배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 문화는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해 자연과 인간을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치해 하나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자연이 가장 아름다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배우며 그와 같은 아름다움을 인간이 받아들여 인문 속에 끌어들여 우리 생활 속에서 정신과 생활의 안정과 위안과 풍요를 누리려고 했다. 따라서 우리 미술문화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같은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계절의 변화 
우리 미술문화의 모태
 
사계의 변화가 뚜렷하고 계절마다 변하는 아름다움과 우리 산하와 구름과 비바람과 태양과 달님과 별님들의 운행에 따르는 대 장관이 우리 미술문화의 모태이다.
 
우리미술은 선사시대의 솔직, 소박 순수함에서 씨족이 부족이 되고 부족이 모여 각기 고대국가를 형성하면서 각기 자리 잡은 지역의 차이, 선주민 후주민의 차이, 그들이 먼저 경험했던 환경과 문화의 차이로 조금씩 다른 문화와 정신세계를 영위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삼국시대의 문화는 과도기적 문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해 세 나라의 국민과 문화가 하나가 되는 성숙된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문화적 충돌이 계속됐다. 삼국문화는 저 먼 북방문화와 북방문화에 대륙(중국의 북쪽)문화가 가미된 문화와 역시 북방문화에 대륙의 남쪽(중국의 남쪽)문화가 가미된 문화와 해양문화가 가미된 문화권이 공존하면서 교류하고 충돌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삼국시대에는 서로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자연환경과 어울리지 아니한 거대한 건축 토목사업도 있었고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과장되고 위엄에 넘치며 화려한 왕실의 공예문화도 있었으며 그간에 특히 중국의 남북방문화가 들어와 우리 미술문화 발전에도 크게 공헌했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사진=한국미술발전연구소>
 
정양모 교수는 누구?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우리나라 미술사학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원로학자다. 국내 도자기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정 전 관장은 1962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박물관과 도자기와 인연을 맺었다. 한국문화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힘쓴 그는 ‘한국미술 5000년 전’을 관리·기획해 미국 8개 도시, 일본 3개 도시, 영국, 독일 등에서 순회 전시회를 감독했다. 또 199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한국관이 설치될 당시 총감독을 맡았다. 정양모 교수는 현재 경기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양모 교수의 부친은 일제강점기의 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위당 정인보 선생이다. ‘민족의 얼’을 강조한 정인보 선생은 일제의 역사왜곡에 대항해 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평생을 보냈다.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정인보 선생은 연희전문학교, 중앙불교전문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 등에서 조선문학론과 한문, 국학 등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 얼을 환기시켰다. 아울러 ‘동아일보’와 ‘시대일보’의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주체적인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주력했다. 1946년 얼 사관에 입각해 한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조선사연구’를 편찬한 정인보 선생은 1948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요청으로 초대 감찰위원장을 지냈다. 정인보 선생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납북돼 그해 11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1990년 정인보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위패가 봉안돼 있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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