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원세훈 구속 두고 국조 증인출석 염두 뒀을 가능성 제기
“김용판 조사 하면 친박 핵심→청와대까지 파고 들 수 있다”
[일요서울ㅣ최은서 기자]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법무부 기관보고를 시작으로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 국조특위는 법무부를 시작으로 경찰청, 국정원 순으로 기관보고를 받는다. 관련 보고를 위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남재준 국정원장, 이성한 경찰청장을 기관 증인으로 채택했다. 국정조사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건설업자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야권 일부에서는 “원 전 원장에 대한 국정원 국조를 막기 위해 검찰이 선수 친 것”이라는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검찰이 국정원 국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미리 손 쓴 것이라는 해석이다. 원 전 원장의 구속 이후 정치권 일각에서는 야권이 원 전 원장보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입에서 더 결정적인 카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김 전 청장을 국정원 국조의 주 타깃으로 삼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정원 국조의 핵심인물로 원 전 원장이 아닌 김 전 청장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황보건설 황보연 대표에게서 청탁과 함께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지난 10일 구속 수감됐다. 1998년 국정원 출범 이후 전직 국정원장이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원 전 원장은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며 “현금 받은 것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부인했다.
향후 원 전 원장 검찰 수사는 원 전 원장의 지위를 이용한 불법적 영향력 행사 및 추가 금품 수수여부를 규명하는 쪽으로 집중될 전망이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을 구속함에 따라 앞으로 황보건설의 공사 수주 과정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황씨로부터 받은 금품이 더 있는지 등을 추궁할 계획이다.
아울러 원 전 원장으로부터 황보건설에 관한 청탁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원청업체나 공무원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도 결정할 방침이다. 야권은 원 전 원장의 구속의 배경을 두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원세훈 구속 두고
의혹 ‘솔솔’
한 정치권 소식통은 “국정원 국조에서 원 전 원장의 대선 개입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경우 청와대의 정치적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 국조가 본격화되려는 시점에서 원 전 원장이 구속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 같은 의혹의 시선에 검찰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앞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에서 원 전 원장이 불구속 됐을 때도 정치권 주변에서는 “원 전 원장 개인 비리 문제로 정리 될 것으로 국정원도 바람막이는 돼주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다.
야권은 검찰이 NLL 파문 등 국정원 관련 정치적 논란이 확산되고 촛불시위와 같이 부정적 여론이 걷잡을 수 번지는데다 국조의 본격화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불구속 기소했던 원 전 원장을 구속 조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 전 원장을 구속 조치한 시점을 두고 의문이 일고 있다.
사정기관 주변에서도 국정원 국조가 본격 가동되기 이전 원 전 원장을 구속한 것은 원 전 원장의 증인 출석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구속시기가 공교로운데다 원 전 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입증자료나 증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국조와 관련해 ‘몽니’를 부려왔으며 원 전 원장의 증인 채택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원 전 원장의 출석 여부를 놓고서도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은 “ 원 전 원장이 구속 상태라고 해도 (증인 출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힌 반면,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출석 여부는 본인 선택 사항”이라고 밝혀 대립각을 세웠다.
최근 국정원 기관보고 일시를 정했지만 회의 공개 여부를 두고도 새누리당은 ‘비공개’를 주장하고 있다. 권선동 의원은 “국가정보원법에 의하면 국정원의 조직과 인원 등 모든 게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며 “(국조의) 핵심은 국정원의 대북심리전이 어떻게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선거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인데, 그 과정에서 대북심리전단팀의 규모 등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고 ‘보안’을 비공개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어 반대 축에 서 있는 민주통합당과의 협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권 핵심 인사 겨냥
야권은 여권이 국정원 국조에서 권영세 주중대사와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등 여권 핵심 인사들에 대한 문제가 부상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권 대사와 김 의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불법 열람 의혹’ 역시 국정조사 범위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했으나, 새누리당의 반대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여야 간사는 이 문제에 대해 추후 재논의하기로 했지만 박근혜 대선 캠프까지 연루된 이 문제를 새누리당이 수용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야권에서는 지난 대선국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을 축소 수사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배후로 당시 새누리당 대선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권 대사를 지목하고 있다. 김 전 청장은 수사 과정에서 축소·은폐를 지시해 공직선거법과 경찰공무원법을 위반하고 형법상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범계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6월 17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황교안 법무장관을 상대로 질의를 하며 “지난해 12월 16일 김 전 청장을 중심으로 권영세(현 주중대사) 당시 선거대책본부 종합상황실장과 박원동 당시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청장은 수사 과정에서 축소·은폐를 지시해 공직선거법과 경찰공무원법을 위반하고 형법상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야권은 김 전 청장이 국정원의 여론조작과 선거개입 커넥션을 지켜주는 임무를 담당했다고 보고 있다. 박 의원은 김 전 청장이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국정원에서 상당기간 근무한 점과 권 대사가 검사시절 국정원에서 3년간 파견근무를 하고 국회에서는 국정원을 다루는 국회 정보위원장이었던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박 의원은 “김 전 청장은 TK 출신이고 행정고시를 거쳐 국정원에 들어가 근무를 하다가 경찰에 투신했다. 권 전 종합상황실장도 검사 시절 국정원에 파견 나가 3년간 근무하고, 2011~2012년도에는 국정원을 다루는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냈다”고 이들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이어 “12월 16일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은 낮 기자간담회에서 ‘(경찰이) 아무런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고, 밤 10시 40분 박선규 당시 대변인은 ‘국가적 관심사라 오늘 조사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며 “이튿날 낮 권영세 당시 상황실장은 ‘민주당이 조작한 사건인데 이를 선거 후 발표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트위터 글을 올렸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또 “권 실장이 왜 이렇게 자주 등장할까 의문이 많았다. 김용판과 원세훈이 뭘 믿고, 무슨 배경이 있어 이런 어마어마한 국기 문란 사건을 벌였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에 앞서 박영선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김 전 청장의 배후가 있다는 제보가 민주통합당에 들어왔다. 그 배후가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또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서도 “김 전 청장과 박원동 전 국장이 공교롭게도 TK(대구·경북) 출신이다. 직거래가 있을 거라고 본다. 국정원 사건에 관한 것은 김용판과 박원동, 그리고 저희에게 들어온 또 다른 배후, 이 커넥션이 가장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권 대사는 주중대사관 공보관을 통해 “사실이 아니다”고 정면 반박한 바 있다.
野, 김용판-친박
연결고리 캔다
이 같은 일련의 연결고리는 ‘국정원 국조에서 김 전 청장이 주 타깃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야권이 김 전 청장의 입에 주목하고 있다. 원 전 원장보다 김 전 청장을 겨냥하는 편이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김 전 청장 역시 구속된 상태라서 야권의 생각대로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 역시 존재한다.
한 정치권 소식통은 “원 전 원장의 경우 국정원 대외비와 연결돼 이번 사안과 관련해 입을 다물더라도 그럴 수 있는 권한이 보호된다. 그러나 김 전 청장은 경우가 다르다. 설령 원 전 원장이 대선 공작을 했다고 하더라도 경찰은 수사의 주체다. 야권은 대선 공작한 주체에 대한 조사가 아닌 경찰이 왜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했느냐를 캐면 대선 공작 실체가 밝혀질 것으로 보고 있다. 원 전 원장보다 김 전 청장을 공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 전 원장은 MB의 측근이고 김 전 청장은 대선 기간 박 대통령의 최측근에서 활약한 친박계 핵심 인사인 권 대사와 통했던 인사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야권은 이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청장을 조사하면 친박의 핵심, 더 나아가서는 청와대까지 파고 들 수 있다는 노림수인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권 소식통은 “이번 국정조사의 야권 타깃이 김 전 청장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국정조사의 핵심으로 김 전 청장이 떠오르고 있다. 야권이 김 전 청장과 권 대사 등 친박 인사들과의 연결고리를 캔다면 박 대통령의 의도 유무를 논외로 두더라도 당선과정에서 불법적인 방식의 ‘지원’을 받았다는 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