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전의원의 주도하에 87년 대선을 앞두고 결성된 월계수회는 노 정권 출범이후 정권을 지탱하는 최대 사조직으로 군림했다. 박 전의원은 또 총선에서 월계수회 회원들을 상당수 정계에 진출시키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3당 합당 이후 김영삼 전대통령과의 갈등을 빚으며 서서히 세력이 약화했다. 박 전의원이 탈당한 이후 해체로 이어졌다. 상당수 회원들은 YS의 민주산악회에 흡수됐다. 당시 멤버들로는 강재섭 현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긍규, 조영장, 김인영 전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YS 정권 때는 민주산악회(민산)출신이 정권의 핵심요직에 올랐다. 1981년 YS가 결성한 민산은 이른바 상도동계의 구심점을 만들며 민추협, 통일민주당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핵심역할을 했다. YS의 최측근인 최형우, 서석재 전의원과 김덕룡 의원등이 주도하며 한 때 150만명에 달할 정도로 세력을 확대하며 YS 대통령 만들기에 1등 공신이었다.
김영삼 정권 때는 ‘등산화’가 줄줄이 내려왔다는 루머까지 항간에 나돌았다. 그러나 지난 97년 대선과정에서 민산 출신 이인제 의원과 이회창 후보의 대립으로 갈라섰고 조직력도 약화됐다. 대표적인 민산출신들로는 강삼재, 김명윤, 박종웅, 박관용, 서청원 전의원 등. DJ정권 때는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연청)가 주목받았다. 80년 ‘서울의 봄’ 당시 장남인 김홍일 의원의 주도하에 결성돼 민산처럼 DJ 대통령만들기에 공헌했다. 역대 회장은 문희상(초대·6대) 의원,정균환(2대) 김충조(3·4대) 최봉구(5대) 김옥두(7·8대) 남궁진(9대) 전 의원,정세균(10·11대) 의원 등이다. 2000년 말 민주당 공식 기구로 편입되며 공식적인 활동은 멈췄지만 연청출신들은 정부산하 기관장과 주요 당직에 포진하며 영향력을 발휘했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연청출신의 기세는 높다. 현재 진행중인 열린우리당 당권경쟁에 문희상, 염동연 의원이 뛰고 있으며 정세균 의원이 당의 원내 대표직을 맡고 있는 것이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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