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억 원의 회삿돈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
동생 최재원 부회장은 무죄…SK그룹 “항소하겠다”
[일요서울ㅣ강길홍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법정구속됐다. 2003년 2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된 지 딱 10년 만이다. 최 회장은 수백억 원의 회삿돈을 선물 투자에 전용한 혐의(특경법상 횡령)로 불구속 기소돼 검찰로부터 징역 4년의 구형을 받았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재판에서 법원은 검찰이 구형한 징역 4년을 그대로 선고했다. 최 회장과 함께 검찰에 기소돼 구속까지 당했던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특히 최 부회장은 자신의 범행을 자백까지 했지만 법원은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원범)는 465억 원의 회삿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최태원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함께 기소된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도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으며, 장진원 SK 전무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최태원 회장의 횡령 사건 수사는 2011년 초 시작됐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모 건설사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다가 최재원 부회장의 미심쩍은 자금 흐름을 발견하고 같은해 7월 출국금지시켰다. 비슷한 시기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코스닥 상장사인 글로웍스의 주가조작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김준홍 대표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다가 금고에서 최 부회장의 수표 173억 원어치를 발견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2011년 11월 SK 계열사 10여 곳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12월에 최 부회장을 구속했다.
이후 검찰은 그룹 총수인 최 회장에게 칼을 겨눴다. 최 회장은 SK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배경으로 각 계열사에 1000억 원대의 회사자금을 펀드조성용 선지급금으로 출연하도록 하고 창업투자회사(베넥스)를 통해 관리하다가 그 자금 중 약 500억 원은 대외로 유출해 임의로 사용하고, 나머지 약 500억 원은 유출된 펀드조성용 자금의 보전을 위해 전용한 혐의를 받았다. 또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과다 지급한 뒤 돌려받는 방식으로 140여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더해졌다.
법원 “경제발전 공헌은 감형 사유 아냐”
1년여간 진행된 공판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은 최 회장이 김 대표에게 펀드 투자금을 보내라는 지시를 직접 했는지를 두고 다퉜다. 계열사에서 투자된 펀드 자금이 순수한 투자금이었는지,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보내기 위해 빼돌린 회삿돈이었는지가 관건이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최 회장이 펀드를 운용하던 김준홍 대표에게 ‘돈이 필요하면 빨리 받아가라’는 말을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회장이 김원홍 전 고문에게 돈을 보내라고 지시했다”는 구체적인 진술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간접 진술만 있었을 뿐이다.
법원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신뢰했다. 최 회장이 김준홍 대표와 공모해 베넥스 법인계좌에 보관 중이던 SK텔레콤의 370억 원, SK C&C의 95억 원 등 펀드출자용 선지급금 465억 원을 횡령해 김원홍 전 고문에게 송금한 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성과급을 과다 지급한 뒤 돌려받는 방식으로 140여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는 증거가 부족한 데다 최 회장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금액이 1억 원 정도에 그쳤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의 SK그룹 내 위상과 영향력을 생각할 때 유죄판결로 인해 SK그룹과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또한 작지 않기에 처벌의 수준을 정하는데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하지만 우리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을 형사책임을 경감하게 하는 주요 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최 회장의 범행은 자신이 지배하거나 영향력이 미치는 다수의 유력 기업을 범행의 수단으로 삼아 그 회사 재산을 단기간 내에 대량으로 사적인 목적에 활용함으로써 기업 사유화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표출했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결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양형기준의 권고형량 범위인 징역 4∼7년 중 가장 낮은 양형인 징역 4년을 선고했다”며 “유출한 자금을 7~8개월 내에 개인 재산으로 보전할 의사가 있었고, 실제로 펀드를 모두 원래 상태로 회복시킨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300억 원 이상 횡령·배임 범죄의 기본형량은 징역 5∼8년이지만, 피해가 회복된 경우는 징역 4∼7년으로 낮출 수 있다.
“나는 모르는 일” 혐의 부인
최 회장은 판결 선고 직후 자신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재판부가 마지막 발언 기회를 주자 최 회장은 “제가 무엇을 제대로 증명 못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정말 이 일(범행)을 하지 않았다”며 “다른 것은 차치하고 2010년에서야 사건 자체를 알았다. 이 일 자체를 잘 모른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이것 하나”라고 말했다.
SK그룹 측은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SK그룹 관계자는 “무죄 입증을 위해 성심껏 소명했으나 인정되지 않아 안타깝다”며 “판결문을 받는 대로 항소 등 법적 절차를 밟아 무죄를 입증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강길홍 기자 sliz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