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원수로 갚은 ‘무서운 아이들’
은혜를 원수로 갚은 ‘무서운 아이들’
  • 이수향 
  • 입력 2004-12-16 09:00
  • 승인 2004.12.1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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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만남은 올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5~19살인 이들 4명은 모두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한 뒤 마땅한 일없이 방황하던 상태였다. 이들은 경기도에 사는 한소리(16·가명)양을 비롯해서 포항, 마산, 부산 등 제각기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올 초 화상채팅을 통해 서로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이들 4명은 서로의 형편에 대해 얘기하다가 함께 뭉치는데 의견을 모으게 된다. 10월 말 부산에서 만난 이들 10대 남녀 4명은 여관과 찜질방 등을 떠돌며 함께 생활해왔다.그러기를 한달여. 집에서 가지고 온 돈이 모두 떨어지자 이들은 생활비 및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이들이 고안해낸 방법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물주’를 구하는 것이었다.그들은 이를 위해 한 채팅사이트에 ‘고아남매 도와주실 분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방을 만들었다.회사원 고성일(35·가명)씨는 우연히 채팅 사이트를 기웃거리다가 한양이 만들어놓은 방제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 회사중역으로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인 그는 부산 파견근무로 인해 주말에만 서울 집에 들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방제를 본 고씨가 관심을 보이자 한양은 자기들을 ‘부모없는 고아남매’라고 소개하며 동정심을 유발시켰다. 또 그녀는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과 재산을 친척들에게 모두 뺏기고 쫓겨난 뒤 집도 절도 없는 딱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속였다. 고씨는 한양이 줄줄이 늘어놓는 거짓말에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된다.

특히 자기와 같은 경기도 출신이라는 한양 등이 부산까지 내려와 하루하루 막막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약해진 그는 당분간 이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한다.‘보증금이야 어차피 두달 후 방을 뺄 때 돌려받으면 될테니 일단 딱한 이들을 도와주자’고 생각했던 것. 고씨는 “내가 돈을 대줄테니 너희 남매들이 같이 살만한 보증금 300만~500만원 정도의 방을 알아보라”고 말했다.그러나 나이어린 이들이 마땅한 방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자 고씨는 직접 한양을 데리고 다니면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16만원의 두칸짜리 자취방을 얻어주는 친절까지 보였다.물론 고씨가 이렇게 하게 된데는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약 두달 동안만 살 곳을 마련해달라”는 한양측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살인 및 사체유기 연습

하지만 이러한 고씨의 도움으로 거주지를 마련한 그들은 그의 친절과 호의에도 불구하고 차마 인간으로 할 수 없는 ‘파렴치한’생각을 품게 된다.자기들에게 순순히 호의를 베푸는 고씨가 돈이 꽤나 많을 것으로 생각한 이들은 그를 위협해 돈을 뺏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범행이 발각될 것을 염려한 이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고씨를 아예 살해하고 유기할 계획을 세웠다.이들은 완전 범죄를 위해 여자는 유혹조, 남자는 범행조 등으로 역할을 나누고 살인 및 사체처리 등을 수차례 연습했다. 한편, 이들의 무서운 속내를 전혀 모르고 있던 고씨.11월 22일 새벽. 그는 이날도 어김없이 서울에 있는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날 새벽 부산 집에 도착한 고씨는 자택 열쇠를 서울 집에 놓고 온 사실을 깨닫고 막막해한다. 어쩔 수 없이 한양 등에게 얻어준 자취방에서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그곳으로 찾아갔다.

고씨의 돈을 빼앗고 살해할 계획에 분주하던 한양 일당은 갑작스런 그의 방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급한 나머지 고씨를 일단 감금시킨 이들은 그를 협박해 500만원을 강취했다.그러나 이들은 두가지 의견을 놓고 갈등을 겪게 된다.즉 ‘6,000만원 정도의 액수를 뜯어낸 뒤 고씨를 살해하자’는 의견과 살인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충돌한 것. 결국 이들은 일단 살인을 미루고 그를 풀어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부산서부경찰서는 12월 2일 이들 10대 청소년 4명을 강도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사건을 담당한 부산서부서 강력 3반 서도석 형사는 “이들은 유흥비 마련을 위해 고씨의 돈을 뺏는 것도 모자라 살해하려고 사전에 연습까지 했다”고 전했다. “자기들의 거짓말에 속아 성심성의껏 도와준 은혜를 ‘피’로 값으려 한 이들 일당의 범행은 단순히 10대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경찰측의 전언이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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