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진심캠프 60일간 보고서-② “文, 단일화 돌직구에서 변화구, 安 정면돌파”
안철수 진심캠프 60일간 보고서-② “文, 단일화 돌직구에서 변화구, 安 정면돌파”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3-01-15 09:20
  • 승인 2013.01.15 09:20
  • 호수 9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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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 조국, 이택수 ‘단일화 여론몰이’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출근 이틀째인 2012년 10월14일은 안철수 캠프의 정책발표 1호인 경제 민주화와 재벌개혁안을 선보였다. ‘계열분리명령제’ 등 파격적인 안이 포함돼 정치권과 경제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반면 민주당과 문재인 캠프는 외부 친노 논객들을 통해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에 집중했다. 안철수 캠프는 정치공세로 간주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했다. 대신 파격적인 재벌개혁안으로 맞서겠다는 복안이었다. 반면 박근혜 캠프는 정수장학회 등 과거사, NLL 대화록, 경제민주화 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내부적으론 친박에서 친이계로 갔다 다시 복박한 김무성 체제가 들어서면서 ‘대통합’차원에서 친이계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안철수 후보가 출마선언 직후 20~30여 명의 측근그룹으로 시작된 캠프 인원은 삽시간에 166명에 이르렀다. 무보수 자원봉사자를 하겠다는 문의는 쇄도했고 그 만큼 캠프 조직도 초기보다 안정화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청소를 해주는 아주머니부터 민원실 안내를 담당한 사람들까지 자원봉사자로 채워졌다.

민주당 단일화 ‘직구’보다 ‘변화구’ 선호
직책은 그래도 지역 유지에 퇴직한 대기업 간부라는 말을 듣고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한민국에 인재가 많다고 평한 것이 실없는 소리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내놓라하는 인사는 이미 박근혜, 문재인 캠프로 다 갔다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오산이었다.
캠프가 안정화되자 외부 지역 포럼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5일 전북 안심포럼 출범을 시작으로 인천 동행, 대전충남 25일 순으로 발족할 채비를 마쳤고 제주, 대구경북, 경기, 강원 지역 포럼이 1차 모임을 갖는 등 활발하게 돌아갔다. 또한 ‘노동정치연대’를 중심으로 노동연대센터를 구성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단일화에 대한 정치 공세는 계속되면서 안철수 후보를 압박했다. 민주당은 ‘직구’보다는 ‘변화구’로 전략을 수정하면서 캠프 외부 인사들이 서서히 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요구해왔다. 특히 우리 캠프를 신경쓰이게 한 것은 서울대 조국 교수와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였다. 조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서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에 나서라’며 SNS 여론을 주도했다. 또한 조기숙 전 참여정부 홍보수석, 변희재씨 등 일부 친노인사까지 가세해 단일화에 대한 여론몰이에 나서면서 안 후보를 단일화 프레임에 갇히게 만들었다.

리얼미터 이 대표의 경우에는 JTBC와 함께 매일 여론조사를 발표하면서 일희일비하게 만들었다. 리얼미터는 박근혜 후보와 문·안 경쟁력 조사와 적합도 조사를 병행하면서 여론 흐름을 엇갈리게 만들었다. 당시는 안 후보가 모든 조사에서 문 후보를 앞서고 있었지만 추세는 점점 좁혀지고 있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언론을 담당하고 있던 분석대응실과 상황실 사람들은 여론조사 발표→인터넷 매체 보도→중앙일간지 및 방송사 인용보도→SNS 확산으로 이어지는 경마식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언론 환경도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 우호적인 매체가 거의 없었다. 하루 종일 대선관련 보도를 내놓는 4개 종편방송을 포함해 3개 중앙방송사, 그리고 조선, 중앙, 동아에 경제지 등 보수언론은 물론 진보매체까지도 안 후보를 달갑게 여기질 않았다. 한겨레 경향신문 프레시안 등 진보 매체의 입장에선 민주화에 경험이 전무한 안 후보보다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문 후보를 더 선호하는 기사를 대놓고 내놨다. 한 마디로 ‘진보 진영의 대표는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이라는 뿌리 깊은 사고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해 씁쓸해 했던 기억이 난다.

경향·한겨레·프레시안 진보매체 安보다 文
이래저래 캠프 차원에서 좌시하고 있을 순 없었다. 단일화 압박카드에 캠프는 정책 발표를 통해 승부수를 띄웠다. 그 첫 번째가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정책 발표였다. 안 캠프는 이날 경제 민주화 정책비전과 재벌개혁 7대 과제를 발표했다.

안철수 후보는 이날 공평동 사무실에서 연설을 통해 ‘기회의 균등, 과정의 공정, 약자의 보호’ 등 3가지를 핵심적 가치로 내놓았다. 그러면서 그 첫 번째가 ‘재벌개혁’임을 내세웠다. 재벌의 부실은 국민 경제 전체의 위험으로 간주하면서 7대 재벌 개혁 과제를 발표했다. 재벌 총수 편법 상속·증여, 일감 몰아주기 방지, 총수 불법행위 엄정 처벌, 금산분리 규제 강화, 다중대표 소송 제도 도입 등 하나 같이 파격적인 안이었다.

그 중에서도 계열분리명령제는 강력한 재벌개혁 조치로 평가를 받았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은 국헌을 준수하는 대통령의 책무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사실상 재벌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당장 재벌들은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은 없다’, ‘성장동력이 훼손되면 서민들만 피해본다’는 등 원론적인 입장과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대세론’을 깬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발언인만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재벌개혁안 발표전부터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에서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전 정보를 알아내기위한 로비가 치열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벌개혁안 발표만으로 야권의 단일화 요구를 피해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실에서 준비한 재벌 개혁안 발표후 대응 전략안도 무용지물이었다. 보수 언론들은 재벌개혁안보다는 오히려 단일화에 더 지면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안철수 캠프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단일화 요구에 묵묵부답인 안 캠프에 ‘그럼 단일화를 안하겠다는 것이냐’, ‘독자 출마할 것이냐’, ‘민주당 입당은 않하느냐’는 등 관련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일단 우리실에선 ‘단일화와 입당 분리전략’을 기본 기조로 삼았다. ‘先정치개혁 後단일화’ 기조속에 1안 수용, 2안 조건부 수용, 3안 조건부 거부, 4안 거부에 맞춰 대응 전략을 마련했다. 1안에 대한 대응 수위는 ‘후보 등록전까지 결정하겠다’, 2안, ‘안하겠다는 것 아니다. 정치개혁이 우선’, 3안, ‘단일화 논의 시기상조, 각자 국민보고 열심히 뛰자’, 4안 ‘정치개혁 없인 단일화 없다’는 내부방침을 정했다.

돌이켜 보면 4안이 안철수 후보에게 적합한 것이었지만 안 후보는 결국 2안에서 1안으로 급선회하면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최대의 기회’를 놓치는 뼈아픈 경험을 해야 했다. 단일화 프레임은 우리가 서울시 교육감 선거와 경남지사 선거에 개입하지 않는 단초로도 작용했다.

내부적으로 ‘인재 발굴해 후보 내기’에는 역량 부족을 인정해야 했지만 민주당이 교육감/도지사 선거에서 야권 후보 연대를 무기로 야권 단일화 프레임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캠프 내부에선 단일화 요구에 적극적으로 나선 조국 교수가 교육감 선거에 나서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 역시 희망 사안으로 외부로 표출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게 캠프내 현실이었다.

‘반란’을 꿈꾸는 친이계‘곤혹스런’ 박
문 캠프의 조직적 단일화 압박에 재벌 개혁안으로 맞서는 사이 박근혜 캠프 역시 김무성 체제가 안정화되고 있는 시기였다. 특히 친이계와 친분이 깊은 김무성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은 친이계 영입에 공을 들였다. 이재오 전 장관을 비롯해 김용태, 권택기, 정두언 전현직 의원 영입이 이슈화됐다. 이 때까지만해도 이 전 장관을 비롯해 친이계는 선대위 참여에 대해선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오히려 친이계 일부에선 본선 경쟁력에서 박 후보의 승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했던 것으로 캠프는 파악하고 있었다. 오히려 박 후보가 패할 경우 나서 당을 접수하자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개진되고 있었다. 실제적으로 MB정권에 복무한 친이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가 중도사퇴하면서 이 모임은 사실상 와해됐고, 친이계 역시 박근혜 후보를 지원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편 정수장학회, NLL 대화록, 경제 민주화 등 3가지 화두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정수장학회에 대해선 박 캠프측은 ‘박 후보와 무관하다’ ‘이미 다 해명할 건 다했다’며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NLL 대화록 논란에 대해선 국정 조사를 요구한 상황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대화록 공개가 불가능한 상태로 다음 주까지 정치적 공방을 벌이다 잠잠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계속>

<정리=홍준철 정치부장>  mariocap@ilyoseoul.co.kr


2012년 대선 추억 : ‘닮아도 너무나 닮은’ 2012 가을야구
안철수는 롯데-문재인은 SK-박근혜가 삼성?

여야가 한창 정치적 공방을 벌이는 이 때는 공교롭게도 국민들은 가을 야구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부산 연고의 롯데와 인천 SK가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고 있었고 대구 연고의 삼성은 한국시리즈 티켓을 거머쥐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삼성과 붙게 될 경우 부산 출신의 문재인, 안철수 후보와 대구 출신의 박근혜 대리전 양상을 치러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박근혜 캠프였다. KBO에 ‘시구’를 비공식적으로 요청했다가 ‘난색’을 표해 무산됐다는 후문이 돌었다. 당시 플레이오프보다는 한국시리즈 1차전을 염두에 둔 제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캠프는 부산출신 후보라는 점에서 플레이오프에 ‘시구’보다는 ‘관람’을 하자는 안이 올라갔다. ‘스포츠 정신을 배우겠다’는 발언도 내부적으로 준비됐다. 하지만 상부에선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롯데가 한국 시리즈에 올라간 이후에 재검토해보자는 원론적인 입장이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가장 적극적이었다. 문 후보는 공개적으로 “안 후보가 부산이고 하니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같이 시구라도…”라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롯데가 명승부 끝에 패하면서 ‘가을야구’는 대선판에서도 야권 지지층 관심 속에서도 멀어졌다. 한국 시리즈는 싱겁게 대구 연고의 삼성의 완승으로 끝났다.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 본선전 플레이오프였던 문·안 단일화 대결로 높은 관심속에 출발했지만 안 후보가 중도 사퇴하면서 김이 빠졌다. 이후 문 후보가 본선에서 100만 표 차이로 박근혜 후보에게 완패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닮았다. ‘만약 롯데가 올라갔다면…’처럼 ‘만약 안철수가 올라갔다면…’ 아쉬움이 동시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을 야구가 대선 판세를 미리 귀띔이라도해 준 것일까. 아이러니하다. <철>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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