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몰락했어도 ‘비자금은 살아있다’
대우 몰락했어도 ‘비자금은 살아있다’
  • 정은혜 
  • 입력 2006-07-20 09:00
  • 승인 2006.07.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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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대우그룹 명예회장이 언론 지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재판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사촌 동생이 끼인 사기 사건에 ‘소스’로 등장한 것. 이번 사건은 김 전 회장이 한때 대우라는 기업을 운영하는 등 막강한 사회적 지위를 누렸던 ‘허상’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김 전 회장의 사촌 동생 김모씨 등 일당 4명은 50조원대의 비자금이 해외에 예치돼 있다고 속여 8억여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 안팎에서 대우 비자금설이 끊임없이 제기된 부분을 이용한 대범한 사기극인 셈. ‘대박’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드는 현대인의 단면을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전직 경제계 인사를 악용한 사기 사건의 전모를 취재했다.





‘세상은 넓고 사기꾼은 많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명예회장이 사기 수단으로 악용된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 경영’을 내걸고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김 전 회장의 말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 전 회장의 사촌동생이 50조원 규모의 대우 비자금이 있다고 속여 사기 행각을 벌였던 것.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 14일 김 전 회장의 사촌동생 김모(59)씨 등 4명에 대해 사기 및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일당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또, 달아난 K(44)씨 등 2명을 수배했다.

이번 사건에는 김 전 회장의 사촌동생 뿐만 아니라 전직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 등이 공모를 한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적이다. 김 전 명예회장은 지난 5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원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와 K씨 등은 액면금액 500억 달러(50조원) 규모의 위조 예치금증서 등을 제시하며 조경업체 S사 대표 윤모씨 등을 속여 지난해 10월부터 투자금, 신용장 개설 수수료, 서류 심사대금 등의 명목으로 모두 7억7,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현재 법정관리중인 건설업체 H사를 인수한 뒤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형식으로 대우 비자금 500억달러 중 15억달러를 들여오려고 하니 협조해 달라. 대신 H사의 경영권을 당신에게 넘기고 인수 자금 65억원도 우리가 대겠다”며 윤씨를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모 다국적 은행의 싱가포르 지점 명의로 된 500억달러 예치금증서, 영서 등을 제시했으나 이 문서들은 조회 결과 모두 위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해당 은행과 인터폴을 통해 확인한 결과, 시티은행 쪽은 “그런 계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했고 나머지도 모두 가짜로 판명됐다.

김씨 사기극 알면서도 범행 가담 가능성 커

위조 문서상 500억달러의 예금주로 돼 있는 러시아인 A씨는 불가리아 여권과 가명을 사용해 K씨를 자금운용 대리인으로 지정하는 전권 위임장을 작성하는 등 K씨를 통해 사기극을 배후 조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찰은 밝혔다. A씨는 동일한 내용의 위조 문서를 이용해 네덜란드에서 사기를 벌이려다 벨기에 경찰에 적발돼 작년 9월부터 인터폴의 적색 수배를 받고 있는 상태다. 김씨 등은 해외 비자금이 없어 인수 잔금을 치르지 못한다는 사실이 들통날까봐 국내 자본을 끌어들여 자금을 조달하려고 시도했으나 이들이 만든 자금승낙서에 첨부돼 있던 96억원 예치 통장 사본 역시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문서 위조 사실을 몰랐고 실제로 해외에 비자금이 있는 줄 알았다”고 경찰에서 주장했으나 경찰은 김씨가 조회 절차 등을 거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사기극인줄 알면서도 범행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경찰 한 관계자는 “사기극을 주도한 K씨가 잠적한 상태여서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으나 K씨는 ‘50조원 해외 비자금’이라는 황당한 얘기가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속이기 위해 김우중 전 대우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을 가담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손해사정인으로 활동해 온 K씨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국무총리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민원전문위원,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 등 각종 직함을 갖고 정·관계 등에도 친분을 쌓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은혜 기자> kkeunnae@ilyoseoul.co.kr



# 경기도 일산 물난리...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人災)
고양시·삼성물산 ‘난 몰라’ 책임 떠넘기기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경기북부 지역과 강원지역은 비피해가 심각하다. 지난 7월 12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사상 최악의 지하철 침수사태가 벌어졌다. 역사는 물바다로 변했다. 급기야 지하철 운행이 17시간동안 중단됐다. 정발산역의 역사가 침수됐다.

시민들은 출근시간부터 속수무책으로 교통대란에 시달려야 했다. 시간당 70mm 가까이 비가 쏟아졌다. 집중호우에 역 바로 옆에 있는 일산아람누리 문화센터 공사장이 물에 잠기고, 빗물이 넘쳐 정발산역 지하 1층으로 쏟아졌다. 원인을 알아봤다. 천재(天災)가 아니라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인재(人災)였다.

고양시 관계자는 “아람누리 공사현장 주변에는 지름 800mm 배수관이 묻혀있다. 이는 시간당 60mm 비를 처리할 수 있게 설계되어있다. 당시 100mm이상의 폭우에 무방비 상태일 수 밖에 없었다” 고 말했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역사 벽에 뚫려 있던 구멍 3개가 주범이었다.

지난 7일 문화센터 건축을 맡은 삼성물산· 코오롱 건설· CJ개발· 태광 등 4개의 기업체는 지하철 역사 벽면에 콘크리트 강도 조사를 위해 구멍을 뚫었다. 이후 구멍을 바로 막지 않고, 2cm 짜리 합판으로 가려 둔 채 방치를 했다.

합판은 쏟아지는 빗물의 압력을 이기지 못했고, 이 구멍을 통해 빗물이 지하철 역사로 쏟아졌다. 장마철을 대비하여 국내 굴지의 건설사들은 두께 2Cm짜리 합판 1장으로 대비를 했다. 고양시민회는 “건설업체의 공식적인 해명을 요구하고, 공사현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정확한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또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책임소재를 가리고 방지를 위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예형 인턴기자> sugardonut3@naver.com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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