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사칭해 수년 동안 가짜 변호사 행세를 해 온 ‘간 큰’ 40대 남성이 최근 검찰에 적발됐다. ‘전국에서 통하는 광역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소송의뢰인들로부터 수천만 원의 수임료를 받아 챙긴 송모(49)씨가 그 주인공. 송씨는 과거 기자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얕은 법률지식을 활용, 주로 법지식이 없는 영세민과 식당주인 등에게 접근해 사기행각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송씨는 주로 변호사 없이도 이길 수 있는 사건을 맡아 불과 2년 만에 일반 변호사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을 수임했는가 하면, 오랫동안 법조 주변에서 활동했으면서도 범죄행각이 드러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법조비리 여부에 의혹,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나선 상태다.
수원지검 안산지검 형사3부는 지난 18일 송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사무장 역할을 한 송씨의 동거녀 A(42)씨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송씨는 검거 과정에서 수사관들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저항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추가 적용되기도 했다.
과거 기자 경험이 발단
검찰에 따르면, 이 어처구니없는 사기극의 뿌리는 3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 라간다. 2003년 8월,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이른바 ‘백수’였던 송씨는 모 월간지 전기자였다는 자신의 신분을 십분 활용, 자신이 ‘지역신문기자로 청와대에 출입하고 전국 어느 법원에서도 통하는 광역변호사’라고 속였다.
실제로 송씨는 2001년도에 모 월간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밝혀졌으며, 기자증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송씨가 실제 청와대를 출입한 기자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저, 법학 쪽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 나름대로 쌓아 둔 얕은 법률지식을 살려 변호사 행세를 해 온 ‘법조브로커’에 불과했던 것이다.
법 지식 없는 영세민 노려
송씨는 주로 법지식이 없는 영세민들과 식당주인, 자신이 다니는 교회신도 등에게 접근했으며, 피해자 중에는 공무원도 일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A씨는 송씨에 대한 이력을 거짓으로 부풀려 소문을 내고 다니고, 사건 수임료를 관리하는 사무장 역할을 맡았다. A씨는 “송변호사는 능력이 뛰어나고, 사건을 맡았다 하면 백전백승”이라며 “이 업계에서 송변호사 모르면 간첩”이라는 식으로 떠벌리고 다녔다. 이후, ‘잘 나간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의뢰인들은 송씨를 수소문해 찾아오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침구점을 운영하는 한 50대 사업가 서모(50)씨는 2년 전 떼인 거래 대금 1억 5,000만원을 받기 위해 지인으로부터 ‘송변호사’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가 거액의 돈을 뜯긴 케이스다. 서씨는 “지인에 따르면, 변호사 5명이 맡아도 졌던 건을 송변호사가 맡아서 이겼다고 했다”며 “송변호사는 청와대 출입기자로, 어떤 재판에 어떤 판사가 있어도 취재하러 들어간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700만원이라는 거액의 수임료를 주고도 서씨는 결국 패소위기에 몰렸으며, 검찰 조사결과 송씨는 소송 상대방 측에서도 수천만 원의 돈을 받아내 사건에 대한 승패를 조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피해자 서씨는 막상 송씨가 검찰에 검거될 때까지 자신이 속고 있다는 낌새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송씨의 의심스런 행각은 서씨가 아닌 주변의 첩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서씨는 “송씨가 ‘나는 청와대에 수년간 출입해 왔으며, 현직 판검사와도 각별한 친분이 있다’라고 자신을 소개해서 그런 줄 알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식으로 송씨는 2003년 8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사건 의뢰인 7명으로부터 채권가압류, 민사소송, 형사고소를 의뢰받고 3,600만원의 수임료를 챙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소송 쌍방서 수천만원씩 받아내
검찰은 “송씨는 의뢰인들에게 최소 100만~300만원에서 최대 1,700만원까지 수임료를 받아 챙겼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경기 안산 일대에서만 적발된 건수. 따라서 송씨가 전국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다닌 것을 감안할 때, 그 피해자수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은 “송씨가 지난 2년 간 맡았던 소송기록은 96건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는 일반 변호사보다 훨씬 더 많은 건수”라고 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협회 재무과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일반 변호사의 수임건수는 1년에 20건도 채 안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96건의 소송기록은 대단한 업무성과”라고 전했다.
세무 소송까지 맡을 정도로 그럴듯한 법 지식을 갖고 있는 송씨는 자신과 A씨가 연루된 고소·고발 사건을 직접 변론하며 수임 사건을 변론하는 것처럼 의뢰인을 속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집에서 변호사 사무실 운영
검찰에 따르면, 송씨의 범행수법은 치밀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다. 검찰은 “송씨는 주로 변호사 없이도 이길 수 있는 사건을 맡아 재판부에 변론서만 제출했다”면서 “승소가 어려울 경우엔 지역 변호사에게 소개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겼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송씨의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또 검찰은 “송씨의 자택을 수색한 결과, 20박스 분량의 소송 서류, 복사기, 컴퓨터 3대 등에 사건요약 접수부 등을 갖추고 있었다”며 “심지어 재판 일정을 화이트보드에 하나하나 기록해 놓는 등 송씨의 집은 사실상 변호사사무실처럼 운영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송씨가 갖고 있던 소송 서류 및 사건 요약문 등을 꼼꼼이 따져보니, 그 내용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에 따르면 송씨는 수년 전에도 같은 수법으로 ‘활개’치고 다녔던 것으로 드러났다. 동종 유사 전과 등 화려한 전력을 갖고 있었던 것. 실제로 3년여 간 가짜 변호사 행세를 해 온 송씨는 깔끔한 외모, 말쑥한 옷차림에 타고난 언변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어 사실상 ‘사기’의 조건은 다 갖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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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송씨는 그와 관련된 자체 고소 사건과 경찰 송치 사건 등 2건을 검찰이 교차 수사하면서 법조브로커 단서가 잡혀 3년여에 걸친 가짜 변호사 행각을 마감해야 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 형사3부 차맹기 주임검사는 “어떤 의뢰인은 1,000만원의 성공사례비까지 약정했고, 일부 의뢰인은 송씨를 여전히 변호사로 착각하고 있을 정도였다”며 혀를 찼다. 그는 또 “당초 수사가 송씨 일당의 행적을 수상히 여긴 주변 사람들의 첩보에 의해 시작된 것인 만큼 피해자가 서씨 등 6명 외에도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특히 이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첩보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차주임검사는 “그러나 송씨가 딱히 다른 배경이 있다거나 정치인, 법조인과의 친분 관계가 아직까지 드러난 것은 없다”면서 “집에서 발견된 소송자료 등도 누구나 쓸 수 있는 정도의 어이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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