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공기로 가는 자동차(이하 페브)’를 개발해 국내외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조철승 (주)에너진 회장(63)이 최근 구속됐다. 올 초 캄보디아로 떠난 뒤 수개월 째 오리무중, 각종 의혹을 낳던 조 회장은 “압축 공기를 연료로 사용하는 자동차를 상용화했다”며 캄보디아 정·재계 인사뿐만 아니라 총리까지 속이다가 현지 경찰에 체포돼 지난 16일 한국 경찰로 신병이 인도됐다. 이에 앞서 조 회장은 10년 전 공압식 엔진에 대한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던 점을 이용해 각종 언론매체에 대대적인 홍보와 허위·과대광고 등으로 수천 명의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으며, 주식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수십억원을 가로채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 기술로는 제품 상용화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직 명예에 눈멀어 전 국민과 세계를 우롱한 공기 자동차 사기사건은 ‘제2의 황우석 사기사건’으로까지 불리며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 회장과 관련 각종 의혹이 불거진 것은 이미 올해 초부터였다. 지난 1월 캄보디아로 떠난데 이어 4월 대표 이사직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 조 회장에 대해 주주들이 고소고발 및 진상 파악에 나서면서 그에 대한 각종 의혹은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23일 <일요서울>과 접촉한 한 주주에 따르면, (주)에너진은 그동안 수차례 증자나 액면분할을 단행해 왔다고 한다. 액면가 5,000원인 주식을 100원으로 액면 분할하는가 하면, 5,000원인 비상장 주식을 액면가의 20배가 되는 주당 10만원에 판매하기도 했다는 것. 이렇게 내부 사정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조 회장이 잠적, 대표 이사직까지 내놓자 일각에서는 ‘공기 자동차 개발을 포기한 것 아니냐’, ‘제2의 황우석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이라는 등 숱한 의혹이 제기됐다.
언론통해 허위과장 광고
그렇다면 조 회장은 그동안 어떤 사업을, 어떻게 벌여왔던 것일까.
경찰에 따르면, 조 회장의 ‘파란만장한’ 사기행각은 지난 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기를 압축해서 연료로 쓰는 이른바 ‘공압식 엔진’ 특허권이 있다며 실제로 소형차를 개조하고 공기 자동차를 선보인 게 발단이 됐다. 당시 이 공기 자동차는 한 5분 정도 가다 멈춘 것으로 알려졌는데, 조 회장은 이에 대해 “공기로 가는 자동차를 상용화했다”며 투자자들을 끌어 모아 본격적인 사기행각을 벌였다.
조 회장은 우선 각종 언론 등에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세계 8개국 특허를 받은 엔진으로, 전기를 사용해 압축시킨 공기와 전기 동력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으로 최고 120km로 한 시간가량 주행할 수 있다”는 식의 허위·과장 광고였다. 그러나 반응은 좋았다. 조 회장은 ‘위대한 발명가’라는 칭송을 받으며 유명세를 탔고, 주가는 급상승했으며, 투자자도 봇물처럼 넘쳤다. 이후 조 회장은 지난해 6월부터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올해 2월에는 네덜란드의 B사에서 장애인용 공기 자동차를 우선적으로 완성하여 국내로 들여올 것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조 회장은 국외 유력인사인 전 주한 이스라엘 대사 A씨를 고문 변호사로 선임하기에 이른다. 투자자들을 더욱 믿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서 조 회장에게 현혹된 투자자만 무려 3,352명. 이로써 그는 76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챙겼다.
‘공기 자동차’ 힘들 듯
하지만 실제 이 같은 엔진으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현기술로는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양현익 교수는 “공기 자동차가 한 5분 정도 가다 멈추면, 압축공기를 재충전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때 반드시 휘발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름 없이, 공기로 가는 차는 아직은 ‘꿈’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주주들은 10년 가까이 개발이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품 상용화조차 못하자, 조 회장을 압박하기에 이른다. 이에 부담을 느낀 조 회장은 공장을 세우러 간다면서 캄보디아로 도피해버렸다. 하지만 제 버릇 남 줄까. 그는 도피처에서조차 다시 사기 행각을 벌였다.
경찰에 따르면 조 회장은 출국 전부터 캄보디아 정·재계 인사들과 접촉을 시도, 공기로 가는 자동차가 당장이라도 상용화될 것처럼 부풀려 광고하는 등 사전 작업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언론에서 대서특필된 유명 발명가 및 과학자로 행세, 훈센 캄보디아 총리를 초청해 프놈펜에서 대규모 시승회까지 계획했다고. 이 과정에서 조 회장은 훈센 총리를 만나 공기 자동차 공장부지 5만평 사용권을 요청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 회장의 국내외를 넘나드는 매머드급 사기행각은 경찰과 국가정보원의 공조에 의해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지난 10월부터 국정원은 캄보디아에 조씨의 사기 혐의를 알렸고, 이에 훈센 총리는 공기 자동차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던 것. 시연회가 취소된 것은 물론이고 그는 현지 경찰에 의해 체포돼 지난 16일 한국 경찰로 신병이 인도됐다.
서울 광진경찰서 지능2팀은 20일 조 회장을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주)에너진 직원이었던 안모(30)씨 등 4명은 이미 지난달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한편, 경찰은 76억원으로 알려진 피해액이 최고 수백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제보에 따라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조철승 회장은 누구
“30년간 엔진에만 미쳐 살았다(?)”
(주)에너진 조철승 회장은 공기로 구동하는 전기자동차인 ‘페브(PHEV:Pneumatic Hybrid Electric Vehicle)’를 개발한 장본인이다.‘페브’는 신개념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일정 속도 이하에서는 전기로 구동되다가 가속이 되면 가솔린으로 전환, 전기자동차의 단점을 보완해준다. 그러나 페브는 공압식 엔진을 장착, 가솔린이 전혀 필요없다. 전기로 구동되다가 큰 힘이 필요할 때는 공압식 엔진이 작동해 힘을 보충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조 회장은 페브 개발 초기부터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에서 공기로 가는 자동차를 개발했으니 세간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을 터다. 지난 2003년과 2005년에는 스위스와 파리에서 신기술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그는 30년 동안 공압식 엔진 개발에 올인, 독학으로 공압식 엔진 특허권까지 딴 것으로 알려져 더욱 주목을 받았다. 조 회장은 자본금이 부족하다보니 주주들에게 손을 벌려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제품에 대한 성과가 없자 일부 주주들이 경영진을 압박했고, 결국 조 회장은 대표 이사직을 포기, 캄보디아로 도피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편,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 제품을 개발할 충분한 자금을 투자하면서 시간을 두고 더 지켜봐야 한다는 ‘동정론’과 투자자와 전 국민, 세계를 농락한 제2의 황우석이라는 ‘비난론’이 그것이다. <은>
정은혜 kkeunnae@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