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로펌 ‘인재 전쟁’…검·경 수사권 조정 공약에 경찰 줄대기
대형 로펌 ‘인재 전쟁’…검·경 수사권 조정 공약에 경찰 줄대기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2-11-13 10:46
  • 승인 2012.11.13 10:46
  • 호수 967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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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부익부 빈익빈’ 가속화

법조계는 법률시장 개방으로 무한 경쟁에 내몰렸다. 토종 로펌들은 영미 로펌의 한국 법률시장 공략이 거세지자 자신만의 특화된 생존전략 찾기에 분주하다. 특히 대형 로펌들은 사활을 걸고 인재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다. 대형 로펌들은 최근 유력 대선후보 3명 모두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다시 핫 이슈로 떠오르자 경찰 고위 인사 영입을 위한 물밑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형 로펌들은 경찰 고위인사를 비롯, 정·관계 고위 공직자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해 별도 법인을 설립·운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대형 로펌들이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전문지식인 확보에 적극 나서면서 법률시장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법률시장이 무한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국내 시장에서 로펌들 간 물고 물리는 경쟁상황에다 외국계 로펌들이 공격적 진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내 로펌들은 법률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로펌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인재 영입‘이다. 대형 로펌들은 연봉 등 대우 면에서 파격조건을 제시하는 등 전문 지식인 확보에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찰과 관계 재설정

최근 대형 로펌들이 물밑에서 공을 들이는 인사는 경찰 출신 인사 그 중에서도 경찰 고위직 인사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형 로펌들은 경찰과의 관계 재설정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최근 유력 대선후보 3명 모두 검·경 수사권 조정 필요성에 공감해 검·경 수사권 조정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 세 후보 모두 검찰 개혁, 사법개혁을 우선과제로 추진할 것을 공약했다. 세 후보 모두 세부 방안은 조금씩 다르지만,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기능 일부를 분산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일치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검·경수사권과 관련해 “수사·기소를 분리해야 하지만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서 검·경 협의를 통해 ‘수사권 분점을 통한 합리적 배분’을 추진하겠다”며 “경찰의 수사권이 확립되고 수사역량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검찰과 경찰의 협의를 거쳐 경찰의 수사권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민생범죄 사건부터 경찰에 수사권을 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문 후보는 경찰에게 수사권을, 검찰에게 기소권을 부여해 서로 견제하는 체제로 운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경찰에 민생범죄 등 경미한 범죄의 수사권을 맡기기 시작하고, 향후 확대하겠다”라고 밝혔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수사는 경찰이, 지휘는 검찰이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직권남용, 뇌물과 같은 경찰 비리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직접 수사를 허용하는 등 검찰의 수사권을 대폭 축소하는 안을 내놨다. 그는 “국민의 수사편익, 국민의 감시감독 용이 측면에서 검찰보다는 경찰이 원칙적으로 직접 수사를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여야도 이에 가세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지난 달 21일 제 67회 경찰의 날을 맞아 경찰인력 증원과 함께 검경 수사권 재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은 또 검·경수사권을 재조정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비롯한 9개의 법안을 11월 중 당론으로 발의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당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로펌은 이 같은 정치권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형 로펌들은 유력 대선후보 3명의 공약으로 미뤄볼 때 새 정부에서 검·경수사권 조정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한 발 앞서 움직이고 있다. 특히 경찰 수사권이 독립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최근 대형 로펌들이 물 밑에서 경찰 고위직 출신 인사이거나 현재 경찰 고위직에 있는 인사 섭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이 같은 섭외 배경에는 향후 검·경수사권 조정에 있어 검찰 쪽 힘이 상대적으로 빠지게 될 경우 경찰 사건을 수임하기 위한 속내가 있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이어 “경찰 인사를 통해 경찰 사건을 수임하게 되면 틈새시장을 점유하게 되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로펌들이 경쟁적으로 경찰 고위인사와 출신자 섭외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로펌들은 경찰 고위직 출신을 영입하는 것은 해당 로펌과 경찰 간 업무를 원활하게 하고 사건을 수임하는 역할을 맡길 수 있는 등 여러모로 활용가치가 높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대형 로펌들이 섭외에 나선 경찰 고위직 인사들은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조현오 전 경찰청장 등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경찰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대형 로펌과의 접촉을 통해 향후 활동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 로펌들이 경찰 고위직 인사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이들 인사들이 대형 로펌 행을 선택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대형 로펌들이 경찰 고위인사들을 영입해 경찰 사건을 수임하게 되고 새 정부에서 검·경수사권이 조정되면 ‘경찰사건 전문 로펌’이 대형 로펌의 계열사 형태로 신설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 조현오 전 경찰청장

전문가 수혈에 박차

대형로펌이 경찰 고위직 인사 영입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대형 로펌들의 인재영입경쟁은 정·관계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대형 로펌들은 전문가 수혈을 통해 지속적인 입지 다지기에 나서고 있다.

로펌들은 고위공직자 중 선후배로부터 신망이 두텁고 인맥이 넓으며 업무 처리 능력이 검증된 인력을 우선 스카우트 대상으로 보고 억대 연봉을 제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고위공직자 모셔오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로펌의 규모가 점차 대형화하고 법률서비스 영역도 넓어지는데다 로펌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양한 부처의 전직 고위공직자들이 로펌으로 진출하는 사례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고위공직자 입장에서도 기업체나 연구소보다는 로펌 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정·관계로 다시 복귀하거나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데는 로펌 행이 더 득이 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경부 고위공직자들의 경우 퇴직 후 김앤장이나 태평양과 같은 로펌에 고문으로 갔다가 지경부 산하 공기업의 사장으로 오는 경우도 있었다. 퇴직 후 로펌 고문으로 갔다 회전문 인사를 통해 다시 장관, 부총리, 총리 등 최상위 고위공직자로 재등용되는 사례들도 빈번하다.

로펌의 입장에서도 영향력 있는 인사를 통해 입지를 키우고 굵직한 사건의 승소에 결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이들의 영입에 박차를 가한다. 각 계의 고위직 인사들은 정부 정책방향 흐름을 꿰뚫고 있는데다 인맥 네트워크가 풍부해 로펌의 수임활동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다시 말해 로펌들은 ‘돈 되는’ 분야에서 ‘힘 있는’ 인사 영입을 통해 자신들의 사업 활동에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상부상조’인 셈이다. 고위공직자 출신들은 주로 로펌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정부부처에서 핵심 실무를 담당했던 공무원들은 전문위원이란 타이틀로 로펌에 영입되고 있다.

변호사들이 법률적 해석만으로 자문을 하거나 소송을 진행하는 것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해 자문을 받는 것이 다양한 변화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고 승소율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경쟁적으로 인재영입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각 계의 주요 인사들의 영입은 보다 공고한 전략수립을 할 수 있게 하고 재판 뿐 아니라 애프터서비스까지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점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10년 국내 M&A 법률자문 실적 상위인 김앤장, 태평양, 세종, 광장, 율촌, 화우 등 6개 법무법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도 잘 나타난다. 이 분석에 따르면 국내 대형 로펌 6곳의 고문, 전문위원 절반이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원, 국세청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인력의 출신 기관별 현황을 살펴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19.79% 로 가장 많았으며 금육감동원(금육위원회 포함), 국세청(관세청 포함) 순이었다. 이들 3개 기관 출신의 전문인력 수를 합하면 절반이 넘는 55.2%로 나타났다. 당시 경실련은 이같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경실련은 “대형 로펌들이 주로 대기업의 소송 대리와 자문을 맡고 있고 퇴직 공직자들이 공직 시절의 네트워크와 정보를 통해 과거 소속기관을 상대로 한 각종 소송 등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몇 특정 대형 로펌들은 각계 고위 인사들의 영입 뿐 아니라 이들 인사를 영입해 별도 법인을 설립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법조계 한 인사는 “모 로펌이 특정 기관의 고위 인사들을 영입해 이들 인사로만 꾸려진 별도 법인을 설립하려고 추진 중이다”며 “사실상 해당 로펌의 계열사이나 별도 법인으로 설립한다. 새로 신설될 법인은 로펌의 ‘자문기구’역할을 담당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이 같은 움직임은 해당 로펌이 대외경쟁력을 키우고 안정적 자리를 굳히기 위한 포석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법률시장이 국내 중대형 로펌과 외국 중대형 로펌 간 경쟁구도로 사실상 무한 경쟁이 시작됐고 대형 로펌들은 고액의 연봉으로 고위직 퇴직자 등을 스카우트하고 있다. 이에 자본과 인재풀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형 로펌과 개인 변호사들의 설 땅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3조 원으로 추산되고 있는 한국의 법률시장에서 10대 로펌이 매출 1조 5000억 원을 차지하는 하고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한다. 특히 상위 4대 로펌은 매출 1조 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30%이상을 차지한다. 법률시장에서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법률시장 개방 등으로 인해 부익부빈익빈의 그늘은 더욱 짙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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