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아닌 객’으로 전락한 제1야당
‘주가 아닌 객’으로 전락한 제1야당
  • 정찬대 기자
  • 입력 2011-10-31 15:58
  • 승인 2011.10.31 15:58
  • 호수 913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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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통합’과 시민사회가 야권대통합 중심축으로
photo@ilyoseoul.co.kr

기성 정당에서 시민세력으로 정계개편 급물살 예고
안철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다


10·26 재보선이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범야권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 당선됨에 따라 여야 모두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릴 것으로 관측되며, 야권의 정계개편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범야권 단일후보 효과’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만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통합의 가속도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며, 정치개편 또한 기존정당 중심에서 시민사회세력으로 그 축이 이동하면서 향후 커다란 정치판도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박원순 범야권후보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7.2%p 앞서면서 53.4%의 득표율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최종 당선됐다. 총 투표율 48.6%p를 보인 서울지역 25개 선거구 가운데 21개구에서 이겼고 연령별로는 20~40대에서 큰 차이로 나 후보를 앞섰다.

박 당선자는 “시민이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다”며 “사람과 복지중심의 시정을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입당 문제와 관련해서는 “민주당은 바닥 현장에서 열심히 뛰었고 제가 큰 빚을 졌다”며 “민주당이 민주주의와 야권의 맏형으로서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는 정당의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보고 그 과정에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박 후보의 승리를 자축했다. 손학규 대표는 “박원순의 승리는 민주당의 승리”라고 재차 강조했으며, 노영민 수석부대표는 “민주당을 포함한 민주개혁세력의 승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판도 변화예고

민주당은 외적으로 “박원순은 민주당의 후보이며, 박원순의 승리가 곧 민주당의 승리”라고 자축하지만 속내는 결코 그렇지 못하다.

당내 비주류와 호남 의원들은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조차 내지 못한 데 대한 불만과 불신이 팽배하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민주당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민주당의 소멸이요, 존재감 상실”이라고 지적한 바 있으며, 이석현 의원은 “민주당은 확실히 패배했다”고 자인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차기 당대표로 거론되고 있는 김부겸 의원은 10·26 재보선이 끝난 직후 “서울시장 선거가 마치 민주당의 승리한 양 착각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이어 “야권통합 작업도 내부의 문제를 덮거나 뒤로 미루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선(先) 당내혁신, 후(後) 야권통합’이 옳다”며 당 지도부를 겨냥했다.

손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박원순 범야권후보를 전면 지원하며 사태를 애써 갈무리하려 했지만, 이렇듯 내홍은 갈수록 깊어지는 모양새다.

결과적으로 시민세력에 무릎 꿇고 서울시장 자리를 내준 민주당은 제1야당으로써 어떤 존재감도 보이지 못한 채 이번 선거에서 철저하게 ‘주가 아닌 객’이 됐으며, 민주당 스스로 ‘시민후보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학습효과를 통해 시민사회세력은 또 다른 정치적 대안세력으로 떠오르게 됐다.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세력화라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성 정당에 실망한 국민들은 시민후보를 택했고, 기존 정치질서는 근본부터 흔들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정당정치의 위기라고까지 불리는 지금의 상황에서 야권의 맏형인 민주당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게 된 것이다.

결국 민주당 중심의 야권통합 논의가 자연스럽게 시민사회세력 중심으로 옮겨지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정치판도는 뿌리 채 흔들릴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신경민 MBC 전 앵커는 지난달 25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야권시민후보는 서울시장선거에서 처음 보는 형태이며 전에 없던 새로운 상황”이라고 언급한 뒤 “재보선이 끝난 후 정계개편은 불을 보듯 뻔하며, 정치권은 격동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도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정치세력들이 결집된 선거”라며 “선거 이후에는 내년 총선과 대선이 있는 만큼 야권이 공고히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사실상 정계개편이 이뤄질 수 있음을 내비쳤다.

신율 명지대학교 교수는 “민주당은 야권통합논의에서 제1야당으로써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앞으로 있을 통합논의에서 ‘혁신과 통합’에 밀리고 그렇게 되면 손학규 대표의 입지는 줄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민주당으로써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입당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민주당에 입당할 경우 앞서 언급된 정치재편의 다양한 문제들이 해소되는 것은 물론 손학규 대표의 대권가도 또한 더욱 공고히 다져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혁신과 통합’ 핵심관계자는 “박원순 후보는 ‘혁신과 통합’의 후보이며, 지금도 이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보선에 출마할 때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민주당에 입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혁신과 통합’,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큰 판 만들 것”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은 총선과 대선을 더불어 향후 정치권에서 ‘혁신과 통합’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음을 의미한다. 사실상 ‘혁신과 통합’의 후보로 지칭되는 박원순 후보의 당선은 1대1 구도만이 승리할 수 있고, 이는 기존 정당의 후보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웠다.

‘혁신과 통합’의 핵심관계자는 “기성 정당으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적 열망을 담아낼 수 없다”며 “야권단일후보가 한나라당과 맞붙어 승리할 수 있는 만큼 정계개편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야권질서, 달리 표현하면 정당질서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정당질서의 재편은 불가피하며, 기성 정당뿐 아니라 시민사회 진영의 재편도 함께 진행되는 광범위한 측면의 통합의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또 “민주당만으로 내지는 기존의 구도로 똑같이 가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어떤 전망도 없다”며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두려움도 있겠지만, 민주당이 변하고 혁신하여 더 큰 야당이 되어야할 것”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새로운 정치질서의 재편을 위해 ‘혁신과 통합’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큰 판을 만들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다만 제3의 당을 만들거나 또 다른 주체세력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떠오르다


‘안풍(安風)’으로까지 불리며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자신이 지지한 박원순 후보의 당선으로 ‘안철수 신드롬’이 한낱 신기루가 아님을 입증했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안 원장이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급부상하면서 대권주자로까지 분류되는 등 안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박원순 후보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하면서 포옹의 리더십까지 발휘한 안 원장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독주론’을 뒤흔들며 18대 대선 가상대결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안철수 돌풍은 인기투표 수준”(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철수 신드롬’이 일시적인 바람이라며 그 의미를 평가절하했고, 10·26 재보선을 통해 그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 진단했다.

하지만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 재보선에 당선되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안철수 원장이 제3의 신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안철수·박원순의 연합정당이 결국 민주세력을 흡수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되고 있다.

신율 교수는 “안 원장에게 국민들이 열광하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데서 답이 있다”며 “안 원장이 신당을 만들게 될 경우 시민사회세력과의 역학관계에 의해 야권이 정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진보정당, “정치개편 섣부르게 예단하기 힘들다” 경계

진보정당의 속내도 편할 리 만무하다. 진보정당과 시민사회세력의 이념적 성향이 비슷한데다 사실상 정치적, 정책적 기반을 함께하고 있어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세력화는 진보정당의 파이를 그만큼 축소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민주노동당 핵심관계자는 지난달 27일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시민사회세력 중심의 정계개편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이르다”며 “우리는 우선적으로 진보대통합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시민사회진영 예를 들어 ‘혁신과 통합’의 목소리가 커질 수는 있겠지만, ‘혁신과 통합’의 실체가 아직 불분명하기 때문에 당내에서 이들과의 통합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는 힘들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과 시민사회진영의 정치적 기반은 서로 다르며, 통합문제 또한 단순히 정치공학적인 측면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혁신과 통합’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여러 측면에서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며 “통합논의에 있어 진보정당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는 현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충분히 얘기하고 설득하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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